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눈꽃들만의 세상, 함백산_20151128

사려울 2015. 12. 28. 02:05

기대했던 일들에 반하여 아쉬움도 크다면 떨칠 수 있는 노력은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사북 하늘길이 막혀 버려 검룡소를 가게 되었는데 예상외로 멋진 눈꽃 세상을 보게 되어 내 마음 속의 프랑켄슈타인이 간땡이가 커져 버렸다.

그 표정을 알아 차린 일행의 제안으로 망설임 없이 함백산 자락에 얹혀 살아가고 있는 오투리조트로 날아갔다.



큰 산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튼 태백시내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대기가 조금 뿌옇긴 해도 검룡소에서 내린 눈발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하늘은 아이의 눈망울처럼 맑기만 하고 앞으로도 눈비는 커녕 먹구름조차 개미 똥꼬만큼도 보일 기색이 없었다.

망원으로 찍어서 가깝게 보이지 실제 라섹수술하지 않았다면 태백시내는 보이지 않았겠지.

멀리 오렌지색 건물들이 청정지역 태백의 대기를 뚫고 해맑게 비치며 방긋 웃는듯 하다가도 이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함백산자락에 둥지를 튼 오투리조트 답게 바람살은 차갑고 세차 가파른 낭떠러지에 서 있노라면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이 선두에 양팔을 벌리고 서서 바람과 대양을 맞는 그런 삘이 쬐끔은 날 수 있겠다.




오투리조트로 올라오는 길은 바로 이렇게 발치에서 펼쳐져 있을만큼 경사도가 급한데 올라 와서 내려다 보면 과연 어떻게 여기를 올라왔을까 싶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은 마치 뱀 같아 징글징글~

딱히 여기를 오자고 했던 일행의 의도는 첩첩 산능선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화절령길에 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내 속쓰라림을 풀어 주기 위한 사려 깊은 배려라 사진에 담지 못한 그 드넓은 전경으로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짧게 머무르는 시간 동안 그 많은 바람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대기를 활보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어쩌면 수직으로 뻗은 빌딩숲에서의 두텁게 쌓인 피로도가 일시에 떨칠 수 있었던 멋진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의 무게감이 한층 가벼워진 걸까?

출발할 무렵 갑자기 만항재라는 단어가 애니메이션 중 머리에 백열등 번쩍하듯이 스쳤다.

못 먹어도 고!라는 명언처럼 망설임 없이 만항재로 돌격!



함백산 언저리를 굽이굽이 돌고 돌아 올라가는 동안 우리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축하하듯 반기는 눈꽃의 향연.

꽤 경사도가 급한 길을 오를수록 청아할 것만 같았던 대기는 점점 뿌옇게 찡그리다 결국 세찬 바람이 직선을 긋기 시작하는 작은 눈송이를 날린다.

도로의 한쪽은 한길 낭떠러지고 다른 반대쪽은 함백산의 급한 자락인데 갑갑하리만치 비좁던 함백산자락의 도로가에 한숨을 돌리라고 자그마한 나무숲무리가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틀고 앉았다.

워낙 작은 숲이라지만 계속된 가파른 산자락이 길 가장자리를 쉴 새 없이 막고 있어 이런 공간이라도 넓게 보인다규~



뽀샤시하고 풍성한 눈꽃과 절묘하게 어울린 가지가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화이트의 단조로움에 그 멋을 배가시켜 준다.

동양화에서 여백을 따라 정교한 붓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연상되지 않는가!

어떻게 보면 두뇌 같기도 한데?



나뭇가지에 눈꽃이 단단하게, 그것도 위에 살포시 핀 게 아니라 일련의 측면을 따라 그 미려한 선이 평행으로 같이 하는 이유는 내리는 눈이 얹혀진 눈꽃과 태생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함백산의 굴곡을 따라 부는 세찬 바람이 지치지 않고 그 작은 눈송이들을 가지에 겹겹이 붙이기 때문인데 녹거나 떨어지더라도 굴하지 않고 한 번 큰 바람의 기운이 불기 시작하면 월매나 인고의 작업을 거쳐 완성하는 것일까?

