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병신년 설날 연휴의 둘째 날_20160207

사려울 2016. 3. 28. 01:10

이른 제사 준비와 제수용품 감량(?)으로 올해는 여느해 보다 상당히 프리하다.

내일이 설날이라 전날은 오전에 미리 쟁여 놓을 수 없는 생물들-나물과 떡 같은-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자전거를 이용해 배낭을 채우곤 잠시 허용되는 틈에 동네 여행에 여념 없으련만 이번 설날은 어제 미리 준비가 완료되어 부담 없이 싸돌아 다닐 수 있었다.

특별하거나 뜻 깊은 여행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물 건너 갔으니까 꿩 대신 알이랍시고 큰 걸 기대하기 보단 소소하게 동네 여행으로 만족해야 겠지만서리 이왕이면 좀 이채롭게 욕구를 채우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낮엔 자전거, 밤엔 반석산 둘레길을 결정, 벌처럼 신속하고 절도 있게 준비해서 가출 단행했다.



앞만 보고 무조건 고고씽 하던 사이 벌써 오산천변 자전거길의 최북단인 기흥동탄IC로 내닫았다.

예전 같았으면 오는 도중 인적이 없는 그 허허로움이 좋아 사진을 틈틈히 남겨 뒀겠지만 작년 한가위와 마찬가지로 이번 설도 느즈막한 시각에 나온 덕에 이색적인 허허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가끔 지나거나 공원에서 쉬는 인적이 내 생각보단 제법 많았기 때문에 내 편한 대로의 방법인 걍 지나쳐!

더 이상 갈 수 없는 이 길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이런 한적함을 빠뜨릴 수 없겠구나 싶어 그나마 남겨 뒀나 보다.



언론에서 지구 온난화라며 난리법석을 떨던 따스한 올겨울이 뒤늦게1월 들어서야 기록적인 한파 운운하며 또 한바탕 난리를 피울만큼 쬐끔 춥던 그 여파일까?

호수가 아주 견고하게 얼어 있는 노작공원에 예년 명절과는 달리 인적이 있는 것 자체가 도리어 늬우스감이다.

한파 이후에 찾아온 이번 설 명절은 포근할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세상을 자유롭게 휘젖는 바람으로 생각보단 추웠다.

시방 그 정도 추위로 쫄 내가 아닌데 만만하게 입고 나왔다가는 빅사이즈 빙수 버금가는 추위 먹긴 딱이다.

귀한 시간과 여유를 이불 안에서 벌벌 떨긴 아깝지 않은가!



동탄 유일의 폭포 위를 지나는 다리가 근래 만만찮게 이용하는 둘레길의 일부다.

대부분 밤에 이용해서 그 위용(?)을 확인하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한발짝 벗어난 자리에서 바라보면 반석산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피할 모양으로 높직히 떠서 다리를 얹어 놓았다.

아직은 겨울 위세가 당당하시어 흐르던 물이 얼어 있지만 봄이 오면 계절의 소리를 들려 주기 위해 어디선가 흘러야 될 물을 모아 놓았겠지?



둘레길을 걷다가 항상 쉬게 되는 전망데스크 중 오산천 방면에 놓여져 있는 녀석이다.

한껏 고개를 치켜 들어야만 볼 수 있는지라 위에 올라섰을때 탁 트인 시계가 일품이라 나름 이름값을 한다.

겨울이라 그렇지 여름이 되면 신록에 가리어 육안으로 보기 힘들거야.



이제 동탄을 벗어나 오산천을 따라 오산으로 힘차게 페달을 내저었고 오산에 당도하기 전 연휴로 사람들이 빠져 나간 텅빈 산업단지가 보인다.

몇 킬로 정도 되는 이 텅빈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무아지경으로 전진하다 보면 오산 초입에 교회 하나가 `어서옵쇼' 반긴다.

이 자전거 노선을 택하고 나서 이 길을 항상 지난 만큼 이제 친숙해지다 못해 건물들조차 있어야 될 자리를 잘 지키고 있나 훑어 보게 된다.

무사히 연휴동안 열심히 쉬고 계시는 구먼.


오산천 고수부지의 자전거길을 힘차게 내딛는데 얼마 못 가 열심히 페달질 했던 체력이 바닥 났다, 흐미--;;;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왔던 길을 향해 텅빈 자전거길을 한 번 돌아 봐도 여전히 추운 겨울의 명절 연휴 답게 조용하다.

길 양 옆에 빼곡히 펼쳐진 갈대숲은 나름대로 이 장소의 명물인데 그 갈대 마저도 봄을 준비하려는지 앙상한 가지들 뿐이다.

여기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동탄은 자전거길에 사람들이 더 많은데 비해 여긴 무척이나 잘 지켜진다.

