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6

추억과 오지의 간이역, 봉화 분천역_20240406

불과 한 달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봄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앙상한 가지에 연둣빛 옷을 입혔고, 황량하던 흙 위에 노란 점을 찍었다.그도 모자라 간이역 플랫폼에 생기를 불어넣어 오가는 걸음 분주하다가도 이내 사라졌고, 그러다 정적이 쌓이면 다시 종종걸음이 싣고 온 웃음소리를 채웠다.어느 누구에겐 덜컹이는 기차가 삶의 동선이라면 어느 누군가에겐 추억의 장난감이 되어 감성에 젖게 했다.그래서 이번엔 종점, 철암으로 간다.분천역은 영동선의 철도역.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49(분천리 935-1) 소재.역명은 여우천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하여 부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부내'를 한자화 해서 분천(汾川)이 된 것이다. 현재의 역사는 1957년 완공된 것이다. 2..

세 평 협곡 간이역, 봉화 승부역_20240309

문명은 시간도 거칠고 세차게 현혹시켰다.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길들여진 세상과 달리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찾은 승부역은 시간도 더디게 흘렀는지 고순도의 옛 모습을 유지했다.하늘 아래 세 평 간이역, 승부역에서 요동쳐 철길 따라 소소히 구전되다 길의 유래가 되어 버린 협곡 품 아래 작은 간이역에서 작은 도전과 소박한 출발을 고했다.더불어 변하지 않아 반가운 것들, 붉은 벽돌 역사와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있는 플랫폼, 그리고 산중 에이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대기실을 정독했다.승부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이다.역 인근에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역 이용객은 사실상 전무했으나, 1999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

외면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_20240309

철길이 유일한 이동 통로인 곳, 영화 '기적'의 배경이 되는 양원역 일대 둘레길이 조성되었고, 철길을 중심으로 도보길이 실타래처럼 얽힌 세 평하늘길에 당도했다.지난 대관령 여정에서 함께 둘러볼 심산이었으나, 당시 동해역 부근 허름한 모텔조차 15만원이라 잠시 미뤘고, 일주일 지나 그 땅을 밟았다.세평하늘길은 지자체에서 트레킹 코스로 만들어 둘레길 중 한 곳인 승부역 초대 역무원의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시에서 착안, 세평하늘길이 되었는데 분천역에서부터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까지 약 12km 둘레길로 겨울이면 오지의 협곡에 잉태한 눈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이동 수단인 열차를 타고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2004년에 유일한 민자(?) 간이역인 양원역을 어렵게 찾은 적 있었는데 당시 양원역은 서..

막연한 추억과 그리움, 봉화역_20190516

막연한 기다림과 그리움.텅빈 시골 역의 허허로운 플랫폼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다 본다. 무심한 석양은 안중에도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서서 출발의 설렘과 도착의 안도를 얼마나 느꼈을까?덜컹이는 열차의 승차감이 무척 불편하건만 어색한 신경을 마비시키는 기대감은 설사 열차의 좌석이 모두 매진되어 제대로 된 자리도 없이 한정된 공간을 떠도는 와중에도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지루하던 불편은 금새 메말라 사라져 버린다.감정이란 오묘하게도 한 순간의 불편과 투정을 극도로 자극시켰다 이내 가라 앉고 모든 설렘에 몸을 맡겨 버린다. 시골 역 치곤 꽤 크다.해는 서녘으로 기울어 그림자도 덩달아 길게 늘어난다.가끔 시골 마을에 들렀다 간이역에 들러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플랫폼에 잠시 서서 텅빈 시간을..

시험 치고 돌아오는 길_20181024

난 돌아가는 길의 첫걸음이지만 어떤 이들은 떠나는 길의 첫걸음이다.난 피로를 짊어지고, 또 어떤 이들은 설렘을 봇짐처럼 둘러 매고 떠난다.끝 없는 미지의 세상이 반, 삶의 터전이 반.출발과 끝은 기차 역이다. 시험으로 전날 대구에서 바로 대전으로 건너가 같이 온 학우들과 각자의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시험을 치렀다.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데 그래서 인지 추위를 타며, 심지어 어떤 젊은 수험생은 벤치 파카를 입고 왔다.나는 다행히 긴장을 적게 해서 만족스런 결과가 나왔다.시험이 끝나고 부근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대전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가을 더위가 체감된다.구름 한 점 없이 드높고 넓은 하늘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홀가분한 마음의 유혹으로 잠시 옆길로 빠져 가을이라..

황혼의 간이역_20141102

흥겨움 뒤엔 항상 아쉬움이란 후유증이 남기 마련. 이제 올해의 저무는 가을을 떠나 보내고 나도 집으로 가야겠다.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가을 단풍객들의 귀경길로 강원도 구간이 정체라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영주 방면으로 선택했다.가던 길에 옛추억을 곱씹기 위해 분천역으로 빠졌더니 예전 간이역의 풍경은 많이 퇴색되었다.너무 매끈하게 다듬어 놓아서 그런가? 말 없는 기차 선로는 여전히 말이 없다.역사길로 사라져 가는 철도의 눈물 없는 슬픔이 침묵으로 들려 온다. 환상열차와 협곡열차라는 상품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고 있다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려 순식간에 사라지자 다시 적막 뿐.환호는 잠시, 좀전과 상반된 적막이 선로를 무겁게 누른다. 철도에 옛추억을 간직했던 산골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삶과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