하긴 이 눈꽃도 미완의 작품일 수 있겠으나 이대로도 인위로 만들 수는 없는 미려함을 읽을 수 있다.




마치 두뇌 같은데 혐오스럽기보단 총총히 그려 넣은 화려한 작품 같다.

어릴때 이렇게 눈이 나무에 쌓이면 가지를 흔들거나 발로 차서 그 밑을 지나는 친구 위로 눈세례를 퍼부었다지?

나한테 당한 친구들아...

약 오르징!

오르는 길에 이런 전경을 봤으니 설레일만도 하겠다.

어떤 눈꽃 세상들이 펼쳐져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으로 여기서 지체할 수 없는 노릇.

오르던 그 길을 재촉하여 앞으로 나아갈수록 구름은 짙어지고 바람에 실린 눈은 점점 수평에 가까운 직선을 허공에 알알이 긋는 것과 동시에 뽀송뽀송하던 도로도 어느새 하얀 켄트지를 깔아 놓았다.

가파른 오르막 길이 완만해지자 함백산 반대편 도로는 시종일관 앙상한 몇 그루 나무가 공중에 떠있다가 갑자기 매끈하게 높은 담장이 나오면서 태백선수촌임을 알아 차렸다.

조금 더 진행하는 사이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온통 새하얀 세상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함백산 봉우리로 뻗은 도로의 초입이니까 해발 1300미터는 족히 넘겠지?

정상을 가르키는 입간판 뒷편엔 풍채 당당하신 소나무 어른이 버티고 계시는데 연세가 겁나 많으신지 머리카락도, 수염도 온통 하얗지만 넘무넘무 곱게 세월을 보내셨나 보다.

이 일대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조차 이질적인 자태 없이 전체가 눈꽃이 만발했다.

초 겨울, 그것도 눈 소식이 전혀 없는 날이라 세상 어느 누구도 여기에 이렇게 멋진 눈꽃 세상이 드리울줄 알았겠나 싶어 찾아오는 이 없었다.

그만큼 우리들만의 겨울왕국이 바로 이런 거 아니겠나?





내린 눈이 쌓인게 아니라 세찬 바람이 덕지덕지 붙여 놓은 눈꽃들이라 늘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꽃망울들이 바라보는 형국이다.

그래서 눈꽃잎들은 함박눈의 팔각 결정체로 쌓아올려진게 아니라 가루눈의 작고 날카로운 결정체가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단단하게 결속되었다.

예상치도 못한 눈 세상에, 그것도 세상 어느 누구도 없는 곳이라 꽃잎의 모양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우리를 반기는 그 순백색의 환영에 마치 그렌델 어미에게 홀린 베오울프 마냥 넋 나간 사람이 되어 길 위에 무수한 발자국을 찍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



그 세찬 바람에도 견고히 그 품세를 유지하는 눈꽃들은 이미 세찬 바람에 내성이 다져졌다.

연신 흔드는 가지임에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만 떨어질 뿐, 가지에서 흐르거나 이탈하는 꽃잎은 전혀 없었으니까.




만항재로 가는 이 도로조차 눈의 왕국으로 가는 길로 복속 되어 감히 정면으로 맞서는 문명의 지나침은 용납이 되지 않아 차들은 지나갈 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함백산 봉우리로 가는 길의 입간판 부근 공터에 차를 주차시켜 놓았고 겨울은 이 길을 아낌 없이 우리에게 내어 주었다.

태백시내 기온이 영하6도 였으니까 여긴 세찬 바람이 더해져 체감 온도는 아마도 영하20도 정도 되었겠지?

그래서 인지 카메라 렌즈에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힘겹게 들리고 아이뽕 배터리 게이지는 이성을 잃어 90프로 이상이던 게 갑자기 60프로 그러다가 다시 40프로로 떨어졌다.

얼릉 품 안으로 집어 넣었건만 잠시 후 동영상을 찍는 동안 배터리 충전 경고 화면과 함께 겨울수면 모드에 돌입해 버린다.