지나간 초겨울 쯤인가 동탄 오산천 인근 자전거길을 따라 가는데 한 사람이 `사람 다니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냐'고 내 뒷통수를 바라보며 한 마디 던져 `여긴 자전거 길이라 길 바닥에 자전거 표시까지 그려 넣었고 개울 건너편이 도보길이랍니다'라고 했더니 미안하다는 말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린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동안 오산까지 허벌나게 온 거 같은데 그때마다 도보길과 자전거길 구분이 투철한 게 여기로 넘어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수부지 가장 남단이자 오산 시가지의 남단이기도 한-물론 경부선 너머에 즐비한 아파트 단지가 더 남쪽으로 뻗어 있긴 하다- 맑음터 공원의 타워가 보인다.

도로도 한산하고 공원도 한산해서 한시적인 명절 전날의 여유를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다.




빛바랜 녹색은 도보길, 벌건 포장길은 자전거길.

맑음터 공원에 머무르지는 않고 이내 가던 길에 접어들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기 전, 한산한 고수부지를 바라 보며 비장한 다짐을 추스려 출발하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업단지 곳곳에 있는 자그마한 쉼터에서 처음으로 한숨 돌리며 틀어 놓은 음악의 볼륨을 크게 올렸다.

텀블러를 열자 커피가 뿜어 놓은 김이 자유를 만난 듯 허공으로 힘차게 퍼져 가는 그 모습에 더 마시고 싶어져 후딱 마시며 사방의 정적을 깨듯 더 크게 음악 소리를 올려 한참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두다리 뻗고 쉬는 사이 하루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서산에 떠 있는 구름이 이글대는 태양을 집어 삼키며 하루 해가 서서히 지는데 얼마 없는 구름이 하필 지는 태양의 길목에 모여 있다.

맨날 뜨고 지는 태양일진데 이런 특별한 날엔 왜 감회가 다를까?




늦은 밤에 지나는 아까운 시간을 부여 잡고 싶은 욕심에 가방을 메고 반석산 둘레길로 향했다.

전날은 삼각대 챙기는 게 귀찮아 손떨방 망원렌즈를 끼고 여기서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18 렌즈와 작은 삼각대를 챙겨 온 만큼 대부분 장노출 시켜 여유를 갖고 사진을 담았다.

여긴 오산천 전망데스크를 지나 나뭇잎(?) 전망데스크.

거의 정상 바로 아래 있어서 높이가 후덜덜(?)한 만큼 동탄 북편의 너른 전망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이고 반면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여긴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연휴 초입에, 늦은 밤에, 아직 나이 어린 길이라 이 길을 걷는 내내 한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이 묘한 기분은 무섭다거나 고독하다거나 희열이 느껴지는게 아니라 혼자서만 누리고 있다는 특권과 동시에 고립감?



전망데스크로 들어오는 출입구.



전망데스크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겨울의 벌거벗은 나뭇가지들의 빼곡한 틈 사이로 그물처럼 뻗은 도로와 매끈하게 평행하는 용서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가 보인다.

노출이 좀 과했던지 퍼지는 가로등이 지나쳐 나쁘지 않았던 윤곽을 집어 삼켰다.



동쪽으로 바라보면 그나마 나지막한 나뭇가지 넘어로 동탄2신도시의 시범단지가 한눈에 가깝게 보인다.

잊고 지내던 저편의 신도시가 어느샌가 불빛이 화사할 정도로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망데스크에 진입하는 시점에서 바라 본 장면인데 잠시 쉴 수 있는 넉넉한 의자 인심이 비교적 추운 날씨에도 편하게 앉아 땀을 식힐 여유를 배가 시켜 준다.

평소엔 노인공원에서 시작하는 둘레길 탐방이 오늘만큼은 반대 방향으로 갈 심산으로 주택전시관에서 출발했다.

그런 만큼 이 전망데스크의 위치는 시작과 가까운 위치라 한참을 걸어야할 여정을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오산천 방향으로 다시 출발했다.

적막하지만 이토록 시야가 사방으로 트인 멋진 경관은 다음에도 여전히 볼 수 있지 않은가.



곳곳에 이런 벤치가 지나는 사람들의 가쁜 숨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 준다.

덩그러니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그나마 썰렁한 벤치를 포근하게 지킨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오산천 전망데스크도 여전히 적막하다.

입은 재킷 속에 가쁜 숨만큼이나 땀이 흥건한데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배경에 두고 오산천 너머 너른 벌판을 바라 봤다.

한 밤의 깜깜하리란 예상과는 달리 대지를 비추는 여러 빛의 파동들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는 만큼 작은 빛에 예민해진 신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밤풍경에 도치되었다.

카메라로 장노출했다지만 육안으로도 어느 정도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던게 설날이라 달빛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흐린 하늘과 달리 대기는 청명한 덕분이다.



한 동안 앉아 있어도 오산천 산책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텅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아직은 겨울이 만연한 밤바람을 뒤로 하고 고요한 설날을 맞이하러 집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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