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 동안 바로 옆에 줄곧 호수가 동행하는 둘레길을 따라 A코스를 지나 B코스로 접어들었다.전날 기습적인 추위와 두터운 구름이 몰려와 물안개는 만나볼 수 없지만 걷기 수월한 호반길은 젖어드는 가을이 길섶 호수와 숲을 흔들어 깨웠다.그래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계는 잠시 뒤로하고 오롯이 마음이 추동하는 여유만 쫓다 보니 걷는 걸음에서 피로가 발목을 잡지 않았다.시간의 관용이 일상에서 익숙해진 습성을 마비시켜 늦어도 조급하지 않았고, 앞이 아닌 곳으로 시선을 던져도 불안하지 않는 횡성호반은 얼마 남지 않은 녹음과 다가올 신록 사이에 깊은 잠을 자기 전, 변모의 숙연함이 찰랑였다.B코스와 A코스의 다른 점은 너른 길에서 오솔길로 바뀐다는 점이었고, 같은 점은 호수와 숲의 경계를 예리하게 관통했다는 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