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용평 산중에서 정선까지_20150530

사려울 2015. 9. 20. 23:43

5월말임에도 용평 산중 날씨는 꽤나 쌀쌀하고 흐려 비바람이 한바탕 쓸고 갈 기세였다.

이번에 숙소로 잡았던 용평 알펜시아 리조트는 예상한 것 이상으로 깔끔했고 넓직한 공간을 마련한 덕에 주어진 시간보다 훨씬 여유를 누릴 수 있어 그 간의 지친 심신을 충분히 위로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정을 용평 도암에서 안반데기를 거쳐 구절리, 정선 일대를 거친 후 평창 두타산 휴양림까지 비교적 긴 구간으로 잡아 지난번 기약만 했던 숙원(?)을 풀 심산이었고 봄이 끝날 무렵이라 비교적 한산해진 덕분에 일정의 지체는 전혀 없었으니 나만의 알찬 기행이 가능했다.





알펜시아에서 나와 작년 봄 이후 처음으로 찾아간 도암호수는 언제봐도 그저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년 두차례(용평 산중에서, 20140522_용평과 도암) 찾아갔던 당시 느낌이 치열했던 일상과 극단적인 대조로 크나큰 매력을 느꼈고 언젠가 그 일대 안반데기와 그 길을 따라 구절리까지 가보겠노라는 나름 단호한 다짐을 호수에 던져 두고 왔기에 그걸 찾기 위함이었다.



물론 용평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이 방법 뿐이고 사진으로 담기 좋은 장소도 여기가 가장 좋아 늘 같은 자리를 찾는 거 같다.

사진은 그저 부수적일 뿐인 수단이라 내가 여기 이자리에서 이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게 쵝오로 중요하다.





그런 자연적인 느낌으로 지나가는 꽃 한 송이 조차도 예사롭게 넘기기 힘든데 그러다 너무 넘치니까 나중엔 패스하고 갈 길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근데 날이 흐려서 산 능선에 당당히 보이던 드래곤피크는 구름에 가려졌다.



도암댐 부근까지 가서 바라 보니 여기만의 매력도 가득 담겨 있구먼.

작년에 사진으로 남겨 뒀던 팔각정이 사진 좌측에 당당히 꼬나 앉아 계신다.



확대해 보니... 엥? 트럭 한 대가 쉬고 있네?

아니, 트럭을 타고 오신 분이 거기서 간단한 요기 중이신데 나도 미리 담아간 텀블러 커피를 마셔 보니 확실히 시각적인 요소도 무시 못하겠더라.

뭘 드셔도 다 풍성하게 느껴지니까.







새벽에 잠시 내린 보슬비가 다시 보슬거리며 얼굴을 간지럽히는데 그 보드라운 방울이 영롱한 빛깔을 그대로 머금곤 잠시 쉬고 있다.



어릴 적에 많은 생명 유린을 했던 비단개구리가 옆으로 팔딱거리며 유유히 지나간다.

생긴게 징그럽다고, 또한 어른들 말씀에 비단개구리 만진 손으로 눈 만지면 실명한다고 해서 돌로 찍어 명줄을 끊었던 비단개구리는 어린 눈에 어찌나 명줄이 긴지 여간 돌로 찍는다고 즉시 황천길로 가지도 않고 특유의 그 붉은 배를 뒤집어 나름 반항하기 일쑤였다.

근데 이게 요즘 보기 힘들어서 어릴적의 만행이 부끄럽다.

미안해, 비단개구리들아.

같은 지구에서 잠시 기회를 빌려 사는 입장에 내가 주인 행세했으니 여기서라도 근심 없이 편하게 살아가렴.



땅에서 붙어사는 꽃인들 아니 이쁜게 어디 있겠는가?

저 빛깔들 보소.





가고자 했던게 도암만이 아니었으니 적당한 감상은 사진에 묻어 두기로 하고 다음 가고자 했던 안반데기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내릴듯 말듯한 이슬비와 그 이슬비를 몰고 다니는 웅크린 날씨로 대기가 흐린데 이 곳의 고도 때문인지 빗방울과 바람이 꽤나 차게 와닿는다.

행여 준비해간 레인코트조차 빗방울과 바람은 막아도 추위는 못 막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난관이 될 줄이야.



높은 고지대란게 믿기 힘들만큼 넓직하게 트여 있는 공간은 눈이 시원할 정도로 전망도 굿이다.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땅을 갈아 새로운 생명을 심을텐데 그 척박한 자리가 초록으로 물들 즈음이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겠지.





안반데기 초입에 이렇게 운유라는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미리 준비해간 커피가 없었다라면 한 번 이용해 봄직했을터인데 여름이 지나고 추위가 오기 전에 방문한다면 그 높은 자리에서 흘러 나오는 커피향은 각별하겠지?

그 때 다시 와서 그 호기심을 충족해 봐야겠다.




초입과 가까운 곳 중에서 사방을 둘러 볼 수 있는 높은 자리로 이동해 북편을 바라 보니 멀찍히 팔각정이 하나 보인다.

