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길해변을 뒤로하고 해파랑길을 따라 걸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이어 구축한
총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걷기 여행길입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이며,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을 뜻합니다
[출처] 해파랑길_두루누비
원래는 나아해변부터 해파랑길 11코스의 시작이었지만 무조건적으로 해파랑길을 추종하는 게 아니어서 언덕길로 이어진다면 그 길을 살짝 벗어나더라도 도리어 해변을 걷거나 공공시설이 있다면 굳이 지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나아해변 일대를 건너뛰고 봉길해변에서 시작했다.
봉길해변에서 출발하면 대종교를 타고 대본3리로 진입해야 되는데 이 또한 추억팔이로 인해 잠시 곁길로 빠져 감은사지를 먼저 들렀다.
봉길해변과 인접한 내륙 방면의 길목에 감은사지가 있어 예전에도 지나는 길에 종종 들렀지만 당시엔 관리가 거의 되지 않는 허허벌판과 같아서 필연적인 경로는 아니었고, 다만 아주 오래된 신라 유적지라 호기심에서 잠시 시간을 냈었는데 그마저 추억이 될 줄 누가 예견했을까?
지금의 감은사지는 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어 남향의 양지바른 유적지 모습을 갖췄고, 주차장엔 몇 대의 차량이 오고 가며 드문드문 인적이 찾았다.
감은사지는 사적 제31호로 〈삼국유사〉에 문무왕(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역사를 시작했으나 중도에 죽자 그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해 682년(신문왕 2) 완성했으며, 금당의 기단 아래에 동향한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또 유서에 따라 골(骨)을 매장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의 이름은 본래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진국사였으나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충정에 감사해 감은사로 고쳐 불렀다.
1960년과 1979~8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이탑식 가람배치로 남북보다 동서 회랑의 길이가 길며, 양 탑의 중앙부 뒷면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금당터가 확인되었다. 또한 금당의 바닥구조가 H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석재유구를 동서방향으로 깔아 마치 우물마루 모양으로 된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매우 흥미롭다.
원래 앞면 8칸, 옆면 4칸이었던 북쪽 강당은 후대에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고쳐 지은 것도 밝혀졌다.
[출처] 감은사지_다음백과
어찌나 햇살이 좋은지 감은사지까지 오는 동안 비교적 빨랐던 걸음걸이가 느슨해졌고, 넘치는 햇살을 실컷 주워 담았다.
예전 이 황량한 벌판에 홀로 자리를 지켰던 석탑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중이고, 더불어 눈에 들어온 건 두 개의 석탑 뒷켠 고목이었다.
우선 석탑을 먼저 훑어보며 옛 추억을 곱씹어보자.
남쪽으로 트인 지세에 북편은 작은 언덕이 막고 있는 양지바른 자리라 맑은 날이면 하루 종일 햇살이 흘러넘칠 만큼 일광을 방해하는 건 없었다.
바닥은 특이하게도 석재유구가 깔려 있었다.
두 그루 고목이 서로 화합하듯 대칭적으로 두 갈래 뻗어 하늘 향해 가슴을 활짝 편 것 같았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두 개의 조화로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감은사지 남쪽엔 이렇게 트여 있는 벌판인데 토함산 일대에서 발원한 대종천이 그 벌판을 가르며 산세가 험한 동해 일대에 비교적 너른 평지를 만들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 몇몇 사람들이 오고 가며 짧게나마 휘리릭 둘러본 뒤 다시 어디론가 떠났다.
이제 해파랑길을 걷기 시작한 터라 앞으로 갈 길이 멀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뜨며 아쉬운 듯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은 편수가 부쩍 줄어든 시골버스의 고독한 정류장.
대본3리에 접어들었다.
날이 맑은 만큼 하늘도, 동해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그 푸름이 깊었다.
이견대라는 전망대가 있지만 해안길로 걷느라 슬쩍 바라만 봤다.
바다만 보고 걷느라 마을 내부로 꺾이는 길을 간파하고 계속 걷다 막다른 길에 갈매기횟집까지 걸었다.
