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 많은 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봄의 시선을 피하려 들겠지? 지상의 피조물과 올올이 엮여 잠시 쉬는 모습이 결 하얀 아기 피부 같아 가던 길에 서서 잠시 눈을 밟아본다. 아직은 눈이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끝을 간지럽히는 보드라운 잔향이 전해지는데 가끔 보이는 눈 위 발자국 또한 나와 같은 기분을 가진 게 분명하다. 다음 숙소로 가는 동안 길머리에 있는 샘터에 들러 물 한모금 들이키자 눈 내린 세상을 질주한 긴장이 역력했는지 긴장과 갈증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고스란히 안도와 만족이 들어찬다. 가는 길에 정선 치곤 꽤 넓은 평원을 하얗게 물들인 설경에 반하여 다시 차를 돌려 다리를 건넌다. 평온한 마을의 첫인상이 정선이구나 싶다. 오대천길은 꽤 자주 다닌 길인데 눈이 내려서야 비로소 숨겨진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