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주를 방문했던 90년대 중반, 미각이 신세계를 경험한 나머지 밑반찬으로 나왔던 열무 김치가 어느 누군가 베어 먹은 흔적이 있었음에도 그냥 먹어 버릴 만큼 머물던 내내 완벽히 식탐을 충족시켜 준 기억이 있다.
가뜩이나 많이 나오는 찬거리를 비롯하여 딱 집어 비빔밥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식이 가짓수가 풍성한 걸 떠나 입안에서 혓바닥을 농락하는 음식 솜씨에 반해 부근을 오게 되면 늘 전주는 거치는 과정 중 하나 였다.
이번엔 임실을 왔지만 내심 전주와 가깝고 때마침 곡성 형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건만 전주에서 보자고 하신다.
나야 땡큐지!
2박 3일 여정 중 전주를 몇 번 들락날락 거렸는지 헤아리기도 귀찮다.
최소 하루 2번.
일단 이번 여정의 첫 방문은 곡성 형과 만나 매콤 돼아지 갈비찜을 먹었는데 형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 본다.
신경 써서 대접하는데 내 표정을 읽으며 실망하지 않기를 바랬는지 모르겠다.
음식이 나오자 마자 버너를 틀고 바로 육수를 몇 숟갈 줍줍하고, 3개를 뜯고 우선 감탄사를 날렸다.
대접한 성의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양념과 갈비의 앙상블이 절묘 했거든.
보통 끓기 전 육수는 정제되지 않은 양념 맛과 끓고 나서 어느 정도 쫄이며 날아가는 국물을 감안하여 흥건한 물맛이 분리되어 있건만 여긴 불을 켜자 마자 몇 숟갈 맛 보자 벌써 양념과 육수가 어울린 맛이 난다.
굳이 끓일 필요 없이 그냥 먹어도 되겠지만 끓는 비주얼과 좀 더 깊은 맛을 위해 끓였다.
그 과정에서 쌓아 올리다 시피 했던 갈비대를 대부분 뜯어 먹고 육수가 질펀해지자 밥을 비벼 먹었다.
끓었으면 짠맛이 점점 강해져야 되는데 조리 전후 일정한 걸 보면 야채가 가진 수분이 육수와 어우러져 국물은 걸죽해지지만 짜지는 않다.
갈비대는 간이 아주 적당히 베어 매운 육수에 굳이 담그지 않아도 되고, 짠맛이 소금으로 인해서라기 보단 원래 부터 돼지가 자라면서 소금을 머금은 절묘한 간이다.
이번 기간 동안 전주에서 먹은 음식들의 공통점, 화학 조미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척 보면 앱니다~- 첫 맛은 조금 심심하고 밋밋하다.
이미 서울 입맛에 길들여져 음식 재료의 풍성한 잠재력을 입안에 충분히 퍼질 수 있도록 부채질 해 주는 화학 조미료와 혓바닥이 물불 가리지 않고 여과 없이 받아 들이는 단맛에 길들여져 전주 음식의 첫 맛이 심심할 수 있겠다.
허나 몇 번 잡숫다 보면 이내 미각 세포가 적응해 버리는 친화력은 전주만의 특징 아니겠는가.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갖은 식재료에 마법의 주문을 걸고 그 주문은 전주를 벗어날 경우 무용지물이 되는 또 다른 마법을 건다.
그렇지 않고서야 늘 먹던 양을 잊어 버리고 포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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