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가을 일상_20241019

사려울 2024. 11. 12. 00:25

거의 한 달에 한 번 마빡 잡초 뽑는 날.

워낙 활동하기 좋은 가을이라 예약한 시각보다 훨씬 앞당겨 느긋하게 걸어 헤어샾에 도착했다.

무심하게도 모처럼 떠난 여정 중엔 연일 청명하던 날이 미세먼지로 안타깝게 하더니 다녀온 뒤로 연일 청명했다.

멀리 칠보산, 건달산도 선명하게 보이던 날이라 3km 넘는 거리를 걸어 단골 헤어샾으로 출발.

화성 전체가 완연한 가을이 내려앉자 온통 축제 분위기로 뒤덮였다.

동탄에서 웬만한 아파트 단지나 밀집 지역의 공원엔 축제와 장터가 열려 사람이 북적거리며 활기가 넘쳤는데 2동탄으로 넘어오자 그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어 여울공원을 걷던 중에도 멀리 축제 소리가 요란했다.

부쩍 짧아진 낮이 아까워 얼른 머리 잡초를 뽑고 밖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 요란한 축제의 장터로 스며들자.

여울공원은 그야말로 동탄 사람들이 모두 모여든 것 마냥 북적거렸다.

야외무대엔 노래자랑이 끝나고 꿈나무 합창단의 고운 울림이 퍼져 나왔다.

잠시 서서 노랫소리에 심취했는데 이럴 땐 유년시절이 회상되어 괜히 설레기도, 울적하기도 했다.

이런 묘한 이중적인 기분이라니.

왔던 길을 따라 여울공원을 벗어나며 이다지도 아름다운 가을에 반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일찍 집으로 들어가면 가슴으로 누릴 이 아름다운 가을을 놓치는 것만 같아 괜히 길게 돌아 돌아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홍보관 옆 육교를 넘어 거리의 풍경은 삭막하던 것과 상반되게 날씨도, 정취도 아름답다는 것만 뇌리에 맴돌았다.

지긋하던 여름의 고난을 이렇게 보상받게 된다는 확신이 있어 여름에도 투정을 그리 많이 펴지 않는다.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창 어린 나이의 자라뫼공원에도 풋풋한 가을이 젖어들었다.

이런 계절에 심취한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많았고, 표정은 모든 시름을 잊은 평온과 환희가 공존했다.

생태습지엔 어린 풀과 함께 설익은 연못이 있었는데 가을이 찾아들며 단조롭던 자리엔 자연의 행복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디선가 오리 소리가 들려 연못을 주시하자 정말 오리 가족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난 그냥 연못 데크를 걷는 것뿐인데 녀석들은 스멀스멀 멀어져 갔다.

묘목 수준의 나무들도 가을 옷을 입는 순간 멋쟁이가 되었고, 어느 하나 외면하지 않는 게 가을의 관용이었다.

자라뫼공원에서 구부정한 길을 걸어 가장 높은 언덕으로 향했다.

마치 가을바람이 활보하는 광야를 딛고 선 기분이 들었다.

언덕 위 작은 쉼터 겸 전망대 도착, 모든 세상이 보이진 않지만 모든 가을은 상상의 세계로 들어왔다.

줄지어 사람들이 올라와 멋진 자리를 양보하며 왔던 길로 내려갔다.

비교적 조성을 시작한 건 오래된 일이지만 공원으로서 자연을 품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는데 인간이 작위적으로 설치한 존재는 벌써 낡기 시작했고, 자연은 윤택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차례 바람이 불어 나무에서 낙엽이 우수수 바람에 휘날렸다.

오산천을 지나며 잔뜩 찌뿌렸던 하늘이 그 무엇보다 광활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을, 만추면 늘 찾던 독서가 생각나는 벤치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 퇴색의 흔적이 역력했다.

물론 좀 더 가을이 깊어지면 이 자리는 숨었던 멋이 살아나겠지만.

잣나무?

이파리도 노랗게 익어갔다.

괜히 길을 돌아 가을이면 약속처럼 찾는 거리를 걸었다.

어딜 가나 이쁘지 않은 곳 없겠지만 마음에 담은 가을은 좀 더 각별했다.

동탄이 하루 종일 떠들썩했던 날이라 여느 작은 공원에도 축제의 장터가 열려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괜히 이런 포장마차에 들러 어묵 한 접,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면 좋겠지만 이튿날 학교 가는 날이라 자중했다.

이게 단풍꽃이란 걸 학교에서 배웠다.

무르익은 이파리를 뚫고 풋풋한 색깔이 뛰쳐나와 새순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단풍 꽃이었다니, 그러고 보면 단풍 꽃도 외면에 눈이 멀어 지나쳐왔었는데 외면을 벗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가을은 급히 익어갔고, 한 해의 학교 출석은 끝을 내달렸다.

10월 마지막 주가 지나면 지긋지긋하던 등교도, 덤덤하게 마주한 가을도 그리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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