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보가 보고 싶진 않았다.
돈 지랄 떨어 놓은 작품에 대한 경외심보단 증오심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으니.
그럼에도 강정보를 택한 이유는 금호강 따라 가는 길의 가장 현실적이고 선명한 성취감이 강정보였기 때문이고 작년 라섹수술 후 그 부근, 다사까지 갔다가 지치고 지친 나머지 강정보는 내 목적지가 처음부터 아니었다는 자기 당착에 빠져 뎁따시 큰 아메리까~노 한 잔만 마시고 돌아 왔기 때문에 남은 숙원(?)도 풀 목적이었다.
토 욜 점심 즈음, 동촌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
출발 하자 마자 수 년 동안 그냥 방치해 온 아양철교의 새로운 단장이 보여서 한 컷.
뭔가 싶어 구글링해 봤더니 명상교로 탈바꿈 한단다.
명상교?
다리는 그대로 둔 채 유리로 마감하여 전망대와 전시관으로 만든다네?
한 쪽에선 이렇게 비둘기 떼가 점심 식사 중이시다.
흐린 토 욜 오후의 시작이라 비교적 사람들이 많다.
가을 구경에 운동이 목적이겠지?
금호강과 신천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 이렇듯 금호강 자전거길과 신천 자전거길도 만나 자전거 수리센터 겸 휴게소 겸 만남의 장소가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도 많다.
시내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터라 일반인들은 접근이 만만찮아 대부분 자전거 동호회나 그에 버금가는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갈 때마다 그런 분위기였으니 그러려니 추측하는 거지만 가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추측에서 확신으로 점점 바뀐다.
나도 잠시 에너지바 한 개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두물머리에 갈대밭이 보기 좋을 만큼 크고 무성하다.
비 오기 전 흐린 날이라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부는 바람이 더해져 갈대 줄기들이 신났다.
가을이 익으면 여기 갈대밭도 무르 익어 많은 사람들이 구경 온다는데 예행연습을 하는지 손을 연신 흔드는 폼이 익숙하고 절도가 있다.
금호강 두물머리에서 여기까지는 거의 16km인데다 동촌에서는 27km 정도 거리다.
그만큼 앞만 보며 달려 와서 중간중간에 쉬지도 않고 사진도 못 찍었다.
다리가 뽀개지고 궁뎅이가 내려 앉을 것 같은데 쉬다 보면 마음이 약해져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 보낼 것 같아 걍 무조건 고고씽 했지.
성서5차 산단지구에서 다사 방면으로 바라보고 찍은 사진인데 고요한 강물을 보고 있으니 마치 거울 같으면서 도나우강 뭐시기가 들어가는 클래식 곡조가 생각난다.
아래 사진은 서 있던 자리에서 방향만 틀어 자전거길 찍은 것.
몽실몽실한 이름 모를 풀들이 자전거길 가장자리에서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해 준다.
보이는 다리가 세천교라고 자전거길 이정표에 있고 그 다리를 넘어 가면 다사.
의외로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는 남녀노소가 생각보다 많다.
스포츠로써 자전거가 참 좋긴 한데 난 사실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운동보단 역마살 충족에 더 가깝다.
차를 타자니 나 보다 덩치 큰 녀석을 아니 신경 쓸 수 없거니와 차도를 벗어나면 이 녀석이 영 힘을 못 쓰고 걸어 가자니 갈 수 있는 공간의 제약이 너무 심하다.
그 중간 수단이 바로 자전거가 제격이더라.
그리하야 난 싸구려 자전거를 탄다네~
드뎌 동촌에서 장장 32km를 달려와서 만난 낙동강-금호강 두물머리.
나무 좌측이 금호강이고 그 우측이 낙동강인데 구글어스를 보니 중간부터 우측까지 뻗은 게 섬이더라.
그 섬에 경작을 해서 꽤나 큰 밭이 있던데 어떻게 건너 가는지 불가사의다.
농기계 같은 게 찍혀 있는데 이쪽으로 건너 가는 다리도 없었다.
호기심이 하나 생겼으니 언젠가 풀어야지.
뚝에서 바라 본 강변은 지상 낙원 같다.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있는게 마치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군침 흘릴 만한 장소가 아닐런지...
강정보 우주선처럼 생겨 먹은 디아크(The arc)에 뭐가 있나 싶어 올라가 봤더니 3층에 파스쿠찌가 있어서 '얼씨구 좋구나~'하면서 아이스 아메리까~노 한 사발.
사실 4대강 삽질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아 걍 패스 할려고 했는데 강은 죄가 없으니, 게다가 누명을 씌우는 것 같아 아이뽕으로 파노라마 사진 찰깍!
낙동강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흘러가는 형상이며 가장 우측이 디아크다.
이렇게 먼 데꺼정 사람들이 많이도 왔다.
허기야 내가 먼거지 성서는 바로 지척이라 그리 부담되지는 않겠다.
강변 수풀을 보고 있자니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긴다.
돌아가는 32km는 의외로 수월하게 갔다.
이번에 업어 온 JBL charge를 이용해서 음악을 짱짱하게 틀어 놓고-파우치가 네오프렌 소재라 음악이 다 묻혀 버리지만- 도중에 내리는 비를 맞다 보니 휴일의 달콤함은 누군가 주거나 어디선가 숨어 있는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조리하는가의 문제 같다.
근사하고 멋진 관광지에서 풍성한 문명의 도구를 끄집어 내는 피곤함보단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라도 내가 받는 감흥에 따라 더 흥겨워지는 것을, 게다가 가을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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