계신 분들이 여긴 아니란 말에 정신을 가다듬고 왔던 길을 따라 나오려는데 때마침 턱시도 두 마리가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라 가방에서 츄르 2개를 꺼내 들이밀었더니 냉큼 다가왔다.
수컷 어미는 망설임 없이 츄르를 잘 먹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은 어린 턱시도 아이는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계속 먹지를 못했다.
아이한테 주려고 하면 성묘가 계속 먹어 새끼한테 들이밀면 또 달라붙었다.
그래도 어미라고 아이한테 위협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두 녀석한테 골고루 먹이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안타까웠다.
"새끼는 그런 거 못 먹어요"라는 마을 어른들 말씀에도 꿋꿋이 들이밀었지만 결국 아이는 몇 입 먹지 못했고, 안타깝지만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제대로 해파랑길에 접어들었고, 촘촘한 어촌 마을을 헤집어 또 다른 마을로 이어주는 길이 이끄는 대로 계속 걸었다.
말끔한 웨이트리 펜션과 오래된 가옥의 담장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웨이트리를 지나면 길은 바다로 꺾이며 오래되었지만 예의 그 정겨운 모습을 이어갔다.
끼룩끼룩 뒷편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펜션을 지나 빨간 지붕의 가옥으로 걸었고, 점점 바다는 가까워졌다.
대나무밭과 빨간 지붕 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 사잇길을 지나면 이내 뻥 뚫린 바다가 나오고 길의 형태는 소소해졌다.
축대 아래가 길인데 여기서 조금 헷갈리긴 했다.
길은 다시 마을로 합류.
마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작은 포구라 해야 되나?
길은 31번 동해안로와 합류하게 되고, 데크길로 바뀌는데 이름 모를 작은 몽돌해변으로 교차했는데, 잠시 감상을 한 뒤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잠시지만 바닷소리가 가득한 구간이기도 했다.
이 지점까지 도로 옆 인도를 걷게 되었는데 여기를 지나 해파랑길은 해변으로 우회하게 되었다.
이따금 마주치며 걷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처럼 도보 여행 중인지 몰라도 반갑긴 했다.
엘라포니 시 풀빌라호텔을 지나 뿌듯한 내리막길이 끝나는 이 지점 도로 건너편이 대본2리였다.
봉길해변 이후 첫 해변, 개미해변이란다.
마주치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파도가 비교적 세찬 해변이라 잠시 파도 소리를 음악 삼아 감상했다.
개미해변 해파랑길은 잔디와 길의 경계가 불분명한데 도리어 정감이 들었다.
길을 위해 인공적으로 배치했던 자연물들이 딱딱한 정의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명확한 경계를 뒤덮되 길의 의미는 퇴색시키지 않기 위한 배려였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삶의 터전을 가진 마을 사람들만 간헐적으로 마주치거나 겨울의 역습과도 같은 온화한 햇살을 받으며 순정 만화 같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뿐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는 사이 어느덧 대본1리 가곡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회관을 지나 바로 옆에 이런 멋진 소나무를 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약 400년 수령의 당목인데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려 그 크기에 비해 연세가 꽤 많으시지만 자태만큼은 가지 하나하나마다, 뒤틀림 부위마다 마을 이야기와 사연을 품고 보듬어줄 만했다.
소나무 옆엔 실제 제당까지 들어서 있어 마을 사람들의 전설로 그치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가곡항을 떠나 바다로 나간 어선의 안위를 위해 무거운 염원을 떠안은 수호령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해안길 따라 어느새 마을과 작별해야 되는 곳까지 걸었다.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가옥들이 길 따라 늘어선 곳은 바람도 잠시 쉬어가는 중이었다.
마을을 지나면 바로 몽돌이 두텁게 깔린 해변을 지나게 되는데 해룡일출 대관음사란 사찰 앞에서 유독 파도가 힘찬데 반해 그 기세에 아랑곳 않고 갯바위에 서서 휴식을 즐기는 갈매기 한 마리도 대조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파도가 물거품을 일으키며 집어삼킬 듯 다가왔다 이내 물러나길 거듭 반복하는데 그 파도의 간파한 듯 태연히 자리 잡은 모습에서 역시나 익살맞고 악동다운 모습도 읽을 수 있었다.
