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정선에서의 특별한 경험들, 파크로쉬-가리왕산-백석봉_20220317

사려울 2023. 2. 21. 19:05

경이로운 동강의 이야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은 기분을 억누르는 복병이 아니라 성취를 북돋워 주는 흥겨운 귀갓길의 동행자며 어깨동무를 나누는 친구였다.
어스름 피어나는 정선의 대기는 일찌감치 내린 암흑조차 위압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는 시간의 정겨운 순응이며, 그 암흑이 걸쳐 입은 옷은 저녁밥을 짓는 굴뚝의 향그로운 낙엽 타는 내음으로 단장했다.
숙소가 가까울 무렵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샘터에 들러 청량감이 터질 듯한 알싸한 생수를 들이키며 하루의 온전한 여정에 뒤늦게 화답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냥이들을 만났던 자리를 두리번거리자 마치 손꼽아 기다린 양 작은 담장에 웅크리고 있다 보슬비를 피한 자리에 마련해 준 식사를 정신없이 해치웠다.
녀석들이 식사를 하는 사이 방해될까 싶어 전날 밤처럼 화롯불이 훨훨 흔들어대는 춤사위를 감상한다.

칠족령에서 돌아올 무렵 문희마을에 도착할 즈음해서 한둘 떨어지기 시작한 가느다란 빗방울이 출발할 무렵엔 조금 더 굵어져 유리창에 소리 없이 부딪혔다.

동강의 멋진 정취는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도 변함없었다.

무심코 길로 다가온 바위는 길의 일부이며 길은 그 바위를 감싸고 돌아갔다.

동강 길이 멋진 이유, 바로 바위를 인간의 편의대로 억척스럽게 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강과 작별하고 어름치마을과 잠깐 재회했다.

어름치마을이란 푯말이 정겨웠다.

동강길의 끝인 평창 미탄과 가까워질 무렵 어느새 땅거미도 서서히 저물어갔다.

42번 국도에 올라 텅 빈 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했다.

내리던 빗방울은 더 이상 굵어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치지도 않고 살포시 내렸다.

정선읍에 진입, 완연한 밤이 되었다.

십 수년 전엔 구부정길을 넘었는데 이제는 그 길 위로 매끈한 문명이 버티고 있다.

숙소에 거의 도착할 즈음 길가 숙암샘터에 내려 스원한 냉수 한사발 땡겼다.

그러자 급격히 안도와 성취가 등을 토닥였다.

가리왕산 샘물은 탄산이나 철분이 가득한 샘물이라기 보단 그냥 생수라 향은 전혀 없는 대신 그 시원함과 식도를 달래는 부드러움은 판매되는 생수에선 절대 느낄 수 없었다.

2L 한 병에 500ml 한 병 외상 줍쇼~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전날 냥이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맴돌며 녀석들을 부르자 턱시도 어미와 새끼가 웅크리고 있다 슬며시 다가왔다.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선물로 식사를 주고, 따스함을 선물 받았다.

초봄이라 아직은 산공기가 찬데 그래서 화롯불의 온기가 후덕한 이불 같았다.

이 온기에 이내 적응하자 찬 공기는 청량감을, 온기는 포용을 상기시켰다.

파크로쉬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닌 대신 이 하나가 그중의 일부이기도 했다.

전날 내리던 보슬비가 밤사이 작품을 만들었다.
산에는 빙수 같은 눈을, 지상에는 촉촉한 길을 만들어 떠나는 여행자의 아쉬운 출발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기약을 하며 구름과 첩첩 산새 사이로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이 마치 하얀 면사포로 단장한 신부 같았고, 성숙이 무르익은 산신령 같기도 했다.
위세가 남다른 가리왕산은 끝내 구름과 뒤섞여 민낯으로 작별을 거부하는데 정선의 수호신이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과 형상이 아닐까?
가는 길에 병방산과 또 다른 동강길로 향할 결심에 마지막 남은 설렘을 꿈꿨다. 

호텔 체크아웃 후 출구에서 백석봉의 저 멋진 모습은 내 삶에 있어 특별한 경험 중 하나 아닐까 싶어 저류지 인근에서 한 컷 담았다.

가리왕산 맞은편 백석봉 등성이에 겨울 면사포를 걸쳤다.

떠나는 길에도 생수 한 잔에 선명한 대기의 선물을 챙겨 주는 정선인 걸 보면 내가 오랫동안 갈망하고 이행했던 결심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 다음에 또 보자, 가리왕산-백석봉-파크로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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