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일상_20170121

사려울 2017. 5. 23. 03:23

제주로 떠난 가족들과 달리 내가 사는 고장을 지키던 주말, 점심을 해치우자 하염 없이 퍼붓던 함박눈도 잠시 소강 상태를 보여 라마다호텔 커피빈으로 커피 한 사발 때리러 왔다.

일요일과는 다른 주말의 여유를 벗삼아 창가에 자리 잡고 커피에 심취해 있는 사이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걷히는 구름을 비춘다.



분명 하늘엔 두텁던 구름이 걷히면서 석양이 비추려 하는데 호랭이 장가 가려는지 얕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눈꽃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부드럽게 엉켜 있는 눈뭉치가 반증해 준다.

역시 과일이든 야채든 신선할 때가 최고 아니겠어?



커피빈 테라스에 측백나무? 너머 노작박물관이 보인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눈꽃의 고결한 기품이 아름답다.




테라스에서 사진 찍다가 추워서 냉큼 들어 왔는데 그 잠깐 사이 많이도 어둑해 졌구만.



마시던 커피를 들고 도로 건너편 노작박물관으로 넘어와 운동 삼아 눈꽃 구경을 하러 왔다.

우리 게으른 조카는 투덜대다가 이내 더 신나서 눈꽃 찍느라 여념 없다.



나무에도 이렇게 뽀얀 눈이 내려 앉아 자체 발광 중이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조카.



박물관 뒷편 반석산으로 오르는 무장애길은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 발자국을 떡!하니 찍어 줘야지.

근데 이 길에 눈이 쌓여 생각보다 미끄럽다.

잘못하다간 옥수수 털릴 거 같아 조심조심 걸어가야만 한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고드름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위에 오늘 또 다른 많은 눈이 내렸다.



마치 눈꽃들이 한데 모여 조잘거리는 것만 같다.



반석산 방향에 숲 위로 빠르게 구름들이 흘러간다.

아이폰 사진이라 감도가 600 이상만 올라가도 이렇게 노이즈가 자글거린다.





또 다른 눈꽃 무리들.




별로 멋이 없던 이 가지에 눈이 쌓이자 화사해져 버렸다.




냉큼 올라가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던 조카의 작품.

엑소에 대한 사랑의 징표를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그렸다.



가로등의 전등갓 위에 내린 눈이 전등 열기에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흘러 내리다 고드름을 만들었다.

텅빈 공원에 쉼 없이 자리를 지키던 등불조차 겨울엔 차갑게 빛을 발한다.



낮 동안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은 잠깐 동안 퍼붓고 이내 그쳐서 인지 그리 많이 쌓이진 않았다.

허나 그 퍼붓던 기세에 눌려 사람들이 떠나 버리고 다시 찾지 않아서 내린 눈 위에 발자국은 거의 없고 뽀얀 백지를 깔아 놓은 것만 같았다.

괜한 장난끼가 발동하야 눈 위에 덥석 누워 영화 Let me in 포스트처럼 허우적거렸는데 아무래도 얕게 쌓인 눈이라 느낌은 별로 재현되지 않고 어거지로 짜맞추자면 사람 얼굴 정도 닮았다.



늦은 밤에 집으로 들어와 먼지 쌓인 CD플레이어를 끄집어 내어 작동 시켜 봤는데! 자알 돌아가네!

예전 듣던 찰랑이는 소리와 함께 돼지털로 넘어 오는 과도기적 기계의 불편함과 달리 친숙한 손맛과 더불어 단순한 인터페이스가 혼자 있는 이 날 따라 왜 그리웠을까?

밤 늦도록 잔잔한 뉴에이지에 취해 깊은 겨울의 싸늘한 고독을 호올로 되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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