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고개를 지나다_20170916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래서 무심코 넘겨 버릴 수 있는 여행의 길목에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자연은 식상해 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동네 인도 주변에 아무렇게나 태동하는 자연의 터전조차 계절까지 넓게 잡지 않고 하루를 비교해 보더라도 신선한 일상의 한 단면 같아 소소한 변화에도 급한대로 폰카를 이용해 담아 둔다.

2년 전 방문했던 상동은 길목 켠켠이 쌓여 있던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차에서 내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내 기억의 의심이 기우인 양 정겨움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며 마치 옆 동네를 방문하는 듯 친근한 착각에도 빠졌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자연에선 아직 가을을 느낄 수 없고,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자리를 잡은 여름이 좀처럼 떠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상동으로 가는 길목에 항상 들러야 될 것만 같은 솔고개는 주위가 조금씩 다듬어 지고 있다는 것 외에 큰 변화는 없었다.

(사라진 탄광마을, 상동_20150912, 다시 넘는 솔고개_20161015)

그래도 막연하게 보고 있으면 걷고 싶은 길.

여름의 피서철을 피해 한 동안 여행의 길을 동경으로 뒀던 여파로 모든 여행의 시작과 과정, 끝이 길이라는 걸 알기에 조성 중인 텅빈 길조차 반가웠는지 모른다.

2년 전에 비해 크게 바뀐 것 없는 길과 길섶의 풍경이지만 어색했던 2년 전과는 달리 이제 주위에 서서히 녹아 들어 어느새 원래 있던 선명한 길처럼 보여져 버렸다.

높은 구름이 하늘을 잔뜩 뒤덮어 활동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라 차에서 뛰어 내려 익숙한 길을 걷듯 소나무길에 발을 내디뎌 그 자태를 감탄하며 신중한 발걸음을 디뎠건만 머문 시간이 그리 짧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았다.

그 오랜 세월의 인고에도 부딪히고 패일지언정 절대 좌절하거나 비굴하게 방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나는 수많은 길손들의 사연을 들어 주듯 그들이 뻗는 지친 손을 물끄러미 받아준 소나무 였기에 사람들은 신격화 시킨게 아닐까?

여느해처럼 솔고개의 소나무는 적막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도 여느날과 다름 없이 소나무가 홀로 덩그러니 지키고 있을 만큼 한적했다.

그러다 가끔 찾아드는 길손들은 그 적막이 뒤덮고 있는 이 공간의 파랑이 휴식을 방해할까 싶어 조용히 왔다 잠시 둘러 보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지나는 사람과 1년 사이 달라진 풍경을 숨은 그림 찾듯 훑어 보며 어슬렁거렸다.

소나무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작년에 희미하던 길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공사 중인 흔적들도 곳곳에 보였다.

이 땅은 어떤 옷으로 갈아 입으려는 걸까?

처음으로 혼자 찾아간 솔고개에 도착해서 바라보는 느낌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세월에 따른 자잘한 변화들이 눈에 들어온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면서 느껴보지 못한 세월의 사연들을 느낀 건지 규정할 수 없지만 그 전까지 감지할 수 없었던 삭막함도 스쳐 지나간다.

들판과 산을 가리지 않고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활짝 날개를 펼친 민들레 씨앗.

머무르며 주위를 한껏 둘러보다 언제 올지 기약 없이 자리를 떠나려는 아쉬움에 뒤를 둘러봤다.

태고적 부터 지상을 굽어 살피는 단풍산의 위용과 언제나 변할 줄 모르는 솔고개는 이 길을 지나는 길손들의 어머니 품을 자처 했을거다.

절망을 뒤로 한 채 수많은 희망의 설렘을 안고 먼 길을 찾아 상동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이제는 또다른 희망을 품고 터전을 떠나면서 이 꿋꿋한 절개를 가슴 깊이 새겨 넣었겠지?

언젠가 그들이 찾아 오는 날이면 분명 이 솔고개를 허투루하게 지나치진 못할, 삶의 시간과 애환은 변치 않는 소나무처럼 고스란히 기억하리라.

자리를 완전히 뜨기 전,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건지 잠시 뒤를 돌아보자 단풍산과 같은 시선의 선상에서 내게 미소를 뿌려 준다.

솔고개를 찾은 한 무리 인파는 소나무와 단풍산을 함께 담기 위해 사진을 찍거나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아마도 애환이나 추억들을 그 동안 변함 없이 잘 보관해 둔 소나무에 대한 경의가 아닐까 싶다.

큰 산으로 둘러 싸여 넓직한 공간의 한 중간에 솟은 언덕과 그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산모퉁이를 돌아 서는 순간 부터 입체적으로 눈 앞에 펼쳐져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범상한 풍경을 차근히 읽어나가는 이해가 바로 이런 여행의 숨겨진 의미인지 비록 짊어진 짐은 전혀 없음에도 첫 발을 내딛던 때와 달리 어떤 뿌듯함을 한아름 챙겨 담는, 그게 여행이 주는 감성의 충족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