바람이 약한 날이라 파도가 잔잔한데 드문드문 한 줄기 바람길이 지나는지 세찬 바람이 불거나 잔잔한 파도들과 달리 유난히 파도가 센 곳이 종종 있어 역시 변화무쌍한 바다 다웠다.
사찰을 지나 몽돌이 워낙 두텁게 깔린 해변에서는 파도가 세차가 몰아쳤다 뒤로 빠지면서 돌끼리 부딪히고 파도에 잠시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또한 바람길인지 바람이 세차게 불고 덩달아 파도도 거칠었지만 해변의 풍경은 무심히도 평온했다.
어디선가 물이 솟구쳤다 이내 사라지는 곳이었는데 수정처럼 투명한 물이 거친 파도와 달리 온순하게 송알송알 흘러 몽돌 사이를 비집고 사라졌다.
경주감포 관광단지 인근 해변엔 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몽돌과 달리 모래도 잔뜩 쌓여 있어 걷기 쉽지 않았고, 사람들의 발길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의 형태가 보여 거기로 걷자 길은 어느새 동해안로로 안내했다.
31번 동해안로에 접어들자 여기저기 공사현장이 보이고 높은 펜스가 쳐져 있던 중 베스트웨스턴 플러스란 호텔 건물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매끈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바닷길은 모르겠지만 해파랑길은 그나마 도로와 인도를 구분 짓는 펜스가 쳐져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걷는 걸음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바다 쪽은 국가 시설이 있어서 해변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여기를 지나면 고래섬마을에 들어서는데 나정항도 이 마을에 해당되는 곳 같았다.
이 구간 도보길은 데크길로 여러 구간 중 걷기에 꽤 흡족했다.
바로 옆이 바다라 현장감이 있으면서도 안전장치로 인해 주위가 산만할 겨를 없었고, 소나무가 늘어서 있지만 바다의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나무의 응원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었다.
이동 중에 수시로 다음맵을 보며 해파랑길을 참조해서 걷는데 컨테이너와 식당 사이로 해파랑길이 표기되어 있었지만 현실성이 없었다.
가끔 이렇게 불분명한 구간이 있는데 초행길인 사람에겐 조금 당혹스러울 수 있겠다.
저렇게 길이 없는 사유지를 관통하기 애매해서 우선 도로를 따라 계속 걷다 나정항 초입에서 바다로 합류하는 길로 접어들어 바다와 조우했고, 잠시 떨어졌던 바다를 다시 만났다.
나정항에 닿기 전, 바다 방면 내리막길로 조금 진행하다 보니 바다가 보이는 해파랑길에 합류할 수 있었고, 그 길 따라 걷다 이내 나정항에 도착했는데 근래 들어 관광화로 조금은 유명세를 타는 곳 답게 오래된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들은 새 옷 갈아입기에 한창이었다.
항구 정면에는 공동작업장-아직은 지도에 나정2리 공동작업장이란 표기가 그대로 사용 중이다- 새 단장하여 이미 카페로 운영 중이었는데 오는 동안 지나친 감상에 젖어 버려 시간이 빠듯한 관계로 바다 전망에 커피 유혹을 참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카페를 지나쳐 멋지게 조성된 바다 도보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방파제에서 바다낚시 삼매경을 끝내고 돌아오던 강태공들을 보곤 방파제로 뛰어올라 해변으로 들이 닦치는 파도를 보자 좀 더 바다의 위력과 함께 태연한 해변이 한눈에 들어와 잠시 가던 길을 잊은 채 감상에 젖었다.
아무리 미풍이 분다고 해도 바다는 어쩔 수 없는지 내륙에서 흔히 접하는 훈풍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바람은 비교적 세차게 불었고, 그 바람이 흔들어 깨우는 바다의 파도는 실제 해변으로 돌진하다 테트라포드와 부딪히며 굉음을 연신 울려댔다.