점점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오는 객들을 위한 전망대인 거 같은데 거기로도 함 가봐야겠지.

사진처럼 현재 자리와 팔각정 언덕 사이 나즈막한 도로가 용평에서 정선,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목, 피득령 되시겠다.




팔각정이 보이는 반대 방향인 남편엔 밭과 그 사이를 버티고 있는 나무들이 총총히 보인다.

사진과는 다르게 차고 세찬 바람이 작은 빗방울을 머금곤 부드러워진 흙을 잔잔히 적시는데 마치 오랫 동안 떨어져 지낸 후의 해후 같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이런 나무가 홀로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지나는 바람에 가지를 흔들어 댄다.

넓직하고 황량한 언덕의 파수꾼과도 같은 모습이다.



북편과 남편을 아우르는 파노라마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그 자리에 눈을 지그시 감고 서서 다시금 불어오는 바람과 이슬비를 온 몸으로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대기가 맑은 날 좋은 때 이 자리에 서서 사진의 정면을 바라 보면 동해 바다도 한눈에 보이겠지.



팔각정인 줄 알고 올라와 보니 사각의 전망대다.

일일이 돌을 쌓아 올려 이렇게 넓직하고 편평한 자리를 만들어 놓은 그 성의에 탄성이 나오고 또한 그 자리에 벤치며 나무, 풀들이 보기 좋게 어울린 모습에 탄성이 나온다.



전망대조차도 돌을 쌓아 만든데다 담조차 돌을 정갈하게 쌓아 올렸다.



앞서 사방을 둘러 보기 위해 올랐던 아래쪽 풍차(?) 좌측 능선, 사진 중앙 쪽 언덕이 희미하게 보인다.



줌을 당겨 보면 빨간 지붕 좌측에 작은 나무 3그무가 일렬로 서있는 자리가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던 그 자린데 워째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구먼.



어느 누군가가 이 자리에 올라 돌담 위에 작은 소망을 쌓아 놓았다.

바람에도 그대로 있는걸 보니 그 소망이 참으로 간절한가 보다.



전망대 정자의 천장조차 어떤 바람과 혹독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게 성의가 가득하다.

나무 특유의 패턴이 눈부시게 화사하고 곱단하다.



전망대 옆에 돌이 빼곡히 쌓여 있어 올라가 다시 파노라마로 담아 뒀다.



옛사람들은 밭이나 길에 있는 신성시 되는 돌들은 그대로 뒀다 던데 여기도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래서 마을 지명 중에 `입암'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는 지역을 봤다.

자연의 일부라면 사람과 같이 존중해 주는 그런 선량함과 배려가 이 시대를 살면서 갈수록 그립고 아쉽기만 하다.




전망대는 이름하야 멍에전망대인데 안반데기를 거대한 밭으로 일군 화전민들의 농기구 멍에를 사용함으로써 그 분들의 애환을 대입시킨 듯 하다.

세찬 비바람과 추위에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자리를 지키는 멍에전망대는 어쩌면 그 분들의 거칠어진 손등을 알기에 이런 날씨는 견디고 참을 줄 아는 것 같아 그 진득한 표정을 여운으로 남기고 돌아서서 정선 구절리까지 단숨에 내 달았다.





드뎌 길고 한적한 415번 지방도를 경유하야 구절리 초입의 오장폭포에 도착했더니 늘 우렁찬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다.

중부지방을 관통하는 충주호가 가뭄에 허덕이는 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만큼 올 봄은, 특히나 중부지방 가뭄은 심각한 이슈가 되었다.

태동하기 시작하는 신록을 가르며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의 모습은 적절하게 어울린 바위와 어우러저 한 편의 간결한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담백하면서도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그 폭포의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도 제법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찾아 오는데 한결 같이 그 모습을 벗삼아 사진을 담기에 여념 없다.

화사한 신록과 바위와 폭포의 절묘한 만남이 화려하진 않지만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품이 있다.



2006년 여름에 폭우로 인해 발생한 산사태가 몇 년째 큰 공사를 거쳐 이렇게 다듬어져 있다.

실제 2007년 방문시 그 거대한 규모에 놀랬고 그 막막하던 규모를 복구해 놓은 모습을 보자면 그 당시 거대했던 산의 일부가 지금은 작아 보였다.

탄탄하게 마무리 되어 산사태가 일어 나지 않기를 바란다.






.



한 동안 서서 폭포의 모습과 그 세세한 부분까지 언제든 볼 수 있게 담아 놓았는데 물이 엄청난 시간 동안 만들어 놓은 이 장관은 언제 봐도 경이롭고 위대하다.

늘 초봄에 와서 폭포를 봐왔던 과거와 비추어 볼 때 신록이 포장해 놓은 이 모습 또한 전혀 실망스럽거나 허투루해 보이지 않으니 이 일정을 고집했던 나름의 뿌듯한 만족을 챙길 수 있었다.

