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봄의 갈망, 진천 농다리와 미르숲_20240330

사려울 2024. 6. 8. 00:09

누구나 계절에 대한 다짐, 약속, 추억은 있기 마련.
내게 있어 봄의 약속 중 하나가 되어 버린 농다리 계절의 청량감을 즐기는 몰취향은 손꼽아 기다리는 의식이 되어 버렸다.
미르숲에서 미로 같은 숲길 갈림길에서 즉흥적으로 발길이 가는 대로 길을 걷고,
만약 걷다가 길을 잃어도 전혀 상관없었다.
결과를 안다는 건 스릴도 없지만 두려움도 없는, 역치 내에서 지극히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최소한 농다리에서 조금 이른 봄 산책이지만 시신경을 자극하는 스펙트럼이 모든 게 아니며, 청각이나 후각 또한 모든 사유의 동조 안에서 결과는 상이했다.
그래서 미르숲을 찾아 괜히 방황하고, 쓸데없이 기웃거리며, 정해진 길에도 공감의 가슴을 열어젖혔다.

진천 농다리는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다리로 아름다운 모양의 돌다리다.
상산지(1932)에는 ‘고려초기에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는 28수를 응용하여 28칸으로 만들어졌다.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후, 상판석을 얹어놓고 있다. 이 다리의 특징은 교각의 모양과 축조 방법에 있는데, 돌의 뿌리가 서로 물려지도록 쌓았으며 속을 채우는 석회물의 보충 없이 돌만으로 건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교각의 폭은 대체로 4m 내지 6m 범위로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올수록 좁아지고 있어 물의 영향을 덜 받게 하기 위한 배려가 살펴진다. 비슷한 예가 없는 특수한 구조물로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상판석의 돌은 특별히 선별하여 아름다운 무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농다리_진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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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농다리 미르숲_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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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출발한다고 했음에도 늑장 부리는 사이 고속도로엔 급격히 정체 구간이 늘었고, 서둘러 출발하여 1시간 조금 넘어 진천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농다리에 도착했다.
아직은 봄소식이 만연한 게 아닌데도 역시나 농다리엔 많은 사람들로 주차장은 이미 반 이상 들어선 상태였던 데다 줄지어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다.
서둘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차량 밖으로 나오자 농다리, 폭포, 그리고 농암정이 가장 먼저 맞이했다.
조만간 벚꽃 필 무렵이면 하얀 언덕으로 물들 곳이었다.

봄에 가장 설레는 농다리는 약속이 되어 버렸다.
살랑거리는 봄바람 따라 파란 버들댕댕이의 손짓에 첫걸음 힘차게 내디뎠다.

줄지어 농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사진에 빠질 소냐.

이 사진 이쁘게 나왔다.

건너왔던 농다리와 잔디광장, 홀로 선 버드나무를 차례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훑어봤다.
마음속에 봄을 연상한다면 이 모습이 금세 떠오를 만큼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봄의 간결함이 잘 녹아들었다.

농다리 건너 첫 미소, 햇볕에 굴절된 진달래가 이쁘기도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초평호의 초롱길과 하늘다리가 있는 살고개를 넘지만 난 망설임 전혀 없이 미르숲으로 갔다.
나처럼 미르숲의 미로길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하고, 손꼽아 약속한 것처럼 이렇게 꼭 찾아야만 했다.

미르숲(면적 108ha)은 다양한 테마에 따라 식생경관디자인 숲(기원의 숲), 자연상생철학 숲(생각의 숲), 지질역사배움 숲(붉은 바위의 숲), 자연생태동화 숲(요정의 숲), 수변경관투영 숲(거울의 숲), 미래세대문화 숲(약속의 숲). 총 6개의 숲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인공적인 조성을 최대한 지양하고 숲이 고이 간직해 온 소중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살아 있는 숲의 생물다양성 증진과 유전자원 보존을 위해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를 복원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자연과 인간과 생명의 메시지를 담은 미르숲은 건물의 나무 하나, 높낮이마저 자연친화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출처] 미르숲_진천군청
 

함께하는 미르숲

미르숲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산7-1   미르숲(현대모비스 자연생태교육관) : 043-537-8106     진천군청 미래도시국 산림녹지과 공원녹지팀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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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만나는 미르숲의 매력을 이제부터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 사람 지날 수 있는 오솔길이 숲에 미로처럼 꼬이고 설켜있었는데 이 매력에 맛 들이면 매년 봄마다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3월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꼭 찾기로 했던 다짐을 지켰다.