허구헌 날 저런 파도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끄떡없는 저 구조물이 새삼 대단했다.
바다 도보길은 구부정한 해안도로와 맞물려 그 폭이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다 도로가 마을로 굽이쳐 들어가는 시점에서 최근에 조성된 흔적의 식당들이 있었고,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들어가 따끈한 국물에 회 한 접시 유혹이 불끈 들었지만 기울어진 오후 해를 보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러다 작은 여울을 넘는 다리를 지나 이제 막 조성 중인 공원 벤치와 쉼터에서 첫 휴식을 취하며 경주에서 미리 챙겨 온 빵과 생수를 들이켰다.
그러다 해변을 따라 깔아놓은 테트라포드를 간간히 뛰어넘는 파도의 경쾌하고 힘찬 소리와 장면에 넋 나간 듯 지켜보며 카메라로 녹화를 했는데, 아뿔싸! 마이크 단자를 제대로 연결하지 않아 파도 소리는 녹음되지 않고 무음 상태로 파도만 하얀 물거품을 터트렸다.
이런 멍충이 같으니라고!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걸.
서쪽으로 기운 오후 햇빛이 너무 많이 기울어 잽싸게 장비를 수습하고 다시 발걸음을 채찍질했다.
거의 쓰지 않아서 손에 익지 않은 탓인걸.
나정고운모래해변은 이날 만났던 해변 중 규모가 가장 길고 큰 데다 주변 마을 또한 동해 어촌마을치곤 꽤 너른 편이라 모래사장과 오토캠핑장 사잇길을 걸으며 감탄했는데 그래도 어느새 해변을 지나 작은 하천의 하구에 다다랐다.
하천은 바다로 바로 합류하지 않고 모래사장에 가로막혔는데 하천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지만 여울 수준보다는 커 도보 다리는 길이가 그리 짧은 건 아니었다.
하천 하구는 이렇게 모래사장에 막혔는데 아마도 모래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가는지 물은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호수처럼 완전히 막혀 고인 건 아니었다.
다리는 이렇듯 짧지도 그렇다고 여느 하천의 하구를 넘는 다리처럼 긴 것도 아니었다.
해가 많이 기울어 그림자가 꽤나 길어졌구먼.
다리를 건너면 전촌솔밭해변이라는데 앞서 지나온 나정고운모래해변과 붙어 있긴 해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름 때문인가?
나정해변은 정갈하게 조성되어 있었다면 전촌해변의 경우 조금 오래된 유원지 느낌이 많았고, 해변 공원도 오래된 가옥과 함께 낡은 구조물과 아직 정비하지 않았다.
마을과 전촌해변 사이 도보길을 지나면 앞서 만났던 하천에 비해 좀 더 큰 하천을 만나게 되는데 한창 공사 중인지 해파랑길 지도에선 전촌교를 경유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장진길이라 표기된 공사 구간은 비록 물 텀벙에 흙탕이긴 해도 사람이 지날 수 있도록 간이 구조물이 있어 조금 주의한다면 쉽게 건널 수 있었고, 그 하천을 넘자 전촌항과 비교적 너른 주차장, 그리고 광장이 있었다.
장진길을 그대로 따라 마을 끝 언덕으로 갈라지는 길에 서면 전촌용굴이라는 표지가 있어 크게 길이 헷갈리지 않아 주저 없이 그 길로 빠졌고, 지금까지의 하변길과 달리 전촌용굴로 가는 길은 바다와 맞닿은 언덕배기 오르막 데크길로 바뀌며 모처럼 계단을 밟아야 했다.
하루 해가 넘어가기 전에 서둘러 용굴을 봐야 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좀 더 걷는 속도를 올려 거의 뛰다시피 했는데 계단을 오르자 언덕 방향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져 금세 숨이 가빠졌다.
