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길 바라지 않았던, 떠나는 약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등을 떠밀려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느다란 보슬비가 내리며 첩첩산중에 구름솜을 뿌려 놓은 장관이 차라리 없었더라면...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미련 없이 훌훌 떠나버릴 수 있도록 유혹하지 않았더라면...그저 일상처럼 쨍한 햇살을 뿌리며 고독한듯 건조한 바람에 발길 자욱한 낙엽만 굴렀더라면... 피부에 닿으면 겨울 답지 않게 부드러운 입맞춤처럼 사각이던 보슬비가 이내 굵은 빗방울이 되어 가려는 길을 추적추적 적셔 놓는다.그저 평이했다면 기억에 산만히 흩어져 있을 터이지만 가는 길, 11월 마지막 날은 기억에 집착하는 그 모든 것들로 인해 고스란히 남아서 구름 조각을 덮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