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추억과 오지의 간이역, 봉화 분천역_20240406

사려울 2024. 6. 16. 15:45

불과 한 달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봄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앙상한 가지에 연둣빛 옷을 입혔고, 황량하던 흙 위에 노란 점을 찍었다.
그도 모자라 간이역 플랫폼에 생기를 불어넣어 오가는 걸음 분주하다가도 이내 사라졌고, 그러다 정적이 쌓이면 다시 종종걸음이 싣고 온 웃음소리를 채웠다.
어느 누구에겐 덜컹이는 기차가 삶의 동선이라면 어느 누군가에겐 추억의 장난감이 되어 감성에 젖게 했다.
그래서 이번엔 종점, 철암으로 간다.

분천역은 영동선의 철도역.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49(분천리 935-1) 소재.
역명은 여우천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하여 부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부내'를 한자화 해서 분천(汾川)이 된 것이다. 현재의 역사는 1957년 완공된 것이다. 2008년 11월 1일부로 화물취급은 중단되었다. 승강장은 본래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이었으나, 역사와 맞닿아있는 선로 쪽에 추가로 단선승강장(타는 곳 1번)을 추가하여 2면 3선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1번 승강장은 V-train 전용 승강장이다.
[출처] 분천역_나무위키
 

분천역

파일:분천역 스탬프.jpg 분천역의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형상화했다. 코레일 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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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출발하기 전, 화단 한 켠에 조팝나무가 어느새 활짝 열려 화사한 빛을 굴절시켰고, 더불어 은은한 향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화사한 가슴을 담아 분천역으로 향했다.

분천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당나무는 금줄에 둘러쳐져 쉽게 눈에 띄었다.

산타마을로 들어서는 자리에 버드나무는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화려한 연두 옷을 입었다.
봄이 급한 건지, 내가 둔갑했던 건지 그 화려한 연두의 신록이 감동의 역치를 훌쩍 넘겼다.

알카파는 벌써 나와 지나는 사람들을 멀뚱히 바라봤는데 새삼 늘 갇혀 있는 불쌍한 존재이기도 했다.

먼 길 달려온 터라 출출하던 차에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아직은 영업 중인 식당이 많지 않아 간단하게 국밥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설 찰나 옆에 웅크린 냥이가 있어 녀석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봤다.
식당에서 케어하는 녀석이라 낯선 사람들에게 경계심은 없었지만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혼자 집에 갈 수 있어요'

밥을 주기는 적절치 않아 츄르 2개를 짜서 녀석에게 내밀었지만 왜 이리 딱한지.
실제 동탄에서 있었던 일로 동네 냥이들을 케어해 주시는 상점 쥔장께서 동네 사람들이 밥이나 간식을 조금 자제해 주었으면 했었는데 이유는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챙겨주시는 밥과 간식의 횟수가 많아 정작 캣맘/대디가 고정적으로 챙겨주시는 밥은 안 먹는다고.
장기적으로 본다면 녀석들은 어느 누군가가 꾸준하고 일정하게 챙겨주시는 게 건강에 더 이롭다는 측면에서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고, 때론 익명의 캣맘께선 자신이 챙겨주던 냥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챙겨주시는 게 언짢으시단다.

그래서 쥔장 동의로 츄르만 줬었는데 얼굴에 언뜻 비치는 불쌍한 표정은 지울 수 없었다.

행여 차에 가서 냥이 밥을 챙기러 간 사이 이런 장난도 쳐봤다.
‘연두 한 다발을 그대에게 바치리~’

점심 식사를 끝내고 바로 분천역에 도착, 그리 이른 시각이 아니었음에도 찾는 이가 거의 없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분천역의 마스코트 호랭이는 나름 백수의 왕이기도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분천역 광장을 지키는 귀염둥이 파수꾼이기도 했다.

이번엔 트레킹이 되지 않아 철암역까지 갔다 돌아올 계획으로 미리 열차 예약을 한 상태로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분천역을 천천히 둘러봤다.

실제 호랭이를 만져보면 보들보들한 봉제 인형으로 제법 잘 재현해 놓았음에도 묘하게 맹수의 느낌보단 익살맞은 느낌만 남겨 놓았고, 분천역으로 오는 많은 관광객들 중 아이들이 좋아했다.

