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대한 사색

귀한 유물 Tape_20180118

사려울 2019. 3. 19. 05:51

효목동으로 건너 가던 중 한 때 신청곡과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그 곡들을 녹음해 주던 레코드 가게가 눈에 띄였다.

아직 그 집이 있었다니!

반가운 마음에 길가에서 몇 컷을 찍는데 익숙하던 노래가 슬쩍 흘러 나온다.

옛 생각도 나고, 반가운 친구를 만난 양 정겹기도 하고 해서 무작정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장년의 사장님께서 자리를 지키고 계시면서 찾아온 손님과 담소를 나누시는 중에 신기한 구경 거리가 있어 눈 구경과 더불어 폰 셔터 허락을 받곤 초강력 집중력을 발휘하여 빼곡하게 진열된 카세트 테잎들을 훑어 봤다.



어릴 적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지만 분명 여기에서 신청곡을 주고 녹음 테잎을 구매한 곳은 확실히 맞다.

간판 이름은 그대로.

내부에 진열된 테잎이나 LP도 익숙하고 친숙한 가수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걸 어떻게 모아 아직도 운영을 하실까?



빛 바랜 가수와 포스터들이 빼곡한데 늘 매끈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이 있음에도 이런 불편한 음악 듣기가 가능할까 싶지만 지금과 비교해 봤을 때 재생 횟수와 비례하는 음질 열화, 아날로그의 불편함은 본질이 되는 음악 듣기에 상당히 충실 했고, 관리에 따라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되는 미디어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테잎이나 LP 관리도 나름 지대한 신경을 썼다.

또한 한 가수의 앨범을 구매하면 중간 듣기가 불편해 처음부터 인내를 발휘하여 침착하게 음악을 들었던 만큼 한 가수의 앨범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즐겨 듣게 되었고, 그 중 가장 좋은 곡들을 엄선해 새로운 테잎에 레코딩을 하여 원본의 열화를 가급적 피하며 소유의 충족까지 만족 시키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 없을 만큼 첫 느낌이 좋은 곡만을 구매하고, CD-이 마저도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에서 음원을 인코딩하여 몇 번 듣다 마음에 안 들면 지운다거나 여러 곡들을 임의로 뒤섞는 등 당시에는 상당히 불편한 작업들이 손 끝을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해결 되면서 동시에 같은 곡을 주구장창 들어도 음질 열화는 당연히 없어 음원의 소중함을 그나마 잊어 버렸다.

하드디스크 안에 저장된 수 만 곡들은 가상의 공간에 쌓여 있다 뿐이지 더 이상 소유욕을 자극하는 신경은 마비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집 한 켠에 쌓여 있는 테잎들은 여전히 예전과 같은 시대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어패라니.



잠시 둘러 보다 사장님과 대화, 전국 각지에서 테잎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부르는게 값이란다.

나처럼 적당한 관심만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취향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무수히 많을 거야.

일례로 중고나라에 워크맨이나 LP 관련 검색어만 날려도 무쟈게 많이 뜨거든.

하긴 집에도 10여 대의 워크맨 중 최소 2대는 정상 작동이 가능하고, 카세트 데크에 CD 워크맨도 있으니까 나도 왠만큼 관심이 있긴 하다.

여전히 테잎 상태가 더 안좋아 질까 싶어 A,B면을 한 번씩만 쭉 듣곤 다시 신주단지 모시듯 서랍에 고스란히 넣어 두니까 관심 뿐 다시 불편한 음악 듣기에 지쳐 버리는 조급함을 이길 순 없다.



오랜 만에 만나는 귀한 친구를 하나하나 헤아려 보며 잠시 서 있는 불편함에 지쳐 가게 문을 열고 나올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 인내를 붙잡아 둘 수 없는 조급함이 아날로그 시대의 침착함과 깊이 있게 즐기는 감각을 망각해 버린 것만 같아 씁쓸하다.

시대의 향수처럼 당시 물품들을 간직 하면서도 진득하게 즐기지 못하는 건 플레이어의 부재만으로 치부하기엔 스스로에 대해 지나친 합리화이자 배려 아닐까?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시대를 풍미하던 명반과 지칠 줄 모르는 문화의 갈망은 내 생애에 잊지 못할 추억과 늘상 평행선을 그리며 행복으로 빚어 내는 파랑새와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