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야심한 산책

사려울 2013. 10. 2. 22:25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자마자 스원야릇한 바람을 맞으러 집을 나섰다.

비교적 서늘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오는 그 냄새에 끌려 정처 없이 방황하길 약 2시간 가량.

아직은 나뭇잎사귀들이 울긋불긋하진 않지만 머지 않아 그리 변할 것처럼 이파리 끝부터 녹색이 빠져 나갈 조짐을 보인다.



세찬 바람으로 주변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려 상이 제대로 잡히지 않지만 유독 은행나무는 꼿꼿하다.

밤에 도시의 조명에서 뻗어 나온 희미한 빛들이 은행잎을 투과하자 고운 빛깔이 묻어 나와 꽃의 화려함을 부러워 하지 않는 꼿꼿함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나무가 있는 와중에도 그 색상의 투명함으로 인해 한눈에 봐도 눈부실 만큼 돋보인다.




동탄국제고 뒷편에 사람들이 떠난 을씨년스런 놀이터에도 나름대로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여유 덕분에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단편이 정갈하게 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적막한 가운데 강아지 산책 중인 한 사람이 지나가는 그 자취가 반갑고 지나간 후의 여운도 길다.

이런게 고독의 초상일까?

사진에 나오지 않은 국제고 교실 곳곳이 환한 걸 보면 아직 열공 중인 학생들의 모습이 짐작된다.

곧 있을 수능이 학생들을 한 자리에 가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쇠창살인가?



국제고 뒷편에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 뒤를 돌아 보다.

사람들의 발길을 지독히도 그리워 하는 오솔길의 모습이 소담스럽다.

밤새 지친 기색 없이 가로등 불빛이 쏟아지겠지만 과연 그 바람대로 몇 사람이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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