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3

나른한 진풍경, 송지호_20200414

화진포에서 다시 남쪽 방면을 향해 7번 국도의 매끈한 직선을 따라 출발, 송지호의 평온에 이끌려 옆길로 샜다. 텅 빈 해변에 발을 들여 걷기 힘든 고충도 잊고 바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다내음 짙은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시야가 뻥 뚫리는 기분, 동해의 매력엔 가희 반할만하다. 파도가 해변을 집어삼킬 듯 돌격해 오다 해변의 평온에 중화되어 급격히 잠잠해진다. 큰 파도에 아슬아슬한데도 갈매기들은 아랑곳 않고 태연하다. 가끔 녀석들끼리 침묵을 깨는 장난과 울음소리가 들리다가도 이내 다시 찾아온 평온. 한 마리 갈매기의 비상, 미친 듯 부딪히는 파도와 미동도 하지 않는 죽도,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고깃배... 몽환적이다. 바다에 죽도란 섬이 있는데 이 섬을 돌아온 파도가 죽도와 해변 사이에서 서로 맞부딪히는 게 ..

나른한 봄의 평화, 화진포_20200414

파도와 바람은 지치지도 않는다. 허나 그 선율은 치유의 유전자가 있어 더 이상 북으로 갈 수 없음에 대한 위로를 해주며 동시에 왔던 길을 고스란히 바라고 떠날 응원도 빼놓지 않는다. 세상에서 발자취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무수히 많아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시간의 감회를 자근히 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정의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의 스승인지 통감한다. 내가 떠나더라도 자연은 무심하게도 안색 조차 변하지 않지만 또한 다시 만나더라도 태연한 모습으로 대답하며, 언제나 변치 않는 신뢰로 회답한다. 요란한 믿음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한낯 휘영청한 거품일 뿐. 숙소에서 출발 준비를 모두 끝내고 베란다에 나와 전날 거대한 암흑과도 같던 바다가 전날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

둔중한 밤바다, 고성 대진해변_20200413

모두가 잠든 가운데 홀로 깨어 밤새 분주한 파도는 적막을 집어삼킨 채 지칠 줄 모른다. 그럼에도 소음이 아닌 자장가로 거듭나 긴 여정의 끝에 경직된 신체를 이완시켜 준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행복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밤이다. 밤에 도착하여 처음 맞는 적막에 밤 산책은 접고 숙소 베란다에 나와 쉴 새 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이따금 창 너머에 반짝이는 등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휴전선과 접경 지역이라 늦은 밤이면 출입이 통제되는 해변은 환한 불빛만이 자리를 지키고, 이따금 비치는 등대 불빛이 불현듯 외로움을 알려줬다. 이러한데 해변 앞 작은 섬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독한 고독에 시달렸을까? 오래된 시설이라 내부에 오래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특히나 주방기구들은 낡은 데다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