나중에 이 도로를 벗어나 한갓진 언덕을 오르자 통화권 마저 우리를 저버렸지만 여전히 든든한 나의 카메라, 티워니만큼은 내가 어떤 요구를 해도 졸거나 소홀함이 없었다.

그럼 도로를 벗어나면서 부터의 눈꽃 세상은 그 순백의 깊이가 더하거늘 자우지장지간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든 백견이 불여일문이든 튼튼한 두 다리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화사한 눈꽃들을 만끽해 보자규!


















빼곡한 숲이 막아 놓은 바람을 피해 단정하고 다소곳하게 서 있는 눈꽃은 마치 망울을 한껏 터트려 놓은 목화 같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때 그 자태를 잠시 유지하곤 눈이 그치기 무섭게 특유의 연약한 봉오리가 흩어지는 고로 이 모습이 워찌나 아름답게 보일까!



이미 우리가 다다르기 전, 이내 지나간 일행들이 있었는지 선명한 일련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퍼붓는 눈의 환대와 터널의 환영에 행복으로 응대하며 사푼히 지나 갔을테다.



한참을 터널로 경유하다 어느 순간 그 터널이 더욱 빼곡해짐과 동시에 하늘로의 통로가 보이자 마치 내리는 눈을 맞이하는 사랑방인 양 더욱 짙고 우거진 눈꽃 정원이 펼쳐졌다.

팔이 아래로 쳐질 듯 두터운 눈꽃이 힘겨울지라도 틈으로 배어 들어오는 바람들은 허락치 않고 다만 하늘과 맞닿은 높은 가지는 상반되게도 바람에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 모습이 고마워, 쳐져 있는 가지가 내게 손 내밀며 고요의 선율을 들려 준다.

이 순간, 자연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범접할 수 없는 냉혹함과 어미의 품처럼 아늑함을 은유하지만 그렇다고 잔인하다거나 가식적이고 억척스럽진 않다.

이 나무숲의 광장에 잠시 있는 동안 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세속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모든 소리와 바람의 손길과 하염 없는 눈발이 배제된 진공의 우주 같은 이 공간은 다음 기회에 찾아 온다면 그 모습을 숨겨 놓고 영원히 기억의 동경을 부채질 하는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다.

정말로 훗날 이 곳을 찾아 온다면 여기를 올 수 있는 문을 열어 줄까?

어쩌면 완전하지 않은 아쉬움이 더 지속적인 환영의 단단한 줄을 엮어 줄지도 모르고 그것만이라도 난 하나의 세상을 품고 있을 수 있다.

더 바라는 건 주체할 수 없는 집착과 깊은 허무만 양산하는 욕구의 발로겠지?



제법 긴 터널을 지나자 어느새 우린 해가 저무는 하루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여행보다 일찍 시작된 여정이었던 만큼 길었던 하루였음을 생각하면 미련을 두기 보단 후련한 성취감에 취해 하산할 수 있었고 다시 태백 시내로 내려오는 내리막길에서 예기치 않게 도로가 빙판 스케이트장이라 차량이 호랑나방 댄스를 췄지만 무사히 저녁 어둠을 맞이했다.



태백 꽃등심이 그렇게 유명하다며? 해서 연탄불 꾸이를 폭풍흡입하는데 그 아릿다운 고깃결을 찍어 두겠노라 다짐했건만 막상 눈앞에 펼쳐지자 사진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아졌다.

허무하게도 남은건 앉자마자 휑하게 빛을 발하는 연탄불...헐ㅠㅠ;

이 날 치맛살은 왜이캐 맛있는지 입에 들어 오는 순간 씹는 행위가 기억에 남아 있질 않아.

역쉬나 태백 한우 따봉.



