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양에서 출발할 무렵 소강 상태의 호우가 다시 퍼붓다 멈추길 몇 번, 그 사이 춘양을 벗어나 영월 방면으로 미끄러져 갔다.
펼쳐진 길을 따라 낯선 방향으로 묵묵히 나아가자 거대한 장벽 백두대간이 앞을 막아선다.
둥지로 가기 위해 결국 넘고 지나게 될 숙명이지만 눈 앞을 가로 막는 호기심에 이끌려 긴 호흡 삼아 찾아간 각화사.
하염 없이 내리던 비가 가늘어질 무렵 겁 없이 초행길을 누비다 도착한 각화사는 여전히 빗물이 하얀 먼지처럼 허공에 흩날린다.
아주 오래된 흔적의 석탑은 작지만 알찬 시간과 정성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절 내부에서 가장 요란한 건 힘차게 솟구쳐 나오는 생수였다.
그 소리에 이끌려 극심한 갈증에 시달린 사람 마냥 한아름 떠서 벌컥벌컥 마셨다.
천년 고찰의 시간들이 누더기처럼 올려져 예측하기 힘든 산중의 날씨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각화사는 이미 알고 있고, 걷잡을 수 없는 변덕도 조용히 끌어 안아 줄 아량을 보였다.
장황한 합리화와 달콤한 위선은 듣기 좋을 지언정 금새 꺼지는 불씨와 같음을, 신뢰의 견고한 탑을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있는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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