지그재그 길의 전형적인 형태로 180도 꺾이며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몇 번 꺾이는 건 세어보지 않았고, 그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숲을 촘촘히 파고들어 누구든 손쉽게 오를 수 있도록 가파른 오르막을 중화시킬 목적도 있지만 최대한 계단을 배제시킨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긴 해도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구간을 이렇게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오름에 힘을 아낀 대신 숲에 몰입할 수 있는 이 길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뱀출몰주의!
이게 조금 거슬리는데 아직은 바람살이 조금 서늘해서 뱀의 활동도 위축되는 날씨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서 3월이 최적이라 판단했지만, 그래도 주의는 필요했고, 길을 벗어나지 않는 게 좋겠다.

진달래가 모여 있는 곳에 왔지만 막상 어딘지 알 수 없었고, 도리어 길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재미난 곳이었다.

미르숲에서 진달래 군락지는 그리 넓지 않고, 다만 몇 군데 군락지가 있었는데 그중 한 곳으로 군락지 자체의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진달래를 마주치며 새삼 봄을 실감했다.

미르숲 한가운데 사유지가 있어 작은 규모의 경작지와 묘지가 있었고, 주변이 트여 있어 인근 미호강과 중부고속도로, 농암정 일대가 훤히 보였다.

길은 사유지를 우회하여 지그재그로 올랐는데 미호강 농다리 너머 주차장에 차량이 꾸준하게 유입되어 사람들이 찾는 명소임을 새삼 실감했다.

길섶에서 움트는 봄의 흔적들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이게 바로 봄에 미르숲을 찾는 이유였다.
여전히 겨울색이 짙은 숲에 봄이 서서히 움트며, 아직은 뱀이나 벌의 활동이 불편한 시기, 그러면서 봄 특유의 싱그러운 바람이 더해져 걸을수록 점점 벅찬 가슴을 폐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갈림길에서 망설임 없이 아무 길이나 즉흥적으로 선택해서 걸었다.
어느 길이나 잃는다는 개념보다 즐긴다는 사유가 더욱 강렬했다.

여긴 처음 와본 길인데?
길을 잃은 건가?
그렇다면 재수!

길을 걷다 우측 위에 전망데크와 간헐적으로 봄의 전령사들이 반겼다.
계속 길 따라가는 것보다 전망데크에 올라 어떤 세상을 마주할까 싶어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기 또한 미르전망대로 가는 길은 양갈래 길.
전망데크를 방문한 뒤 이왕이면 멀리 둘러가는 길로 가기로 결심했다.

 

 

전망데크에 올라오자 골짜기처럼 갇혀 있는 곳이라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예상외로 시야는 옹골차게 트여있었다.

전형적인 봄의 날씨로 활동하기에도 좋지만 사유의 열매를 키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아니, 진천에 왔으니 진천맞춤이라 해야 되나?

전망데크에서 내려와 미리 결심했던 대로 한치 망설임 없이 멀리 둘러가는 길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다시 마주한 갈래길, 여기서는 돌탑을 쌓아둔 좌측으로 걸었다.

미르숲 자체가 그리 큰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길을 걷던 도중 갈림길이나 꺾이는 길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여기 또한 길이 180도 꺾이는 와중에 길 사이 작은 공간에 염원을 형상화한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길은 계속해서 갈지 자 행보였고, 얼마 걷지 않은 착각이 들만큼 지루하거나 단조롭다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는 거듭 길이 갈라지고 교차되었다.
분명 지난번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지난번과 같은 길에 들어섰다.

정상이자 미르 전망대 아래 도착.
지난해에는 이 자리에서 우측으로 향했지만, 이번엔 반대 방향인 좌측으로 향했다.
첫 목표 장소가 바로 눈앞이라 길을 더 잃고 헤매야 되건만 가까워진 만큼 조합되는 선택지는 그만큼 좁아졌다.

정상에 도착할 즈음, 바로 아래 정자로 된 전망대에 서자 그간 계속해서 동행했던 미호강 농다리 방면 전망과 달리 초평호 방면으로 펼쳐진 세상이 펼쳐졌다.
진정한 뷰맛집이라 미르숲에 들어와 첫 휴식을 취하며 충분히 감상에 젖었다.

