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세월의 슬픔에 어쩌면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언젠가 한 번 더 찾아 오고 싶었던 상동의 길목을 지키는, 인고의 세월이 새겨진 소나무와 힘겨움을 반증하는 듯한 고갯길은 가을색이 아직은 옅은 비교적 이른 가을이었다.
전날 퇴근 후 늦은 밤에 단양에 도착했고, 너무도 오랫만에 떠나게 된 여행의 반가움을 서로 나누며 허벌나게 술을 빨아 쳐묵하신 덕분에 늦게 출발한 아쉬움은 부메랑처럼 동선의 제약으로 되돌아 왔다.
어쩔 수 없이 도중에 영월 막국수 집에서 후딱 점심을 뽀개고 커피 한 잔씩 손에 든 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상동 방향으로 출발, 그래도 일 년여 간격으로 두 번째 행차시라고 제법 길은 낯 익었다.(사라진 탄광마을, 상동_20150912)
목적지는 상동이 아닌 태백의 옛 길을 경유한 울진 백암온천의 숙소 였다.
도중에 꼭 들리겠노라고 다짐 했던 장소는 솔고개, 이끼계곡, 만항재-예기치 않게 멋진 눈꽃 천지를 구경했던 여운이 남은 덕분이겠지(눈꽃들만의 세상, 함백산_20151128)-, 태백 황지전통시장-한우를 지나칠 수 없는 벱이지-, 울진 도화공원을 거쳐 이 날의 최종 목적지이자 숙소인 백암 한화콘도까지 였다.
그 빼어난 자태는 여전하다.
작년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서 증명 사진을 찍어 드렸고 이참에 서툴게 지나쳤던 후회를 만회하고자 이번엔 소나무가 들려 주는 사연을 듣고 싶어 언덕으로 직접 올라 가을 바람 향기도 맡을 심산이었다.
작년이나 올해나 가을의 정점이 아니라 관광객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관광버스 한 두 대가 들르는 건 마찬가지고 이번엔 오토바이 동호회? 사람들이 집단으로 왔두만.
허나 한결 같이 매너남녀들이라 아주 조용히 와서 소나무를 둘러 보곤 조용히 빠져 나갔지.
소나무 언덕에 올라서면 그 멋진 소나무만 있는게 아니었다.
좁을 것 같던 언덕에 예상 외로 너른 잔디 정원을 꾸며 놓았고 숨을 헐떡이며 올랐을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쉴 수 있도록 벤치가 얹혀져 있어 설사 땀을 흘리지 않아도, 숨이 가쁘지 않아도 잠시 앉아 바람결을 느끼며 사색에 잠겨야만 될 거 같다.
대표 선수인 소나무는 이렇게 아랫단에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갈 길이 멀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여기서 40여 분 머무르며 살랑이는 가을 바람의 속삭임을 들었다.
텅스텐 노다지에 희망을 걸고 첩첩산중의 골짜기인 상동으로 향하던 나그네들은 그 이전의 삶을 버리고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불확실한 미래와 기대에 얼마나 많은 고민의 다양한 표정으로 이 소나무를 지나쳐 왔을까?
억겁 동안에 자리를 지키며 그 수 만가지 표정을 이 소나무와 고갯길은 필시 안도의 다독임에 큰 힘이 되었으리라.
솔고개를 더 많은 시간 동안 내려다 보며 지켜 주었을 단풍산의 위세가 더욱이 든든해 보이는 이유는 모든 고민에 대해 편향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들어 주며 느리지만 덤덤히 치유해 주었을 것만 같다.
작년 솔고개에 왔을 땐 높디높은 단풍산이 지나가는 구름과 함께 했었는데 올해는 다행히 전형적인 가을 날씨 덕분에 그 자태를 과감 없이 볼 수 있었고 산 봉우리에서 부터 내려오는 가을의 정취를 아주 또렷하게 지켜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두려움과 기대를 이 산과 솔고개에 넋두리 했다라면 난 여행의 출발에 대한 설렘을 넋두리하곤 다시 자리를 일어나 갈 길을 재촉했다.
아직 많이 남은 잊혀진 사연은 다음에 듣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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