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겨울 바닷가_20141213

사려울 2015. 8. 20. 00:45

전날 퇴근해서 바로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울진행 버스를 탔지만 원주 지날 무렵부터 대책없는 폭설로 더디게 나아갔다.

오늘 중으로 도착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그나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할때 즈음이라 생각보단 이동 속도가 괜찮았고 강릉을 지날때 밖을 보니 그짓말처럼 화창해서 밤하늘에 별이 쫑알쫑알 빛나는 중이었다.

6시간 채 걸리지 않았으니 그나마 선방했다고 봐야지.



완전 텅빈 울진 터미널에 도착해서 일행을 만나기 전에 올라가는 차편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는 벱이쥐.

일단 아이뽕으로 시간표 정도는 챙겨 놓고~

동서울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삼척-임원-호산-부구-죽변을 거쳐 울진을 종착점으로 하는데 앞 터미널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많아 마지막 울진에선 나를 포함 3명 뿐이었다.

추운 겨울에 적막한 터미널 안은 자그마한 난로 하나만 있을 뿐, 그마저 난로는 식어 있었다.

그런 기분 참 묘하더구먼.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을 만나 2주만의 재회에 회포를 풀며 춥지만 따스한 밤을 보냈다.



월송정과 가까운 곳이었을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때마침 찾아간 바닷가는 조용한 마을과 더불어 전체가 너무 한적해서 세찬 바람과 파도 소리만 들렸다.

바람이 몰고 오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이 겨울 바다의 볼거리 아니겠는가!



사진을 몇 십 장 찍었음에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어 물보라가 크게 휘날리는 사진만 올려 놔야지.

옆에서 낚시에 열중인 강태공은 우리가 이리저리 다녀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넓은 바다로 던져진 낚시대에 온통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워낙 바람이 세차다 보니 고스란히 노출된 얼굴과 손은 금새 얼어붙을 기세였기에 그 바람살에 못 이겨 서둘러 남쪽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후포에 도착, 울진에서 여기가 가장 활기찬 곳이 아닐까 싶을만큼 전체가 북적였다.

마침 5일장날이라 후포항으로 접어 드는 시장엔 주민과 관광객들이 넘쳐 났고 그런 활기가 우리에겐 눈요깃거리여서 시장을 쭉 둘러 보면서 먹거리도 곁들였다.

왠지 시골 장터에 오면 하나 정도는 무언가를 꼭 사야될 것만 같다.

그날은 검정 고무신이 왜이리 탐나는지...



후포항으로 가기 전에 바닷가를 따라서 시선을 옮기는데 마치 떠 있는 섬처럼 이런 장면이 보였다.

연결된 육지인데도 바다에서 일렁이는 아지랭이가 밑단을 똑 잘라 버렸다.



해수욕장 방파제에 올라 후포항을 찍었더니 아주 작고 초라하게 나왔지만 실제 가 보니 규모가 꽤 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고 활기가 넘친다.

언덕에 있는 하얀 녀석이 등대 되시것다.

대기가 깨끗해서 하늘이 아주 맑은 날이었구먼.






일행의 지인이 대게 경매를 직접 하신다길래 대게를 넉넉하게 장만할려고 했더니 대게는 차라리 1월이 더 싸고 좋다고 하신다.

대신 홍게가 가장 맛있고 저렴하고 씨알이 굵을때라 그걸 추천하시길래 흔쾌히 푸짐하게 마련했고 덕분에 큰 게를 원없이 먹은 겨울이었다.

항구 경매장에서 직접 그 분이 쪄주시는 사이 큰배 한 척이 들어오는 걸 갈매기들이 눈치채곤 떼거지로 몰렸다.

이 녀석들이 워찌나 많은지 조금만 전망 좋은 자리만 있으면 프리미엄을 얹어서 분양 받으려 줄을 선다.

그렇게 바람이 불고 날이 차도 이 녀석들은 전혀 추위도 모르고 바람이 불어도 바람을 타고 떠다니기까지 하니 그 모습이 급! 부러워~




후포 인근에 이런 바다산책길이 있던데 폐문시간이라 그 위에 올라가보진 못했다.

그때 대전에서 오셨다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아드님이 모시고 왔는데 효도 관광차 오셨단다.

그 어르신이 늦었지만 금방 구경 좀 하자고 하셔도 인정머리 없는 울진 공무원 그 분들은 퇴근시간이라 안 된단다.

우리가 어필도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고 인정사정 없이 돌아서 금새 차를 타고 휑하니 가버린다.

그냥 발걸음을 돌리시는 어르신 뒷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원리원칙을 따지는 그 분들은 끝까지 원리원칙주의자로 남으시길 바라며 만의 하나라도 어긋나면 갈매기 부리로 대가리 쪼아부릴껴.

워찌나 퇴근하는 그 순간이 절도 있고 신속하시던지.



완전 해가 지고 우리도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쭉 둘러 앉아 따스한 커피 한잔씩 마시며 담소의 시간.

시골 마을에 텅빈 커피집에 우리가 들어서자 마치 손님을 몰고 온 거처럼 시끌벅적해졌다.

그래도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찬 겨울 넘어 따스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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