강 하나 건너, 고갯길 하나 넘어 문명이 자욱한 세상과 설익은 세상의 경계에서 채 익지 않은 문명을 향해, 채 다져지지 않은 길을 밟고 호수가 머문 세상에 닿았다.
어설픈 봄이 힘겹게 둔턱을 지나 긴 한숨 쉬는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봄의 생동감과 아름다움이 돋보였고, 호수의 진한 물 내음에 굴절된 세상은 더없이 청명하기만 했다.

전망대 아래 미르숲의 전형적인 숲길과 같은 길이 발아래 호수로 향했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곳이라 길은 어떻게 파고들어 명맥을 유지하며 호수로 이어질지 궁금했지만 우선 정상 전망대를 다녀온 뒤 호수 방면으로 내려갈 때 이 길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전망대에서 왔던 길을 살펴봤다.
살고개와 이어지는 이 길은 가운데 길로 올라와 전망대에서 정상과 호수로 갈라졌다.

미르 전망대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은 사방으로 선택을 제시했다.
다시 미르숲으로 갈 것인지, 초평호로 향할 것인지, 아님 정상의 전망대로 향할 건지.
그럼에도 걸음은 어느새 정상 전망대로 향했다.

미르숲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미르 전망대에 올라 인색했던 휴식을 취했다.
눈도, 다리도, 어깨도 쉬게 하고, 마음에게도 자유를 줬다.

미르 전망대에 서면 미르숲과 동행했던 미호강 농다리 일대와 농암정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좀 전에 비해 부쩍 늘어난 고속도로 위를 흐르는 차량의 행렬, 길게 뻗은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 평원처럼 광활하게 뻗은 진천 들판에 내려앉은 미세먼지 연무.
가려서 볼 수 있는 선택권이 없는 대신 보이는 세상에서 어느 하나 부정적인 요소는 없이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벚꽃 필 무렵... 아름다운 농암정엔 벚꽃이 늑장을 부렸지만 그래도 주변을 둘러싼 멋진 전경은 딱 그만큼의 역할에 충실했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달달한 넛츠크림빵과 고소한 소금빵, 우유를 끄집어냈다.
왜 먹는지 이유를 몰랐던 소금빵은 막상 맛을 본 뒤 인기 비결을 알았다.

미르 전망대에서 내려와 앞서 들렀던 전망대 정자를 지나는 호수 방향의 숲길로 진행, 막상 길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경사가 꽤 급한데 그 경사도를 무마시키기 위해 길의 폭도, 지그재그의 폭도 무척 촘촘했다.

경사가 어찌나 급한지 발아래 바로 호수가 펼쳐진 것만 같았다.

미르309 출렁다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산 7-1에 소재, 용을 뜻하는 미르와 국내 최장 총길이 309m를 뜻하는 309 합성어.
[출처] 미르309출렁다리_진천군청
 

진천군 열린군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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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천 초평호 권역 종합안내도_진천군청
 

 
숲길을 내려오자 현대모비스 자연생태교육관 인근에서 큰길에 합류했고, 가장 먼저 눈에 띈 한 가지, 바로 출렁다리가 있었는데 아직은 개통 전이라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출렁다리 초입에 출입금지 테이핑처리가 되어 있어 사진 몇 컷 찍는 걸로 만족하고 돌아서는데 인근 전망대와 맨발 숲길도 조성 중이었지만 찾은 시점에선 아직 공사 중이거나 개통 전이라 대부분 출입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고, 꽤 많은 사람들 또한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미르309라 칭한 새로 조성 중인 출렁다리 포함, 관광지는 데크 전망대 정도만 제대로 이용할 수 있어 호수와 거기에 기댄 초롱길을 바라봤다.
이미 다음 행선지로 결정한 터라 잠시 후 뱀처럼 번뜩이는 호수 둘레길에 서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바라봤을 때 길과 그 주변 전체의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출렁다리 전망데크에 진달래가 외로이 피었다.

 

 

미르309 전망데크만 제대로 출입 가능했고, 여기서 관망되는 초평호와 더불어 그 호반에 걸터앉은 초롱길의 품새와 개통을 기다리는 출렁다리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초롱길로 가는 길은 제법 너르고 오래된 길로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는 데다 경사도가 완만하여 걷기 수월했고, 또한 적막하던 미르숲과 달리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너른 길을 이용해 자유로운 도보 여정을 만끽했다.
걷던 중 호수를 가로지르는 하늘다리는 호반 둘레길인 초롱길의 끝이자 미르309와 연결된 새로운 둘레길의 반환점이기도 했다.

