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9

무심한 시간의 파고에서 꽃이 피다_20190608

월류봉에서 석양이 넘어갈 무렵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가족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서울 인근이라 함께 차로 이동할 수 없는 한 사람을 위해 황간역에서 덜컹대는 무궁화호를 이용하기 위해 배웅에 나섰다.황간까지 왔는데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동해식당에서 다슬기전과 탕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열차 시각에 맞춰 황간역에 도착했다.(숨겨진 다슬기 해장국 고수_20190305)전형적인 시골 기차역이라 규모에 비해 너른 광장에 다다르자 생각보다 많은-대략 10명 이상?-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나머지 그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은 마중을 나왔다.기차역에 들어서기 전, 광장에 유물과도 같은 것들이 멋진 조경의 일부가 되어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는데 한적한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구시대의 상징인 시골 열차역..

1년 만에 여수를 밟다_20190115

서울역에서 여수역으로 직행하는 열차는 그리 많지 않아 익산에서 환승하는게 싫다면 열차편에 시간을 맞출 수 밖에 없다.익산역까지는 소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만 거기서 부터 여수까지는 꽤나 많이 걸려 저녁 8시 무렵 도착했다.1년 전 여수에 왔을 때는 바람이 무진장 불었는데 오죽했으면 담배불이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릴 정도 였으나 이번은 1년 전에 비하면 선풍기 수준이다. 여수에 오면 이 사진을 찍는다는게 설레는 마음에 묻혀져 번번히 잊어버리기 일쑤였지만 이번엔 제대로 찍었다. 대합실로 가는 이 설렘을 알랑가 모르것소잉. 여수 도착 전, 구례역 이름은 구례구역이다.시방 왜 그런고 허니 곡성을 지나 순천으로 향하는 철로가 섬진강 서편에 깔려 있다 봉께로 행정구역상 구례를 밟지 않지만 구례 가까이 지나면서 ..

여수로 출발_20190115

퇴근 후 바로 여수행의 첫 출발인 서울역으로 서둘렀고, 다행히 넉넉하게 도착했다.호남선 방면은 용산이 첫 출발역과도 같은데 근래 들어 서울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열차 편수가 개설 되면서 이용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하루 발차 대수가 적어 배차 간격이 길어지면서 이번 열차를 패스하면 꽤나 기다리던가 용산으로 가야만 했다.도착 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멤버십 라운지에 갔으나 만석이라 뒤돌아 서려는 찰나 좋지는 않지만 자리가 하나 생겨 냉큼 차지하고 앉아 있다 느긋하게 플랫폼으로 내려가 열차를 잡아 탔다. 왠지 모를 설레는 여수.낡은 것 같지만 성숙한 것들과 새롭지만 어색한 것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카메라는 챙기지만 급작스런 시선에 아이폰 사진을 더 많이 찍는 곳 또한 여수다.밤바다가 유명하지만 실상 햇살 눈..

이 시절의 마지막 캠퍼스_20180626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지막 순간은 늘 시작과 다른 두려움과 아쉬움을 남긴다.일상의 타성에 젖어 사진도 남기지 않은 채 그냥 강의가 끝나길 기다리는 습성으로 하루늘 넋 놓고 기다리다 괜한 미련이 자극되어 캠퍼스를 벗어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렇게 시간은 정신 머리가 느슨해 진 틈을 타고 쏜살같이 줄달음치곤 어느새 장마전선을 끌고 와서 감당할 수 없이 잔혹한 시련의 씨앗을 퍼트리고 달아나 버렸다.한 걸음 더듬고 소화 시키기도 전에 한달음 성큼 멀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까마득한 꼬리의 자취만 아득히 보인다.캠퍼스의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만 위태롭던 초봄에 학업을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짙은 녹색 옷으로 갈아 입고 태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소한 내 기억의 창고 안에 머무르는 비는 화사하게 망울을 터트린 꽃 만..

동탄역_20180410

알면서 늦잠을 자게 되고 서둘러 대구로 향하기 전, 첫 관문인 동탄역에 들렀다.출근길이라 열차는 완전 매진이었는데 다행히 최악의 위치에 자리가 꼴랑 하나 있어 잽싸게 낚았다. 아침 7시 반이 조금 안 된 시각.동대구역은 1시간 20분 조금 넘게 소요되고, 역에서 캠퍼스까지는 택시로 10 여분 정도 소요.간신히 강의 시간을 맞출 수 있겠다.어여 가자, 바삐 가자!

집으로 가는 먼 길의 첫 걸음_20170924

집으로 가는, 아니 가야만 하는 날.일요일 볕은 어찌 이리 야속하게도 따가운지.렌트카를 반납하고 스타벅스에 들러 남은 시간을 달래는 기분이란 뭔가 호쾌하게 끝내지 않은 서운함이었다.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 울적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는 사이 떠날 시간이 되었다. KTX와 SRT를 이용하려면 광주에 올 때처럼 광주송정역을 이용해야 한다.유별나게 강한 햇살을 피해 일찌감치 역을 들어서자 매끈한 모습과 달리 아담하지만 이리저리 발걸음이 분주한 역사가 나오고, 잠시 앉아 있다 플랫폼에 들어섰다. 오는 길은 설렘의 흥분에 마비되어 거리감각조차 흐렸었는데, 가는 길의 발목은 모래주머니를 꿰찼냥 무겁기만 하다.늘 아쉽고, 그래서 늘 다시 기약하게 되는 시간이 여행이 아니겠나. 고속열차는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광주..

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

작년 11월 말에 정선 하늘길 트래킹(사북의 잃어버린 탄광마을_20141129)을 다녀온 후 몰아 닥친 한파는 마치 내 여행길을 자연의 배려로 착각했고, 올해도 비슷한 시기인 11월 마지막 주말을 이용해 여행 계획을 잡으며 의례히 축복을 자만했건만 이번엔 그런 자만을 비웃듯 여행을 터나기 하루 전에 한파가 복병이 될 줄이야.그렇더라도 내 꿋꿋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는 벱이라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을 그대로 실은채 신고한터미널로 3시간 반 동안 날아갔다.동서울에서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즈로 꿈 꾼걸 보면 한 주 동안의 피로 회복엔 더할나위 없는 명약 처방이었다.이번 숙소는 고한과 사북의 길목에 자리잡은 메이힐즈 리조트.원래 하이캐슬을 선호한데다 원래 여행의 코스가 하..

황혼의 간이역_20141102

흥겨움 뒤엔 항상 아쉬움이란 후유증이 남기 마련. 이제 올해의 저무는 가을을 떠나 보내고 나도 집으로 가야겠다.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가을 단풍객들의 귀경길로 강원도 구간이 정체라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영주 방면으로 선택했다.가던 길에 옛추억을 곱씹기 위해 분천역으로 빠졌더니 예전 간이역의 풍경은 많이 퇴색되었다.너무 매끈하게 다듬어 놓아서 그런가? 말 없는 기차 선로는 여전히 말이 없다.역사길로 사라져 가는 철도의 눈물 없는 슬픔이 침묵으로 들려 온다. 환상열차와 협곡열차라는 상품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고 있다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려 순식간에 사라지자 다시 적막 뿐.환호는 잠시, 좀전과 상반된 적막이 선로를 무겁게 누른다. 철도에 옛추억을 간직했던 산골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삶과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