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대한 사색

설국열차를 보다

사려울 2013. 8. 11. 00:34

올해 들어 가장 강력한 번개가 쳤다.

점심 먹을 때 바로 머리 위에서 때리는 듯 번쩍하곤 이내 빠작!!!

솔직히 번개 소리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위력이 강한 번개는 나도 무서버 ㅠㅠ

잠시 잠잠하길래 이제 지나갔나보다 했던 번개가 동탄스타CGV로 출발하던 당시에 다시 번쩍이는데 가다가도 몇 번 놀랬다. 에헴...

비는 열불나게 오고 버스는 열불나게 오질 않고... 이럴거면 콜택시를 타는 건데 번개 소리에 그 생각을 전혀 못하다니...

그래도 여차저차 상영관에 좀 늦게 도착해서 들어 갔더니 일행은 없고 스머프가 하더군.

이상하다 싶어 예매 메시지를 확인하니까 아!뿔!사!!

동탄CGV였다!!! 허~얼~

부리나케 메타폴리스로 향했는데 이런 머피의 법칙 같으니라구..

신던 슬리퍼가 한 쪽이 간당간당하게 떨어져서 걷는데 다리 힘은 작살나게 많이 들어가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표 날까봐 자존심 때문이라도 힘들여 걸었더니 발이 천근만근!

여튼 영화 시작하고 10여 분 정도 지나서 도착했더니 일행도 울트라짱 집중을 이끌어내서 영화 상영 중.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은 몰랐다.

한국 영화 치곤 상당히 짜임새도 있었고 폭력에 대한 표현도 조금은 새롭게 느껴졌다.

보기 전까지 주변 지인들의 관전 평이 호불호가 극명했었는데 난 좋게 봤었어.

한정된 공간에서도 그리 답답함을 느낄 수 없었던게 가장 이 영화에 대한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간혹 헐리웃 영화의 여러 특징들을 짜집기한 냄새도 나긴 했지만 의미 심장한 영화의 주제와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접근 방식에 배우들의 연기가 잘 버무려 졌고 그래서 나름 좋았어.



역쉬 송강호다.

이 아자씨는 원래부터 이 사람으로 태어나 살았던 사람이 아닌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씬은 없지만 완벽한 자기 해석과 표현에 능한 사람이자 연기자였다.

특히 욕과 더불어 중얼대는 듯한 대사는 아마도 송강호만의 전매 특허가 아닐까?



영화를 보기 전, 크리스 에반스의 티켓 파워와 퍼포먼스에 잠시 의문을 품었었는데 최소한 이 영화에서의 크리스 에반스는 주연의 임팩트는 조금 부족하긴 하나 그 부족함이 그를 혁명의 역군으로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했다.

처음부터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면 진즉에 혁명을 일으켜 어느 한 쪽이 절단 났을 텐데 약간은 두리뭉실한 성격에 맞는 절제된 연기가 지금이 혁명의 적기임을 교묘한 타이밍으로 녹아 들었다.

막판에 잠시 일관성이 흔들리긴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줄곧 무게 중심을 놓치지 않았다.



송강호가 전혀 과장된 티가 나지 않는 연기였다면 이 아줌씨는 완죤 상반된, 과장의 진수를 보여 주는데 그 과장이 요즘 사극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는 배우들처럼 억척스런 과장이 아니라 권력의 자만을 위해 보여 주는 과장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과장인데 그걸 화려하게 연기했다고나 할까?

틸다 스윈튼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군데군데 섬뜩한 표정이 장기인 듯...

그 장기가 이번엔 좀 딱딱하고 굳어 버려 그리 날카롭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다른 연기자들과 대부분 씬이 빠르게 교차되면서 나름 표가 안 나 버렸고 그래서 거북함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막판까지 집요하게 주인공을 괴롭힌 블라드 이바노프??

악역인데 사악한 표정보단 킬러처럼 무미 건조한 표정의 일관성이 그의 존재감을 더했다.

만약 그가 사악한 표정을 보였다면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을테고 덕분에 그가 추격해 오는 장면의 긴장감보다 몸 전체에서 나오는 악한 기운이 더욱 강하게 발산되었다.

전반적으로 음산했던 영화 분위기는 연기자들의 건조한 표정에 의해 빛을 발했고 현 사회의 신계급주의와 그 이면에 항상 싹 트는 혁명에 대한 메시지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란 영화에 대한 엄청난 실망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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