초평호는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에 있는 충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이며, 미호 저수지라고도 한다. 미호천 상류를 가로막아 영농목적으로 만들어진 초평저수지의 외형적 규모는 저수량이 1378 만 톤이며 진천군 관내뿐만 아니라, 멀리 오창, 북일, 북이, 옥산, 강서 등지까지 물을 대고 있다.
저수지 근처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서 초평저수지를 바라볼 수 있는데, 저수지는 전체적으로 굴곡이 심한 ㄹ자 형태를 이루고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저수지를 빙 둘러 나무 데크 산책로가 조성이 되어있고, 일출,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며 전망이 아름다워 드라이브하기에도 좋다.
[출처] 초평저수지_한국관광공사
 

초평저수지> 여행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초평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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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야외음악당에 도착하자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이 반겼다.
발음하기 민망한 봄꽃은 실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땅바닥에 넙쭉 달라붙어 양지바른 곳에 아주 작은 꽃을 틔우지만 이 꽃을 감상하노라면 봄의 상상력으로 인해 작은 꽃 속에 급격히 흡입되어 버렸다.

현대모비스 야외음악당에서 바라본 출렁다리 뷰는 나름 멋지긴 했다.

호반길인 초롱길에 접어들어 호수 위를 걸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초롱길 위를 걸으며 호수의 경관을 읽기에 바빴다.

초롱길은 초평저수지와 농다리에서 머리글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으로, ‘농다리 - 전망데크 - 수변데크 - 하늘다리 - 농암정 - 농다리’ 코스로 짜여 있으며 약 3km,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농다리를 지나면 초롱길인 수변데크가 나타나며, 이 수변데크는 평탄하여 유모차와 휠체어로도 편히 다닐 수 있다. 농암정에 오르면 초평호의 너른 전망이 펼쳐진다.
[출처] 초롱길_한국관광공사
 

초롱길> 여행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초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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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로 가는 또 하나의 고갯길, 호수가 산 내부로 돌출되어 있는 만 형태 끝은 이렇게 화사한 꽃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난해에 비해 초롱길을 걷는 인파는 많지 않았지만 아마도 봄꽃과 함께 봄소식이 늦어진 덕분 아닐까 싶을 만큼 올해 봄의 전령사들은 늑장을 부렸다.

호수 건너편에 데크길은 출렁다리 개통과 맞물려 새롭게 선보이는 호반 둘레길, 미르309의 일환이란다.
그래서 아직은 개통 전이라 둘레길을 이용할 수 없었다.

걷는 길에 온연히 몰입했던지 어느새 까마득하던 하늘다리가 인척으로 다가왔고, 갈림길에서 이번 여정 처음으로 갈등을 했다.
하늘다리를 건너 한반도 지형전망공원이 있는 화산리로 갈 것인가, 아님 지난해처럼 먹뱅이산 능선길로 비교적 급한 오르막길로 향할 것인가.

미르숲을 지나, 정상의 전망대를 넘어, 굽이굽이 작은 오솔길 걷는 재미에 도치된 사이 호수 초롱길은 호반의 걷는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하고, 호수를 사이에 둔 너머 세상은 아롱다롱 산무늬 새겨 하늘 아래 액자가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산길, 도보길을 지나 하늘다리에서 다시 산길로 가는 재미, 물론 다리는 힘들다고, 뱃속은 심심하다고 아우성이지만, 기대로 억누르고, 희열로 달랬다. 

초롱길에 접어들어 첫 갈림길로 산능선이자 붉은 바위의 숲으로 향하는 계단.

호수에 살짝 잠겨 있는 나무에서 갓 틔운 봄의 정령을 만났다.
연둣빛이자 초록의 기원이기도 했다.

 

초평호 초롱길_20230325

용이 꿈틀대는 그림 위에 설 때, 봄이 퍼져 보드라운 향기가 쏟아졌다. 이제 막 터지기 시작한 햇살처럼, 건조한 가운데 파릇하게 내리는 보슬비처럼 그 고운 상상의직물이 신록의 물감으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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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에 젖은 사이 어느새 하늘다리에 도착했다.
초롱길을 이용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다리를 건너 비축된 피로와 한숨을 털어내며, 거기서 반환하여 다시 초롱길로 돌아갔다.