일대가 원래 군사 시설이 있었는지 길 양 옆은 굵은 줄이 가이드 역할을 했는데 도중 길을 벗어나지 말라는 주의 문구도 있었고, 좀 더 진행하다 보면 군사 시설의 흔적도 간간히 엿보였다.
데크길에 접어들어 조금만 올라가면 길은 이내 바다 전망이 펼쳐진 곳으로 꺾이고, 낯선 곳임에도 바닷가 아래쪽에 사룡굴이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다 동굴이라 연신 파도가 들락날락거리며 이따금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고 금세 썰물처럼 밀려나는 파도 따라 그 물거품도 뒤쫓았다.
데크길이 바다 전망의 해변 가까이 굽이치다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이렇게 작은 해변이 파도에 떠밀려온 온갖 쓰레기 더미의 골짜기를 지났다.
길은 거의 절벽과 같은 지대를 지나며 크게 내리막길을 지나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고, 원래 군사 시설이 있던 자리라 봄을 지나 여름만 되면 무성한 녹음에 울창한 숲으로 덮일만했다.
해는 부쩍 기울어 뜨거운 석양빛이 굴절되었다.
사룡굴이 다시 보였는데 굴 위로 군사 시설로 인해 출입 금지란 간판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사룡굴 위로 진입하는 입구에 빨간 입간판이 있었다.
사룡굴은 저 지점에서 내리막길 계단으로 진입하면 바로 눈에 띄었다.
동서남북 방위를 지키는 네 마리 용이 산다는 전설이 파도처럼 살아 숨 쉬는 사룡굴.
허리를 굽혀 사룡굴 내부로 들어가면 파도가 수시로 들락거렸다.
저 수평선 너머에서 일출이 뜨면 그 장면이 여의주 품은 용과 같겠다.
사룡굴에서 빠져나와 다시 왔던 내리막 계단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사룡굴로 오는 원래의 데크길에 합류, 그러면 올 때 진행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단용굴로 가는 또 다른 내리막 계단이 있었다.
사룡굴에서 나와 첫 바다 절벽이 단용굴 위치였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갈매기는 머나먼 수평선에 기대어 먼 길 달려온 파도의 세상 노래에 귀 기울이는 중이었다.
큰 갯바위는 마치 거대한 바위산을 축소시켜 놓은 것만 같았고, 그 봉우리엔 뜨거운 석양빛으로 불에 활활 타올랐다.
사룡굴에서 산책로에 진입해 단용굴로 가던 중 뒤돌아 보면 사룡굴이 보이는데 그 모습이 바다에 턱을 괸 용머리 같았다.
길은 여전히 해안 절벽 위를 지나며 크게 굽이치거나 완만한 오르막 내리막을 오고 갔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무성한 대숲을 가르는 길이 나오고 해파랑길을 알리는 붉은 화살표 표식이 가리키는 방향이 단용굴로 가는 길이자 해파랑길 따라 감포로 향하는 길이기도 했다.
데크길에서 내려오면 연신 파도가 두드리는 야생의 해변이 나왔는데 해변을 따라왔던 방향으로 걸어가면 바위 둔턱 너머 단용굴이 있었다.
조심조심 바위 둔턱을 넘어 단용굴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굴은 높이가 낮아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올 수 있었고, 내부엔 자갈이 깔려 있어 앉을 수 있었다.
굴은 그리 깊지 않아 거의 입구에서 몇 발짝 들어오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데 그 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동굴 입구 천정에 깊은 홈과 비슷한 모양의 갯바위가 있었고, 그 갯바위 언저리로 일출이 걸쳐진 사진이 유명한 걸 보면 사진에 따라 인생샷을 건질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근래 단용굴 일출 사진이 아름답다는 입소문으로 나정항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단다.
사룡굴과 비슷한 전설이 깃든 단용굴은 감포 마을을 지키는 한 마리 용이 산단다.
사진으로 보면 한 마리 용맹스런 냥이 족발 같은데?
