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마을을 가르는 철길엔 정겨운 건널목이 있고,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부담하여 만든 도서관도 있다.
전산 접속이 필요해 미리 통화했던 철암도서관으로 가서 약 1시간 동안 노트북을 두드릴 때,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와 순박하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었다.
물론 자리 자체는 편한 게 아니었지만 여정에서 이런 경험은 절경을 마주한 것과 같았다.
오며 가며 아이들은 연신 인사를 했는데 그 순박한 인사와 눈빛이 처음엔 이질적이었으나, 점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도서관을 떠나는 순간에도 발걸음을 어렵게 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엔 기나긴 태백 시가지를 해파랑길 여정처럼 편도는 도보로 도전해야겠다.
숙소에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사이 해는 지고 멀리 백두대간 너머로 덩그런 달이 배시시 웃었다.
철암도서관은 정부지원금 없이 개인 후원으로 운영하는 사립 공공도서관으로 외지인들도 이용 가능하다.
필요에 따라 공간도 빌려주고, 책도 빌려 주지만 정감은 무한하게 퍼가되 지역 가게를 활용하여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직접적인 후원도 가능하다.
[출처] 철암도서관_다음카페
철암을 가르는 철길과 그 철길을 또 한 번 가르는 건널목을 지나 철암도서관으로 향했다.
철암도서관에 들러 짱짱한 와이파이 접속으로 1시간 가량 용무를 본 뒤 나오는 길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도서관을 바라봤다.
도서관이 곧 아이들 놀이터까지 대체된 데다 쌓인 눈은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다.
역시 순박한 아이들 답게 있는 그대로를 즐길 줄 알았다.
도서관 내부엔 작은 공간과 달리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고, 도서관 역할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이뤄지는 각종 행사를 함께 모여 준비하는 사랑방 역할도 하는 곳이었다.
딱히 노트북으로 편하게 용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는데 처음에 들어갔을 때 마을 행사를 위한 준비에 여념 없던 고학년 학생의 자리를 의도치 않게 조금 밀어서 웅크린 채 웹을 사용했었지만 불편함이나 불만은 전혀 없었고, 시시때때로 오고 가는 아이들이 보이는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이 재밌기만 했다.
사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아닌가!
꼭 절경을 만나고 유명한 스팟에 서야만 그게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의 지론일 뿐-
길섶의 풍경들 중 이런 이벤트도 풍경을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에서 출발하여 차량이 주차된 곳으로 걸어 나오며 그 거리의 정취는 여느 주택가와 다를 바 없었고, 도리어 한적함은 극치를 이뤘다.
게다가 쌓인 눈밭에도 아이들은 그저 즐겁기만 한지 내내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는데 그건 소음이 아닌 힐링 ASMR이었다.
골목 초입에 다다랐을 때 어느 집 처마에 뎁따시 큰 고드름이 달려 있었고, 그 고드름 따라 물방울이 떨어지며 햇살을 굴절시켰다.
철암의 주유소 옆에 오래된 분위기의 중화요릿집 철암반점이 있었는데 거기에 들어가 저녁을 해결할 겸 곱빼기 자장면을 시켰고, 쥔장이신 중년의 여성분은 아주 친절하게 요리를 준비해서 식탁에 자장면을 주셨다.
준비하시는 모습에서 꽤 많은 정성을 들이신 모습이었고, 지금까지 산간 마을에서 먹은 자장면 중 맛도, 기분도 가장 좋았다.
그 식사를 끝으로 철암을 떠나 숙소에 돌아왔고, 그에 맞춰 서서히 석양은 사그라들며 동시에 땅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 너머 보이는, 여전히 멋진 설경의 모습이 오투리조트만의 매력 아니겠나.
마지막 석양의 찬미.
석양이 깃든 연화산의 설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둥근달이 솟았다.
산봉우리 위에 솟은 이 찰나가 절묘했다.
매봉산, 금대봉도 서서히 어둠에 젖어들었다.
태백에서의 마지막 밤이자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밤은 오랜 여정 끝의 전형적인 씁쓸함과 함께 차분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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