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사북의 잃어버린 탄광마을_20141129

사려울 2015. 8. 18. 02:34

전날 늦은 밤, 신고한 터미널에 도착했을땐 이미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는데 일행을 만나 다른 곳은 둘러볼 겨를 없이 강원랜드 부근 하이캐슬리조트로 가서 체크인 후 조촐한 맥주 파티를 하고 깊은 잠에 취해 버렸다.

서울에서 출발할때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피로와 더불어 후딱 비운 맥주가 갑자기 풀린 긴장을 더 이완시키면서 늦잠을 자게 될 줄이야.



하이캐슬리조트에서 베란다에 나와서 보니 역시 지대가 높긴하다.

강원랜드가 밑발치에 보이는데 완전 산으로 둘러싸여 절경이 따로 없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으나 이따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 쬐이는데 비 온 후라 그런지 대기가 깨끗해서 왠쥐 기분 좋은 여행이 될 것만 같다.

느낌 아니까~



원래 지도 없는 여행이라 당일 지도를 펼쳐보니 하이캐슬 뒷산 너머가 예전 광산으로 활기를 띠던 곳이란다.

길을 따라 1천미터가 넘는 화절령을 지나면 영월 상동이 나온다는데 산길이라 거리도 멀고 소요시간도 만만찮아서 나는 화절령 능선인 하늘길을 택하게 되었다.

비포장에 돌무더기가 널린 가파른 길을 오르는게 쉽지 않았는데 길 도중에 이런 폐가가 가끔 눈에 띄인다.

땅 자체가 대부분 시커먼걸 보면 예전 광산이 성행했음을 보여 주는 거 같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이런 자그마한 평지도 있는데 거기서 사북은 산들 틈새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쳐다 본다.



오전에 내린 비로 땅이 젖어 있어 오르막길에 한번씩 바퀴가 슬립된다. 



차량 통행은 안되지만 도보로 들어가 볼 수 있는 막사 같은 건물들도 보인다.

땅이 석탄 아니면 황토다.

황토 그러면... 고구마 생각이 절로 나네.



드뎌 화절령 정상에 도착했다.

보이는 아라리 고갯길이 내가 진행할 반대 방면인데 이 길을 따라 쭈욱 진행하면 해발 1470미터의 두위봉이 나온단다.



내가 진행할 아라리 고갯길은 하이원 스키장-백운산-하이원CC-함백산으로 연결되는 높은 고지의 능선길인데 사실 여긴 처음이라 긴 구간을 가기 보단 호기심 해소가 목적이라 적당히 가다가 도롱이연못을 거쳐 위성지도에 있던 광활한 탄광의 흔적을 보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라 비장한 마음 갖고 출발!





요즘 보기 힘든 이끼들.

솔이끼? 우산이끼?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 자연시간에 수업 집중할 걸..



화절령길 하이원 컨트리클럽 방면으로 갈 것이여.



처음 만나는 넓직한 공터에 이렇게 정자가 하나 외로이 있다.

오는 도중 MTB를 즐기는 동호회원들을 만나 잠시 길을 비켜 주자 간단한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참 기분 좋다.

워낙 인적이 없던 곳이라 사실 출발 전에는 덜컥 겁도 났었는데 사람들 만나는게 이렇게 반가운가 싶고 게다가 지나는 꽤나 많은 분들이 인사를 주시길래 발걸음이 급 가벼워서 거의 날아 온 거 같다.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이 아기자기한 지도 앞 돌의자에 앉아 미리 담아온 텀블러의 커피를 마셔 본다.

아직 뜨거움을 간직한채라 그 온기조차 반갑고 더욱 포근하다.

차를 세워 놓고 도보로 온 거리가 2~3킬로 되려나?

알고 보니 여기에 도롱이연못과 아롱이연못이 있다.



이게 바로 도롱이연못.

광산으로 인해 싱크홀처럼 지대가 함몰하면서 물이 고인거란다.




헐...

여긴 벌써 얼음이 얼었군.