아무렴, 누가 짜놓은 일정인데~





구절리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구절리역 레일바이크를 한 번 타볼까 하다가 좀전까지 조용하던 방문지들이 여기에선 거짓말처럼 북적대고 정신도 없길래 그냥 패스하고 정선으로 향했고 정선을 오면 늘 방문하는 곤드레밥집에서 허기진 뱃속을 채운 후 여차하면 늘어질 것 같은 일정을 재촉했다.





정선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은 올때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했기에 39번 진부와 연결된 국도를 경유해서 갔다.

올때와 달리 제법 매끈하게 포장된 길이라 수월하게 갈 수 있었는데 가던 도중 국립휴양림 표지판을 보곤 잠깐 햇님이 붙어 있을때 알차게 보내자고, 그래서 두타산 휴양림으로 빠졌다.

휴양림으로 진입해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서 잘 닦아 놓은 도로를 따라 산책 중인 사람들이 꽤 많은 걸 보니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쉼터인가 보다 했더니 이렇게 아담하게 만들어 놓은 휴양관이 보여 잠시 우리의 지친 일정도 끈을 풀어 놓았다.

아래에 개울이 있어 제법 높은 고도차를 극복하고 내려갔더니 급작스런 산모기떼의 공습으로 치사하다 싶어 다시 올라와 벤치에서 그냥 편하게 숨을 돌리곤 다시 내려갔다.




도중 한적한 벤치와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거기서 쉬는 동안 이런 돌탑과 개울 건너 바위 절벽이 지켜보고 있었다.

돌탑 아래에 찰랑이는 물소리, 절벽 아래 힘차게 굴러가는 개울소리가 틀어 놓은 음악 소리를 복돋워 한층 생동감이 느껴져 짧게 있을려 했던 당초의 계획을 붙잡아 버렸지만 그 시간이 일상을 잊기엔 충분한 효과가 있었는지 일어섦이 무디고 귀찮았다.



벤치와 개울 사이에 키가 큰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던데 거기를 자세히 보니 이런 거품이 많다.

이게 벌레의 소행이라네!

일행이 교사라 잠깐의 설명에 의하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품을 만들어 자신을 위장한단다.

그걸로 설명 끝.

그 이상 정확하게 파고 들면 모른다는데 가끔 산에서 들에서 본 이 거품의 궁금증이 해결 되었으니 이제 나도 아는 척을 해야겠지.



해가 서산으로 완전 기울 무렵 그 날 평창 하늘은 이렇게 청명하고 높았다.

서편에 기울어진 햇살이 구름을 붉게 물들일 즈음 더 이상 쉴 수 없었으므로 감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줌렌즈가 가장 가까이 당겨도 작게 보일 만큼 높은 하늘을 서성이는 매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 시력으로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지상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그 능력, 그래서 `매의 눈으로'라는 표현이 실제 내 눈으로 봤을때 닭살 돋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백마디 말보다 쉽게 이해가 된다.

오늘은 어떤 근사한 식사를 할려나?





진부에서 커피 한 잔을 하려던 의도는 찾아갔던 카페가 문을 닫은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 주저할 겨를 없이 숙소로 잡은 알펜시아로 돌아와 버렸다.

안반데기에서 그토록 혹독하던 추위와 일기가 정선으로 갈수록 걷히고 포근해지더니 해가 가라앉아 땅거미만 남은 저녁 무렵엔 청명한 하늘이 펼쳐 져 그 찰나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담고 싶어졌다.

약해져가는 봄과 꺼져가는 주말의 달콤한 시간 아쉬워 그 미련을 달래기 위해 산책 나온 사람들이 꽤 많은걸 보니 곧 다가올 일상의 숨막힐듯 짜여진 조바심도 생겨 이 정지해 버린 시간이 아름답게 보였나 보다.

그냥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리고 카메라를 잡은 김에 좀 더 재밌는 놀이가 하고 싶어 같은 장면에 필름 시뮬레이션을 바꿔봤다.



요거이 벨비아 모드.

역시 채도가 높아 모든 색감이 풍부하고 화사하게 표현된다.

저 하늘 좀 보소!



이건 플랫한 아스티아 모드.

벨비아와 클래식 크롬을 본 이상 이 시뮬레이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와 가장 흡사하지만 실제를 살짝 왜곡하고픈 삐딱선 때문일까?



요거이 클래식 크롬 모드.

왠지 모를 이 금속성 질감은 어두운 밤에 촬영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 여기에 다이빙하고 싶다.

빛바랜 사진 같지만 지나친 고독의 이면에 무언가를 귀띔해 줄 것만 같은 느낌에서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으니까.



우선 숙소에서 짐을 내려 놓곤 앉게 되면 만사가 귀찮아 질까 싶어 바로 나와 호수섬으로 산책을 나왔다.

한 무리의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서 순간 정적이 흐르는 동안에도 봄의 향기는 끊임 없이 다가 왔다 지나가곤 다시 새로운 내음의 향연이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그 계절의 마지막 주말은 비유하자면 달콤한 낮잠의 지치지 않는 긴 시간들이었고 그 잊히지 않는 시간들을 한아름 챙긴 기억은 어쩌면 봄이 들려 주고픈 살랑이는 곡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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