분천역과 플랫폼 너머엔 약수암이란 사찰이 하나 있었는데 법당은 단 둘, 아마도 위에 있는 바위 절벽 아래 작은 법당은 산신각이 아닌가 싶었다.-종교에 대해 무지한 관점에서 본 뇌피셜일 뿐-

철길 플랫폼 바로 옆 작은 소나무 아래 있는 호랭이의 구도가 가장 귀여웠다.

영산홍으로 둘러싸여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어 충분히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

분천역은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열차 도착 시각 또는 출발 시각에 임박하여 플랫폼을 개방하는데 바로 옆에 관광객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미운행 철길이 있어 분천역을 둘러보게 되면 반드시 거쳐가는 곳 중 하나였다.

생존 본능에 충실하면서 화사한 자태를 잃지 않는 민들레는 강인한 생명답게 지천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꽃잎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직은 열차 출발 시각까지 여유가 있어 산타마을 일대를 휘리릭 둘러봤다.

불과 한 달 전 방문 시엔 멀리 보이는 장벽 같은 죽미산이 설산이었건만 이제는 제 모습을 온고히 드러냈다.

한 달이란 시간이 그만큼 역동적인 시기였다.

분천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알카파 하우스가 있어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은 알카파를 보기 위해 울타리에 바짝 붙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익숙한 알카파는 개의치 않고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행여나 침을 뱉지 않을까 싶어 조금 쫄아있던 터라 그리 가까이 가지 않았다.

기차는 10분 이상 연착이라 플랫폼이 예정 시각보다 늦어서야 개방을 했는데 그러는 사이 체르마트역을 재현한 역사 옆에서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고, 지난번 방문 했을 당시 흑백 사진이 더 감각적이라 이번에도 흑백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울타리가 쳐져 지정된 시간 외에 출입이 불가능한 플랫폼엔 관광열차인 V-train과 동해산타열차가 언제나처럼 대기 중이었다.

V-train을 흑백으로 찍어 놓으면 마치 예전 열차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체르마트역(Zermatt)은 스위스 발레주에 있는 체르마트의 자동차 없는 등산 및 스키 리조트를 운행하는 미터궤 기차역이다. 피스프(스위스 연방 철도) 및 브리크(스위스 연방 철도 및 BLSAG)에서 표준궤 노선과 체르마트를 연결하는 BVZ 체르마트 철도의 남쪽 종점으로 매일 빙하특급 열차가 체르마트역에서 출발하거나 종착한다.
또한 체르마트의 차량 통행 금지 상태로 인근 테시 사이를 자주 운행하는 특별 셔틀 열차도 운행 중이다.
[출처] 체르마트역_위키백과
 

체르마트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체르마트역(독일어: Zermatt)은 스위스 발레주에 있는 체르마트의 자동차 없는 등산 및 스키 리조트를 운행하는 미터궤 기차역이다. 피스프(스위스 연방 철도 제공) 및 브리크(스위스 연방 철도 및

ko.wikipedia.org

한국과 스위스 수교 50주년으로 분천역과 체르마트역 자매결연 기념 현판이 분천역사에 걸려 있었다.

그 내용은 '한국과 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백두대간 힐링마을 분천의 기차역과 스위스 알프스의 청정마을 체르마트의 기차역 두 곳이 자매결연을 2013년 5월 23일 맺었다.'

실제 분천역을 대표하는 산타마을 외에 낙동강 세평하늘길 중 2구간도 체르마트길로 명명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수해 복구가 끝나지 않아 출입이 제한된 상태였었다.

열차 출발이 가까워져 플랫폼이 개방되자 인근에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향했다.

기차의 덜컹이는 소리에 추억 소환하는 분들이 제법 많았다.

협곡열차에 특화된 V-train은 오지 협곡과 간이역에 맞춰 오래된 열차의 느낌을 재현했다면 동해산타열차는 드넓은 동해바다를 해변 카페에서 느긋하게 감상하는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현대식의 깔끔한 객실로 재구성했다.

언젠가 동해산타열차도 이용해 보겠지만 이번엔 목적지가 명확한 만큼 동해산타열차는 다음 기회로 미뤘고, 철암역까지 가는 열차를 타는 동안 과거에는 익숙했을지언정 어느 순간부터 익숙함이 멀어진 낙동강 협곡의 독특한 정취에 흠뻑 젖은 채로 그렇게 철암역까지 시간과 공간 여정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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