지대가 높아서 춥긴 추웠는데 이렇게 까지 빨리 얼음이 얼 수 있나 싶지만 제법 광범위하게 살얼음이 덮혀 있다.




비가 온 후라 연못 주위는 진흙탕인데 물이 맑다기 보단 표면에 이랑이 없어 거울 같다.

도룡뇽이 산데나 뭐래나?



남쪽 영월 방면에 구름을 비집고 햇살이 내리쬐이기 시작하는데 빛내림이 연출되기 시작하더라.



보이는 길 우측 아래가 아롱이연못이다.

이 길을 쭉 가면 주차해 놓은 화절령 공터와 만나게 되어 있두마.



도롱이연못과 다르게 접근하려면 무성한 수풀을 헤집고 가야되는데 귀찮아서 보는 걸로 패쑤~



영월 쪽을 바라 보니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군데군데 이런 이정표가 보이는데 하이원컨트리클럽을 굳이 여기에 표시할 필요 있나?

골프 치러 오신 냥반들이 이길을 걸어서 갈 일은 없잖은가.

아예 이름난 지명이나 지형물을 표시하는 방법이 두루두루 알리기에 좋을 듯 싶은데...



자.. 얼릉 다시 출발해야지.



우리가 잠시 쉬던 공터가 이렇게 넓직허니 쉬기엔 딱 맞다.




가는 길에 이런 비 내린 흔적들이 있던데 영롱하다는 표현을 이런데 써먹어야 되겠다.

풀이나 가지에 맺힌 그 물방울들이 아직 달아나지 않은 걸 보면 여긴 모든게 자연이 보호하고 있나 보다.



비가 내린 뒤에 개이기 시작하던 차, 남쪽에 보이던 큰 산봉우리에 구름이 하늘로 송글송글 움직이고 있다.

정말 장관이여...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 보니 유별나게 큰 봉우리 하나가 우두커니 째려 보고 있다.

아마도 이게 두위봉이겠지?



산에서 쉬던 구름이 점점 갈 길을 가기 위해 하늘로 날아 오르고 있다.

그 구름 조각들이 모여 허공에 큰 구름을 부풀리기 시작하던 저 장관.

그 멋진 장관을 연주하듯 햇살이 나리 쬐이며 선명하고 거대한 커튼을 둘러치기 시작했다.





망원렌즈로 잔뜩 당겨 보니 마치 신선이 사는 동네 같다.



겹겹이 구웠다는 빵이 생각 난다.



빗방울이 가지에 맺혀 작은 등불을 밝혀 놓았다.

이쁘고 초롱해서 사진으로 담아보려 해도 모든걸 보여주지 않는구나.




따사로운 햇살이 내가 있는 곳까지 비추기 시작하는 이곳은 오늘의 목적지인 거대한 탄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5킬로 정도 걸어 왔나?



탄광촌이 이제는 폐광되어 흔적만 남아 있고 그 쓸쓸한 자리에 앙상한 나무 뿐이다.

이 언덕 뒷편에 하이원스키장이 있겠네.



아주 거대한 골짜기를 품은 곳이라 영월 방면으로 겹겹이 쌓인 산능선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거대한 곳을 일일이 뒤덮고 있는 빛의 커튼이 이제는 제 임무를 다했다는 듯 약해지려 한다.



티 없이 맑고 간결한 겹겹이 쌓인 선들.



우측편 하늘에서 한무리 구름이 거대한 구름과 합류하지 않고 어떤 형상을 만들어 간다.




망원으로 당겨 보니 마치 옛광산의 영광을 각인시키려는 듯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광부들의 장화 같다.

거짓말처럼 따로 떨어져서 한참을 이런 조각을 함과 동시에 이제 하루를 지키던 태양도 점점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는 태양에 맞추어 나도 일행과 함께 잰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산중의 마술은 언제나 봐도 경이롭지만 늘 지켜볼 수 없는 장관이라 먼 길을 돌아 온 내 시간의 보람은 늘 무거운 등짐처럼 가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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