일상에 대한 넋두리

우포 출렁다리와 쪽지벌_20201119

사려울 2023. 1. 4. 05:13

우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출렁다리는 생태촌 창녕 공무원을 통해 추천받은 우포 일주 탐방로 중 꼭 들르길 추천하던 장소로 바로 앞까지 차량 출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멀찌감치 차를 두고 뚝방길을 따라 찾아갔는데 우포 하류 위치에 산밖벌이라는 근래 복원한 늪과 쪽지벌 사이를 가르는 토평천 도보길로 스릴감이나 절경보다 원시 하천 위를 걸으며, 산업화 시기에 거리를 누비던 버드나무의 희미한 기억을 반추할 수 있다.
갈대가 무성한 산밖벌을 돌아 출렁다리를 건너 뚝방길을 따라가면 쪽지벌로 향하게 되는데 우포에 발을 딛고 가장 아름다웠던 건 들판 민들레처럼 혀에 살짝 감기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하나씩 재현되고 있다는 것, 그냥 아무렇게나 두어도 자연은 스스로 각성하고 틀을 잡아가는 자생 기능이 발현되고 있다는 건데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인간의 접근을 어느 정도 차단하여 우포가 가진 선택과 결정권을 되돌려 줬다.
며칠 내내 내리던 비가 멈추고 구름 사이 틈바구니에 햇살이 부시시 기지개를 펴던 조용한 산책이었다.

세진마을 지나 멀찍이 주차하고 쪽지벌로 향했다.

전날 계절을 역행한 더위로 인해 가벼운 옷차림에도 몸에 땀방울이 얇게 묻어나 움츠러 들지 않는 신체 기제로 인해 활동과 더불어 도보에 대한 욕구는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루하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려 할 즈음 햇살은 두터운 구름층에서 허점을 집요하게 걷어내며 빛내림을 길게 늘였다.

우포의 근원이 되는 토평천은 우포 일대의 흐르는 모든 무리를 이끌고 우포를 지나 아우름과 동시에 합쳐져 호수와 같은 너른 늪을 만들었고, 자연과 뒤섞여 울창한 나무와 풀숲을 만들었다.

아주 오래전 농경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치수를 다스리기 위해 인간이 우포를 만들었지만 자연의 관용은 서서히 생명의 젖줄로 변모시켜 원시의 형태처럼 모든 생명이 다시 기댈 수 있도록 근원의 지각 변동에 동참하여 현재의 우포가 될 수 있었다.

만약 차량을 이용했다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전방에 집중하느라 이런 가르침을 들을 수 없었겠다.

줄지어 우포로 향하는 한 무리 철새는 이제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산밖벌에 이미 터전을 잡은 철새의 무리가 평온을 마시며, 먼 길 날아온 피로감을 지우고 있었다.

토평천과 산밖벌을 가르는 뚝방길 따라 어느덧 출렁다리에 도착했다.

토평천변에 길게 늘어선 버드나무가 만추에 맞춰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아릿다운 옷을 입고 평온을 합창했다.

출렁다리를 천천히 걸으며 줄곧 따라왔던 토평천을 건널 무렵 뚝방길 위를 지나던 차량이 출렁다리 앞에서 멈추자 일련의 사람들이 출렁다리 위에서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우포 출렁다리는 스릴을 즐기는 구조물이 아니라 우포를 조각한 여러 하천들이 토평천으로 합류하여 멀리 바다로 향하는 길에 마중하기 위한 전망대라 할 수 있었다.

다른 4개의 호수와 달리 산밖벌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잘 짜여진 습지였다.

근래 복원한 산밖벌 옆 토평천 위 출렁다리는 그런 의미에서 하천을 건너기 위한 고전적인 의미에 가깝다.

출렁다리를 지나 토평천 뚝방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자 쪽지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류에서 쉼 없이 달려온 여울 줄기가 하나로 모여 우포를 거쳐 쪽지벌을 지나 낙동강에 합류하듯 두서없이 펼친 여행의 시간도 거둬들일 때가 되면 잔잔한 호수의 표면처럼 숙연해진다.
더불어 겨울이 되면 한 해도 바다를 만나 제 갈길을 바삐 찾는 강물처럼 기억 속으로 제 각기 흩어질 기다림만 남았다.
가을이 머물던 자리는 겨울이 하나씩 그 자리를 대신하고, 기다리던 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기다림을 찾아 헤매며 다시금 만날 시간에 익숙해지려는 두근거림을 간신히 억누르는 건 어쩌면 계절을 쫓아 세상을 떠도는 철새의 숙명과 같으려나?
끝나지 않는 길을 걷다 어느 순간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호수의 무심한 정취가 기억의 필름에 각인된다. 

나무벌, 모래벌, 쪽지벌, 산밖벌, 소벌...

떠나간 가을의 정령만큼이나, 남아 있는 만추의 전경만큼이나 아름다운 한글이다.

세진마을에서 출발하여 토평천 따라 산밖벌, 출렁다리, 쪽지벌까지 왔던 만큼 시간은 어느새 많이 흘렀다.

한 무리 새들이 모심기하듯 둥글게 돌며 부리로 바닥을 쪼아댔다.

그 진풍경을 잠시 구경한다.

제방 아래 쪽지벌은 우포에 있는 호수 중 사이즈가 가장 아담했다.

소소한 무리들이 정착하여 큰 무리를 이루는 철새들은 우포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여전히 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바닥을 쪼아댄다.

그 위에 하늘로 비상하는 한 쌍의 새.

여느 곳만큼 평화가 깃든 쪽지벌에 도착한 뒤 한차례 빗방울과 함께 세찬 바람이 불었고,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해가 떨어질 즈음이라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리며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애써 옮겼다.

비록 가을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직 남은 버드나무의 노란 이파리는 남은 가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었고, 그렇게 가을은 말없이 작별을 고했다.

돌아오는 길에 산밖벌 갈대밭 사잇길로 걸으며, 한가로이 노니는 철새의 평온에 부러운 눈빛으로 화답했고, 그렇게 긴 여정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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