초롱길 끝 하늘다리 맞은편 산으로 향했다.
가파른 길은 이전과 달리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설치되어 조금 불안하긴 했으나, 지난해 기억을 더듬어 조심조심 발을 디디다 뒤돌아 하늘다리를 바라봤다.
멀리 둘레길 출입을 막기 위해 초입에 출입금지 테잎이 몇 겹으로 쳐져 있었고, 생각보다 하늘다리를 건너 작은 매점의 야외 테라스엔 한적한 편이었다.

 

떠 있는 한반도를 찾아서, 초평호_20200211

금강과 그 지류를 통틀어 무주와 함께 가장 멋진 절경을 품을 수 있는 곳이 다음 여행지인 진천에 있었다. 아산에서 수월하게 이동하여 이곳 초평호에 도착하자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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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따라 오르다 작은 쉼터 전망대로 내려가 꿈틀거리며 길게 뻗은 초평호를 바라보자 호수 너머 두타산자락 언저리의 한반도 지형 전망대가 보였다.
4년 전 아산에 이어 찾았던 곳으로 차량 출입이 되지 않는다는 문구에 속아 마을 입구 초평호변에 주차한 뒤 걸어서 올라갔더랬는데 막상 오르는 길에 전망대로 올라가는 차량들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힘이 조금 빠졌지만 다시 돌아가기에 오기가 발동하여 전망대까지 올라갔었다.
다행히 차량 통행이 가능한 포장된 길이라 크게 힘든 건 없었다만 행정의 일관성 결여를 탓해야 하나, 아님 곧이곧대로 믿은 자신을 탓해야 하나.
시간이 지나 일종의 추억으로 미화되어 다행이긴 했다.
또한 여기서 조망되는 초평호는 절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쉼터 전망대에서 다시 산능선을 향해 출발, 짧지만 매우 가파른 철제 계단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다 차오른 숨을 잠시 뱉을 기회가 생겼다.
바위를 딛고 올라야 할 급한 경사길에 제비꽃이 얼굴을 내밀어 반가운 마음에 잠시 감상하기로 했다.

다시 급격한 오르막길을 걸었는데 지난해 경험상 능선까지 오르는 구간은 짧은 거리치곤 가팔라 만만하게 생각하다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될 구간이었다.

두터운 낙엽을 비집고 솟아오른 제비꽃이 등산로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능선까지는 한 땀 빼고 진땀 흘려야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난해와 달리 양갈래 가이드가 설치되어 오르기 조금 수월했다.

가쁜 숨에 허덕일 즈음 드뎌 능선 전망대에 도착.

능선상 가장 높은 먹뱅이산은 우측으로, 지난해처럼 농암정과 살고개 방면은 좌측으로 진행하면 되는데 내려가는 길을 찾아 좌측으로 향했다.

초평호와 미호강 사이 좁은 구간에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산자락 능선길로 내려가던 중 양갈래 두 개의 물길이 모두 조망되었다.
그만큼 이 구간은 초평호와 미호강의 거리가 짧아 빼곡한 나뭇가지 틈바구니로 두 개의 물길이 모두 보였던 것.

능선 따라 내려가다 임도와 교차되는 지점에서 지난해와 반대방향인 농다리의 미호강 방면 임도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가지 않아 높이 솟은 능선에 하늘다리에서 곧장 올라 능선에 도착했던 쉼터 전망대가 보였다.
이렇게 보면 꽤 높아 보였다.
농다리 미르숲-초롱길에 이어 다시 하늘다리 배후 먹뱅이산 능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얕잡아 보면 큰코다치는 능선 쉼터에서 흘린 땀을 털어내고, 비교적 걷기 수월한 능선길 따라 임도 갈림길에 도착.
거기서부터 탄탄한 임도길로 하산하며 숲 구석구석 새겨 넣은 존재와 원래 있던 존재들에 움튼 봄 전령사를 만났다.
꽃은 화려한 꿈을, 신록은 싱그러운 초록의 꿈을, 벌판은 겨울을 떨쳐낼 꿈을, 강은 그런 꿈들이 가득한 들판을 가르는 꿈을 꾼다.
저마다 꿈의 파장은 다르지만 희망과 기대로 귀결되는 꿈이 넘실대는 봄의 정점에서 하루 시간은 씨앗이 되어 만 가지 행복 중 하나로 얼굴 내밀었다.

임도길은 꽤 길었으나, 뿌듯한 내리막이라 힘이 크게 들지 않았다.
그나마 간헐적인 봄을 구경하는 사이 금세 농다리가 있는 미호강에 도착했다.

