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대한 사색

부쩍 다가온 겨울 바람, 풍기역_20211224

사려울 2023. 2. 9. 02:07

부석사에 들렀던 날은 매서운 기습 한파가 들이닥치던 날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허기진 배를 달랠 장소를 고민하긴 했다.
일대에 추천받았던 곳 중 유일하게 괜찮고 정갈하고 깔끔했던 청국장집인데 약간 젊은 입맛에, 주방은 다른 곳에 격리되어 있는지 맛보기 전 청국장 특유의 꼬릿한 냄새는 별로 없었다.
청국장 조리할 때 냄새는 기겁하는데 일단 입안에 털어 넣으면 손바닥 뒤집듯 느낌이 달라지는 음식 중 다섯 손꾸락 안에 드는 음식이니까.
오픈 시간이 조금 늦어져 기다리는 동안 한창 공사중인 풍기역을 혼자 톺아보는데 근래 여느 역들처럼 현대를 추종하려 대대적인 성형수술 중이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새로운 세대와 시대를 맞이하려는 모습에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렇다고 과거만 고집할 수 없고, 인정머리 없이 과거를 완전 버릴 수도 없는 벱이다.

익숙해서 정겨운 모습.

완전 펜스로 도배해 놓은 외부와 달리 내부는 그대로였고, 깨끗하게 관리한 옛 정취가 더 정감이 갔다.

풍기역이 중앙선인가 보다.

한파가 이제 막 당도한 시기라 매서운 칼바람에 싸락눈이 흩날렸다.

식당에 도착하여 기웃거리자 아직 오픈 전이라 잠시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잠깐 동안 풍기역을 톺아봤는데 오픈 시각이 되어 풍기역을 빠져나와 정면의 곧게 뻗은 도로를 응시하자 한파가 오는 을씨년스런 풍경이다.

과거를 대표하는 공중전화기도 남아있었다.

왠지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싶거나 잠시 줄 서서 기다려 보고 싶었다.

산골여정에 있어서 가끔 철도역을 방문하다 보면 현대적인 모습으로 리모델링을 하는 역사가 많은데 새로운 변화가 정감 가는 곳이 있는 반면 이질적인 역사들도 있었는데 아직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풍기역을 어떻게 풀이하고 보여줄지 궁금했다.

식당 오픈과 동시에 몇 팀이 자리를 차지했는데 거기에 맞춰 자리를 잡고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막 도착했을 때 식당 영업 전이라고 알려준 분은 중년의 사장님이셨고, 오픈에 맞춰 홀을 분주히 다니시는 분은 젊은 분이셨는데 아마도 부자지간 아니었을까?

식당 내부는 정갈한 배치에 깔끔하게 리뉴얼되어 분위기가 화사했는데 잠시 지나 가장 먼저 전달받은 밑반찬 중 샐러드가 꽤 특이했다.

청국장을 토핑으로 사용하여 재료 간 풍미가 잘 어울릴 거 같으면서도 서로 밀어내려 했다.

차라리 청국가루를 사용했더라면 각자 풍성한 풍미가 조화롭지 않았을까 싶었다.

돼지 불고기는 양파 토핑이 풍성하게 올려져 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양파 특유의 톡 쏘는 맛 덕분에 텁텁한 고기맛을 잡았지만, 고기 자체 식감과 맛은 별로였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주인공 청국장은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구수한 청국장보다 깔끔한 청국장에 가까웠고, 청국 특유의 악취(?)는 줄었다.

구수한 청국장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지나친 깔끔함은 자칫 청국의 구수함까지 반감시켜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거부감이 적을 수 있지만 나에게만큼은 두 마리 토끼를 놓치는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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