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천 5

평온의 결실_20200920

뙤약볕 아래 태연히 갈 길을 가던 냥이를 부르자 냉큼 돌아서서 가까이 다가온다. 커피 한 잔 마시던 차, 츄르 프라푸치노 한 잔 할래? 가을이면 만물이 풍성해진다고 했던가? 다짐과 도약이 풋풋한 봄이라면 고찰과 성숙은 결실과도 같은 가을이렷다. 자연과 어우러진 생명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듯 하나를 위해 일 년을 버틴 결실은 인내가 뿌려져 더욱 아름답다. 강과 길을 따라 들판으로 번진 가을은 수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잠시 걷던 수고로움에 영혼의 물 한 모금을 살포시 건넨다. 내가 유쾌한 건 '말미암아' 불씨를 달래고, 네가 아름다운 건 '믿음'의 도화선이다. 여주 행님 댁에 도착, 머릿속은 온통 평온만 연상된다.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던 한 쌍이 아쉽게도 제 짝을 잃었다. 한 편의 아름다운 ..

초여름 정취에 취한 들판, 여주_20200607

여주 벌판을 뒤덮은 계절의 정취를 보면 봄과 확연히 다른 여름이 보인다. 묘하게도 난감할 것만 같은 계절은 추억을 남기며, 붙잡고 싶은 미련은 떨칠 수 없는데 앞선 편견으로 나래도 제대로 펼치지 않은 계절에 대해 가혹한 질곡을 씌워 버린다. 후회에 길들여지기 싫어 무심한 일상도 감사하려는 습관은 절실하다. 길들여진 습관을 탈피하기 힘들어 그 위에 호연한 습관을 덧씌울 수밖에. 단조롭지 않고 세월의 굴곡 마냥 들쑥날쑥한 벌판에 한발 앞서 여름이 자리 잡았다. 석양을 등진 흔한 마을길에, 흔한 마을을 지키는 각별한 나무. 석양이 뉘엿뉘엿 서녘으로 힘겹게 넘어간다. 여름의 햇살이라 하늘과 세상 모두를 태울 기세다. 고추 모종이 결실의 꿈을 품고 무럭무럭 자란다. 감자꽃이 뾰로통 피어 올 한 해 거듭 나기가 쉽..

추억을 걷다_20170419

길지 않은 시간이 주어 졌음에도 나는 주제 넘게도 무리한 여행 계획을 세웠고 비웃기라도 하듯 출발하는 저녁 시간부터 계획이 어그러져 1박의 여행은 그저 한적한 곳에서 잠이나 자고 오는 반쪽 짜리가 되어 버렸다.게다가 출발하는 이른 저녁 시간에 기습적으로 내린 비는 사실 가는 길조차 나의 단념을 부추겼으나 평일 한적한 시간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던 만큼 강행의 깃발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이번 만큼은 게릴라식 여행이라 3주 전에 미리 예약해야만 하는 회사 복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었지만 평일의 혜택은 모든 숙소가 단기 비수기라 아쉽긴 해도 주말 휴일에 비해 저렴하다는데 위안 삼아야 했다.충주 켄싱턴 리조트는 그나마 집에서 접근이 용이한, 여행 기분을 충족하면서 이동 거리가 짧은 곳인데다 충주는 이미 ..

추억과 시간이 만나는 곳

충주 봉황휴양림에도 아직은 가을 내음만 나고 정취는 느끼기 쉽지 않았으나 조용한 나만의 휴식을 보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밤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볼 틈 없이 바로 피로를 달래곤 일어나 보니 햇살이 전형적인 가을 답게 모든 걸 태울 듯 따갑다. 이번 숙소는 가장 안쪽에 들어서 있는 통나무집인 다래넝쿨집이라 아주 깊은 산중에서의 하루를 보낸 착각이 들만큼 조용하고 아늑했다.약간의 우풍을 느낄 정도로 가을 아침답게 약간 서늘했지만 해가 뜨고 금새 불볕더위를 방불케 했다. 현관을 나와 봉황휴양림을 나서는 첫 발걸음에 이렇게 넓직한 뜰을 한 장 담아 두곤 출발. 주위에 다른 여행지를 뒤로하고 바로 남한강과 섬강, 청미천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달려와 트인 전경을 바라 봤더니 녹조가 어마무시하다.예전에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