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된 도리는 이유가 될 수 없는 필연이라 어느 누구도 빠짐없이 매년 2번은 꼭 성묘를 했었는데 당시엔 공원 묘지에 빈 터가 많아 이렇게 주변도 수풀이 우거져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개발되면서 묘가 바둑판처럼 빼곡히 들어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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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무소와 연결된 직선의 비탈길에서 작은 고랑을 넘어야 묘가 있는데 아이가 건너기엔 조금 후덜덜 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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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무소 앞 정원에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어 대비 효과로 유독 눈에 띄이고, 이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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