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림은 뻔질나게 이용했어도 치유의 숲은 생애 처음 이용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여름 녹음이 완연한 가운데 부쩍 가을 내음이 선명한 시기에 숲은 가을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자 탁월한 체험이기도 했다.
전날 충주에서 크게 무리하지 않은 이유도 치유의 숲 방문을 염두에 둔 터라 양평 치유의 숲이 있는 양동까지 가는 길에 풍경들 또한 쉽게 지나칠 법한 가을 체득 중 확실한 경험이기도 했다.
진천에서 출발하여 1시간 40여분 동안 이동하며 줄곧 따라오는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가끔 창을 열면 밖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가을 내음에 도착 전부터 기분은 풋풋한 가을에 중독되어 걷잡을 수 없었다.
국립 양평 치유의 숲은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황거길 262-10 삼각산(538m) 남쪽자락에 위치하여, 수도권에서 한 시간 이내의 뛰어난 접근성을 가지고 있으며, 온열치유실, 명상움막, 무인건강관리시스템 등의 다양한 치유시설 및 대상별 전문적인 치유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출처] 양평치유의 숲_한국산림복지진흥원
주차장에서부터 치유의 숲 본관 격인 건강증진센터까지는 뿌듯한 오르막길이긴 해도 100m 정도만 걸어가면 도착했다.
산에 자리 잡은 건물치곤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었는데 내부 시설도 깔끔했고, 치유의 숲에 걸맞게 여러 시설도 눈에 띄었던 데다 벌써부터 숲 내음이 코끝에 진동했다.
날씨가 어찌나 좋은지 가을 날씨 향기와 함께 숲의 향긋한 향취까지 더해져 온몸에 덕지덕지 쌓인 피로가 살랑거리는 바람에 날려가 버렸고, 건강증진센터와 이어진 데크 광장에서 시리도록 청명한 바람과 햇살을 듬뿍 받았다.
건강증진센터와 주차장 사이 작은 숲길이 있어 막연히 걷게 되었는데 어디서 발원했는지 맑디맑은 여울은 특유의 경쾌한 소리에 맞춰 산에서 촘촘히 내려오고 있었다.
길은 그리 길지 않아 건강증진센터 좌측을 돌아 다시 큰길로 합류했고, 그렇게 가벼워진 여세를 몰아 건강증진센터에서 산으로 이어진 방향으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결국 계절의 등에 떠밀려 말끔히 사라졌고, 소원하게만 여겨졌던 단풍도 서서히 가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건강증진센터 옆엔 데크가 깔린 광장을 지나면서 치유 프로그램을 시작, 슬로우드 테라피를 체험하기 위해 데크로 만든 숲길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무장애 데크길은 산 언저리를 돌며 점점 낙엽송이 촘촘히 자라고 있는 숲 속 해먹에서 짧은 명상을 가장한 낮잠을 취했다.
숲 속의 향기와 화음에 누워 있자니 어느 순간 잠들어 버렸고,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15분 정도 흐른 뒤였는데 그 짧은 시간의 명상이 어찌나 달콤했던지!
낙엽송이 꽤 많은 숲길은 특유의 솔향과 더불어 여러 나무가 뿜어낸 그윽한 향취가 뒤섞여 어느 순간 저절로 함박 미소를 품게 되었고, 거기에 맞춰 바다를 펼쳐 놓은 듯한 높고 청명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계절의 해답을 제시해 줬다.
슬로우드 테라피를 끝내고 숲을 한 바퀴 돌아 건강증진센터로 도착한 뒤 다음으로 참여한 프로그램은 편백향기 테라피로 모서리가 둥근 편백칩 풀장에 들어가 온몸을 맡겼다.
프로그램에 너무 몰입하느라 실제 찍은 사진은 거의 없었던 아쉬움은 잊고 편백향이 짙은 풀장에서 간단한 놀이와 명상을 번갈아가며 즐겼다.
또한 건강증진센터에서 허브차와 같은 구수한 향의 차를 마시며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이 났는데 개운함만 챙겨 밖으로 나오자 가을을 증명하듯 고추잠자리 하나가 날아와 데크 난간에 살포시 앉아 가을 햇살을 쪼였다.
어릴 적 회상과 더불어 장난끼가 발동하여 고추잠자리 궁둥짝을 살짝 건들자 녀석은 잠시 유영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안착했고, 그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아 자리를 뜨며 길지만 짧게 여겨졌던 치유의 숲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치유의 숲 일정을 모두 끝내고 349 도로에 합류하기 위해 마을을 지날 때 도로 한가운데 멋진 나무가 있어 정차를 하곤 나무의 자태를 감상했다.
마치 잘 익은 파프리카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란 느티나무는 도로마저 살짝 우회시킬 정도로 범상치 않았는데 아마도 마을에서 오랫동안 보존하며 생을 함께 한 나무가 아닐까 싶었다.
어떤 힘을 지닌 건지 보이지 않았지만 절개와 같은 형체를 보면 마을에서 단순히 위안 이상의 존재로 여겨졌던 게 분명하겠다.
349 도로를 경유하여 양동을 지날 무렵 잠시 마실로 접어들어 양동역을 둘러봤다.
가는 길이 멀어 샅샅이 둘러보진 못했지만 2004년 양평에서 여주로 갈 무렵 간이역과 같았던 양동역을 추억하기 위해 들렀는데 그때와 확연히 다르게 현대식 역사로 변모해 과거 모습은 거의 없었다.
이게 씁쓸하다고 해야 되나? 아님 변화가 낯설다고 해야 되나?
묘한 이질감을 뒤로하고 양동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 정체 구간에 뒤섞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숙명의 일상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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