임도를 따라 미호강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갈림길에서 농다리 방면에 텅 빈 현대모비스 미호천 전망대가 보여 거기로 향했다.
미호강변 작은 절벽 위의 전망대로 의외로 전망이 탁 트여 숨은 명소의 일부였고, 때마침 살랑이는 봄바람에 청량감을 느꼈다.

아마도 다음 지도상 미호천 전망대가 잘못 표기된 게 아닐까 싶었던 게 산중에 미호천 전망대가 있긴 하나 위성지도로 보면 전망대 형체가 전혀 없고, 농다리 건너 미르숲 일대가 현대모비스 주도로 테마가 짜여졌던 만큼 이 자리가 '현대모비스 미호천 전망대'라 표기되어 있으면 기업명을 제외하고 그대로 '미호천 전망대'로 여기면 되는데 일례로 미르숲 내 하위 카테고리의 숲 이름 또한 현대모비스에서 조성했다.
물론 검증한 건 아니고 다른 사례를 비춰 뇌피셜일 뿐.

절벽 위에서 유유히 흐르는 미호강의 넋을 기리듯, 용처럼 꿈틀거리며 이 땅이 가진 모든 잡것들로부터 일대를 보호해 주는 일갈이었다.
더불어 절벽 난간의 위태로운 자리에 강인한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의 자태 또한 예삿내기가 아니었다.

강변 낭떠러지 따라 길이 있어 거기로 걷던 중 작은 진달래 군락지에 서서 강바람에 흥겨운 춤을 추는 진달래와 언제나 바쁜 위영벌이 숨 가쁜 아름다움에 양념이 되었다.

농다리로 향하는 강변 낭떠러지 끝엔 이렇게 전망대 팔각정이 있어 잠시 거기에 올랐다.

멀리 농다리, 가까이 봄신록.
전망대에서 보이는 세상은 전형적인 봄의 정취가 농후했다.
강이 싣고 온 강의 습지에 버드나무 군락이 있었고, 그 버드나무 군락에서 피어나는 신록의 미려한 연둣빛에 잠시 감탄했다.

극단적인 다이내믹을 표현했는데 의도한 게 아닌데도 때마침 구름같이 피어난 버드나무 신록 위로 농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전망대에서 농다리로 가는 길은 이렇게 급경사를 지그재그로 따라 내려가거나 아님 옆으로 크게 우회해서 밑에 보이는 길에 합류해야만 했는데 이미 미르숲에서 정감 어린 이 길에 도치된 터라 이 길을 버릴 수 없었다.
진천 농다리와 미르숲은 규모가 오밀조밀함에도 싫증 나거나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숲의 본질이 되는 나무와 밀도 높은 길의 짜임새 덕분 아니겠나.

내려가는 도중에 이런 바위가 있었다.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쌓아 올린 걸까?
판피린 아씨 같다.
감자 조심하세요~

자로 잰 듯 줄지어 서 있는 나무 한가운데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아득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흥건했다.

강변을 따라 너른 임도로 0.9km 걸어가면 농다리였다.

수많은 여울이 만나 하나의 강이 되어 바다로 향하는 것처럼 오솔길과 임도, 강변길이 합류하여 이렇게 낭만적인 산책로가 농다리로 향했다.
가을이 되면 꽤 이쁜 사진이 나올 수 있겠는데?

초롱길 도중 하얀 꽃길로 짜여진 고갯길은 지층학습원을 지나 이 길로 합류했다.

농다리에 닿기 전 돌다리를 먼저 마주했다.
급 호기심이 생겨 돌다리로 건넜다.

그리 늦은 시간도, 그렇다고 이른 시간도 아니었지만 오후 들어 밀려드는 인파는 의외로 많아 도착했을 당시 여유가 있던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찬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농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진풍경은 도리어 오전보다 오후에 더 진득했었는데 얼마 전 내린 비의 영향으로 강물의 수량이 많아 돌다리 몇 군데는 강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을 정도라 자칫 위험할 수 있었고, 막상 돌다리를 건너다보면 거센 물살이 개거품 나올 수 있겠다.
다행이라면 돌다리의 돌 하나 크기가 보기와 다르게 무척 큰 편이라 슬립만 없다면 무난했고, 줄줄이 밀려드는 인파의 행렬을 뒤로 한 채 이렇게 후련히 즐기고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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