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봄비가 그치고

사려울 2014. 4. 13. 00:59

봄비 내리던 어느 주말, 저녁 시간에 문득 그 반가운 봄비가 지나간 흔적들이 궁금해 졌다.

세상이 천지개벽하길 바란 건 아니다만 왠지 풋풋한 냉장실 야채가 암시되지 않나?

혼자만의 암시라 하더라도 싱그러운 상상을 품고 동네 산책을 감행했다.



센트럴파크에서 반석산으로 오르기 전, 빌딩숲엔 거짓말처럼 조용하지만 조명은 시선을 끌기위해 서로 아우성이다.

그 날 가져간 조그만 삼각대 덕에 조리개를 조이고 감도를 낮출 수 있어 노이즈가 없이 선명한 사진을 득템했다.



반석산으로 오르는 계단도 비가 지나간 자리를 여실히 보여 주듯 인적이 없다.

잠시 테라스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내렸던 비가 사람들의 관심을 씻어 버렸나 보다.



빌딩숲의 위용이 자못 첨탑처럼 날카롭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은 내렸던 비의 핑계로 반석산자락의 평화를 외면하고 있지만 빗물이 마를 무렵엔 다시 이 자리를 찾아 문명의 경계에서 고민할 것이다.



복합문화센터는 밤이 깊어갈수록 화려한 불빛도 밤에 도치되어 간다.

비 내린 흔적이 역력한 바닥은 불빛을 반사하여 그 생기도 배가 되었고 앞을 보며 치열한 삶을 준비하는 젊은 청춘에 대한 응원에 힘을 싣듯 도서관 불빛은 지칠 줄 모른다.



복합문화센터의 단조로운 불빛을 비아냥거리듯 도시의 중심은 형형색색을 과시한다.

왠지 이 불빛들은 도시가 잠들어도 꺼지지 않을 태세다.



내린 비도, 건물의 유리도 불빛과 세상을 반사하여 비춰 주지만 그 차이라면 빗물은 이내 마름과 동시에 더 이상 비출 의지를 거둔다면 유리는 쉼 없이 꾸준하다.

허나 그걸 지켜 보는 세상은 금새 지쳐 시시각각 변하는 빗물을 동경할 것이다.



비가 몰아 낸 배드민턴 코트의 사람들 덕에 바닥은 마치 수영장 같다.

미세한 바람에 따라 춤 출 것 같고 떨어지는 낙엽에 잔잔한 파랑을 일으킬 것만 같은 이 곳은 고독이라는 마취제에 미동도 하지 않고 얼어 있을 거다.




지금까지는 문명이 비로 인해 시간이 멈춰지고 고독에 경련을 일으켰다면 이제 부턴 반대로 지쳐 있던 자연이 비를 만난 후부턴 역동의 심호흡을 뿜어 대기 시작하는 찰나다.

내가 바라던 응직된 기분의 탈피가 이뤄지는 쾌감을 느끼며 부는 바람에 못이겨 쉴새 없이 흔들리는 중에도 석고처럼 자세를 고정시키고 순간의 정지된 영상을 얻으려 자발적인 인내가 잡념을 씻어 준다.

공원 한켠에 웅크리고 있던 꽃들은 비를 얻어 그 아름다움에 호소력을 사방으로 뻗어 낸다.




아트필터의 재미난 기능은 개나리의 노란색이 왜 그토록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쉽게 설명해 준다.

다른 모든 색상을 배제시킴으로써 노란색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있어야 될 자리에 대한 명분 또한 정교한 표현을 해 버리니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




난 얼마 전부터 비 온 후 앙상한 가지 끝에 맺혀 있는 빗방울이 왜 이리 아릿다울까?

나무에 열리는 열매처럼 굴절되는 빛으로 인해 탐스럽기까지 하나 빗방울 열매는 산신령이 따먹어서 인지 흔적도 없이 금새 사라져 버린다.

카메라 성능이 우월하다고 해도 그 끝자락 열매는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빗방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개나리 꽃잎.

아트필터로 인해 노란색만 표현했는데 조금은 깔끔하지 못한 노란색이 되어 버렸다.






어느 꽃밭에 탐스럽게 맺혀 있는 꽃과 그 탐스러움을 맛깔스럽게 복돋워 놓은 빗방울을 원본과 아트필터로 찍어 봤더니 근래 찍은 아트필터 사진 중 가장 만족스럽다.

바람이 기똥차게 부는 와중에도 플래쉬를 터트리지 않는 강행을 했는데 의외로 선명하게 나온데다 색상도 제대로 표현된 것 같다.

특히 빗방울과 함께 사진 정중앙에 시선을 묶어 두는 노란색은 파란 가을 하늘에 허공으로 뿌려지는 은행잎처럼 색감 뿐만 아니라 건조함을 깨치는 전도사 같다.

봄비의 짧은 여운도 한낮에 잠시 누리는 달콤한 낮잠과 다를 바 없음에도 끌리듯 밖으로 나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 낮잠을 자는 와중에도 폭신한 목화이불의 포근함과 같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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