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넷째 날이자 설날을 하루 앞둔 날, 까치의 설날엔 눈이 하염없이 내려 도저히 그칠 기미는 커녕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오산으로 이사 온 뒤 가장 많은 눈이 가장 오랫동안 내렸는데 허허벌판 같은 동네라 딱히 갈만한 곳이 없어 정처 없이 걷는다는 게 아파트 한 바퀴를 돌아 뒷길로 해서 동네를 한 바퀴 돈 셈이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깜짝 놀랄 만큼 많은 눈이 내려 서녘 창 너머 뽀얀 세상을 바라봤다.
그래봐야 공단과 그 너머 나지막한 산 뿐이었지만 멀찍이 지켜보면 하얀 세상은 나름 장관이었다.
자세히 보면 연휴 둘째 날 정남 다녀오는 길에 거쳐왔던 고갯길이 보였다.
오산과 인접한 화성과 평택이 커서 그런지 오산은 비교적 작아 북으로 가도, 서쪽으로 넘어가도 온통 화성이었고, 동탄 살면서도 화성을 그리 많이 다닌 건 아니었다.
동탄에 처음 이사 와서 종종 다니던 곳이 서해 바다가 있는 전곡항,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화성과 그 일대를 다녔지만 당시 동서 간 도로망이 그리 좋지 않아 아무래도 서쪽은 제한적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녀석이 선호하는 건식 사료 중 하나가 프랜차이즈 스토어 전용 상품이라 그걸 구입하기 위해 송산그린시티를 다니며 어부지리로 그 일대를 다니긴 했지만 화성은 동서로 길게 뻗은 행정구역에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도로망은 진행형이라 연례행사처럼 드물게 다니긴 했다.
긴 연휴로 인한 심적 여유의 발로인지 출퇴근길 눈발은 눈물이, 연휴 눈발은 설렘이 넘쳐 괜스레 미끄러운 길이 외출에 있어 발목을 잡지 않았고, 비교적 뜸해진 틈을 타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쌓인 눈은 발목을 집어삼킬 정도로 많이 쌓여 있었고, 제설이 거의 되지 않아 미끄러워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디뎠다.
회양목과 쌓인 눈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꽤 많은 눈이 새벽에 내렸다.
그럼에도 눈은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내려 발목 넘어 쌓인 눈에 양말이 금세 젖었고, 집에서 내려다볼 때와 다르게 막상 밖을 나오자 바람 또한 거세 현타가 오는 바람에 다시 돌아갈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왕 젖은 족발이라 그대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바람이 쌓인 눈 위를 매끄럽게 다듬어 회양목 가지가 쭈뼛쭈뼛 솟아 나온 모습이 좀 징그러웠다.
아파트 단지 최남단 끝엔 피구? 풋살? 운동장이 있었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앞을 지키는 눈사람의 미소에 닫힌 문의 아쉬움을 곱씹을 겨를 없었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돈 뒤 그대로 한길을 따라 두 블럭이 떨어진 근린공원에 다다랐다.
온통 두터운 눈에 뒤덮여 너른 공원은 을씨년스러웠고, 아이들 놀이터와 눈을 피할 수 있는 덮개 아래에도 두터운 눈이 쌓여 길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텅 빈 공원을 걷는 기분은 동탄에 처음 이사와 살 때부터 몰취향이 되어 축축해진 발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벤치 위에 덮인 눈은 마치 보드라운 카스텔라 같았다.
공원을 지나 도시 옆에 일직선으로 뻗은 조성 중인 길과 그 길가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영역 구분이 없는 하나의 벌판이 되었다.
얼마나 눈이 펑펑 내렸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 미끄러질까 조바심을 내며 걸었는데 해가 지고 밤이 깊어갈 무렵 다시 눈이 쏟아지는 정취에 이끌려 밖을 배회했다.
어느새 길 위에 발자국은 사라져 태초부터 그랬던 착각이 들만큼 하얀 길로 옷을 갈아입고, 가로등불빛을 영롱하게 깜빡였다.
그렇게 여유를 곱씹으며 정처 없이 걷던 연휴 넷째 날은 보드랍게 쌓인 눈처럼 감미롭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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