사룡굴과 단용굴, 이 두 개의 바위 동굴을 일컬어 전촌용굴이라는데 이번 해파랑길 열한 번째 코스 마지막 대미와도 같은 곳으로 비록 일출을 낚지 못했지만 해파랑길 전경을 담담히 감상하며 시리도록 추운 겨울 속에 호흡하는 동해 바다와 그 바다 따라 길게 늘어선 작은 어촌마을, 그리고 나직하게 역동하는 상호조화의 따스한 정취가 더욱 명징한 기억의 닻이 되었다.
단용굴을 나와 이제는 해안을 따라 감포로 가면 이번 해파랑길 11코스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고, 저 먼 산 언덕 너머 석양은 벌써 사라져 땅거미만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사룡굴에 도착할 즈음 단용굴 부근에서 떠들썩하던 젊은 커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텅 빈 공간에 파도 소리만 가득했다.
감포로 가는 길에 바위 언덕을 우회하면 멀리 감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어촌 마을에 비하면 감포는 무척 큰 도시였다.
하루 해가 저물 무렵이라 지금까지와 달리 주변 풍경과 달리 걷는 속도와 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감포로 접어들었고, 드문드문 인적이 보였다.
감포에 진입하여 골목에 접어들었는데 이 길의 첫 삼거리 경로당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나왔고, 그 도로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정류장이 있었다.
감포까지 왔으면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여기서부터 봉길대왕암해변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까지 대중교통, 특히 버스를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지역에 따라 운행 중인 버스 위치가 카카오맵에 표기되지 않아 마냥 기다릴 심산이었으나, 지나는 사람도 전혀 없어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걸어가다 도중에 버스를 만나면 잡아탈 예정이었고, 그렇게 걷던 게 소바지-농협창고-감포시장까지 걷게 되었다.
때마침 감포공설시장 정류소와 주변에 인적이 있었던 데다 노선도 비교적 많아 거기서 버스를 탈 결심을 했고, 낯선 지역이라 봉길대왕암 인근으로 가는 버스가 왔지만 버스가 아닌 줄 알고 그냥 놓쳐 버렸다.
그런 사이 30분 정도를 막연히 기다리며 카카오맵으로 대중교통을 지속적으로 검색한 결과 경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어일에 내려 경주에서 봉길로 가는 버스로 환승하면 된다는데 때마침 그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 짧은 찰나에 고민하다 잘만 하면 경주에서 봉길로 가는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겠다 싶어 못 먹어도 궈궈!
버스 타는 분들이 시간을 끌어주신 덕에 고민 후 서둘러 버스를 타자 꽤 먼 거리 같은데도 버스를 날아서 순식간에 문무대왕면 어일로 도착했고,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경주에서 봉길로 오는 버스가 먼저 지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그 버스가 험난한 추령재에서 조금 지체되면서 예상대로 '어일'이라는 곳에서 몇 분 여유가 있었다.
원래 버스에서 내려 환승하는 버스 정류장이 카카오맵에서 표기된 곳에 기다리자 마을버스 기사분께서 내가 버스를 타는가 싶어 주차장에서 서둘러 출발하셨고, 이참에 버스를 타기 전 여쭙자 동경주농협 하나로마트 앞이란다.
100미터 정도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는 심산에 버스를 기다리는 분들께 여쭤보자 그분들도 같은 버스를 기다리니 나중에 같이 타면 된다고 하셨고, 심지어 버스를 탄 뒤에는 내리는 곳에서 한 번 더 일깨워주실 정도로 친절하셨다.
기다린 지 5분 여 시간이 흐르자 버스가 도착했고, 자칫 막차를 놓치면 대책이 없던 행로에 있어 모험과 같은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며 안도의 깊은 한숨과 함께 풍만한 하루를 접었다.
'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아한 경주의 시간과 작별, 천년숲정원에서 영덕으로_20240116 (0) | 2024.02.19 |
---|---|
간결한 옛것들의 거리, 경주 황남_20240116 (4) | 2024.02.04 |
겨울 갈매기 파도, 봉길대왕암_20240115 (4) | 2024.01.22 |
스윗즈_20240104 (0) | 2024.01.21 |
앞산_20240103 (0) | 202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