저녁도 쳐묵했것다, 커피도 한사발 뽀개버렸다, 함백산만큼 불러오는 배를 추스리고자 숙소로 잠시 돌아와 음악의 선율에 빌어 속을 진정시킬 무렵의 시각은 아직 초저녁이었음에도 겨울의 짧은 해가 실감될만큼 한밤의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가는 시간이 붙잡는다고 멈추나?해서 야심한 밤임에도 고한을 지나 만항재 방면으로 움직였다.

여기에 비하면 사북, 고한은 대낮처럼 불야성인데 만항재로 한참 간 이 오지에도 비록 졸고 있긴 하지만 어엿한 마을이 있었다.

만항재로 갈까 하다가 경사가 급한 고갯길이 고도가 높아질수록 빙판길이라 포기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힐긋 지나치며 봤던 고드름이 자로 잰 듯 빼곡히 처마끝에 매달려 있다.

동요 고드름 중 각시방 영창에 달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촘촘히 달려 있는 이 집은 다음지도 로드뷰에 같은 모습으로 나와 있구먼!

고사장! 반갑구만, 반가워요~




깊어가는 오지마을에서의 청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는 길에 유일하게 빛을 발하던 공원으로 향했다.

한창 한켠은 조성 중인지 공사 현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윗편에 주차장과 팔각정이 보여 그 아래에서 가져간 텀블러의 커피와 빵-우리 생각해 봐도 무쟈게 식성이 왕성하다. 거의 사춘기 수준인데-을 먹으며 공원의 가로등 불빛과 크게 틀어 놓은 음악 소리를 쬐었다.

아무래도 일행들이 있어 이렇게 개무서운 환경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사위가 고요한 산골의 자그마한 공원에서 피부를 도려낼 듯한 찬바람을 제외한다면 이 평온함이 향그로워 한시간 남짓 지나 산골 한파에 자리를 양보하고 다음 장소인 사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처럼 숙소로 들어가기 전, 무사히 여행을 다녀온 자축으로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고자 안주거리를 만나러 사북에 왔고 안주로 낙점된 선수이신 치킨양이 꽃단장하는 사이 일 년 전을 회상하는 의미로 동네를 산책했다.

(작년 요맘때 잠깐 동안 사북을 산책하던 날:사북 연탄_20141129)

여전히 일상의 무게를 잠시 잊기 위해 구름과자 한 모금을 음미하시는 광부의 묘한 미소가 변하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났는데 주름 하나 늘지 않을 걸 보면 그간 좋은 일 허벌나게 많았지라잉?

저도 여그꺼정 온 길에 행님 쪼까 살펴 보고 가드라요.

다음에 또 올텡께 그간 잘 계시요~




지장천변에 연탄재 수거함도 변함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그간 산골의 추운 겨울을 맞아 고군분투하고 있었구먼.

연탄이라는 단어를 보면 언제나 자그마한 불씨가 남아 온기가 눈으로, 손끝으로 전달 되는 것만 같다.

어릴적 삶에 밀접한 도구이자 생필품이었던 추억 덕분에 늘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은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꺼지질 않고 여전한데 한번씩 이 녀석이 앙탈을 부리면서 발산하던 매캐한 가스조차 기억에 선명하다.



지장천 사북교 다리 위에서 남아 있는 옛가옥의 뒷모습도 여전하다.

작은 쪽창에 켜진 불빛은 연탄으로 훈훈해진 방에서의 휴식과 행복이 가득하다는 반증이겠지?

세월의 파고에도 굳건한 이 흔적이 반가워 사북교 위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이 겨울의 밤바람이 전혀 차갑지가 않다.

신난 놀이에 흠뻑 젖은 아이처럼 우리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놀이에 취해, 그리고 잠시 후 진짜 취하게 만드는 술 한잔에 취해 편하게 들르는 정선에서의 시간들이 포근한 무명솜 마냥 그저 이 시간들이 보드랍고 고운 훈풍이 되어 뺨을 간지른다.

반응형

'일상에 대한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_20151206  (0) 2016.01.03
일상_20151205  (0) 2016.01.03
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  (0) 2015.12.06
일상_20151127  (0) 2015.12.05
올 겨울 첫눈_20151126  (0) 2015.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