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장미산성을 계획한 날,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충주에 도착했고, 때마침 고구려 축제가 있어 차량 행렬이 비교적 눈에 띄었다.
광활한 고구려의 의미를 기리듯 청명한 가을하늘은 더할 나위 없었는데 더불어 여정을 즐기기에도 최적의 날씨라 출발 전부터 기분은 공중부양 상태였다.
장미산성은 해발 337.5m인 장미산을 중심으로 계곡을 감싸, 돌로 쌓은 산성이다. 수로 및 육로교통의 요충지이자 삼국시대에 전략적 거점이기도 한 이곳에는 백제시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산성의 원류는 고구려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충주 고구려비’와 관련하여 고구려 세력의 남하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대림산성과 장미산성 내 설명판) 이 성과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의 서쪽 28리에 돌로 쌓은 옛성이 있다.”라 했으며, 「대동여지도」에도 “장미산고성유지(장미산에 오래된 성터가 남아있다)”라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성곽은 다소 훼손된 상태로, 성의 크기는 높은 곳이 5m, 폭은 5~10m이며, 둘레는 2,940m이다.
현재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인근에 있는 산성으로 삼국의 각축지였던 충주에 소재하는 만큼 축조 주체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는 성곽이다. 사적 제400호.
과거에는 고구려 성곽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지만 발굴결과 백제가 가장 먼저 축조했고 이후 고구려가 잠시 점령했다가 신라가 최종적으로 손에 넣었다고 추정한다.
이름에 들어가는 장미(薔薇)는 장미꽃의 장미와 같은 한자이긴 하지만 꽃에서 유래한 이름은 아니고 이 성이 있는 장미산(337m)에서 유래했다. 전설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보련과 장미라고 하는 남매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희생이 되어야 해서 각자 보련산(764m)과 장미산에 성을 쌓는 것으로 내기를 했는데 남동생인 장미가 누나 보련을 이겼다고 한다. 또는 이 산의 형태가 남한강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데 이것이 긴 꼬리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장미산(長尾山)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그랬던 것이 나중에 한자만 장미꽃의 장미로 바뀐 것이다.
[출처] 장미산성_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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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솔밭은 장미산성과 근접해 있는 데다 남한강변의 599도로와 이어져 있어 이어진 차량 행렬에서 떨어져 나와 봉학사에 도착하자 주차된 차량이 없을 정도로 무척 한적했다.
지난번 장미산성 여정이 4년 전이란 게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은 거짓말처럼 흘러버렸고, 게다가 한창 비가 많던 해라 갑자기 몰려든 비구름과 번개로 인해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지 이번엔 단단히 벼르고 벼렸는데 날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잘 잡았다.
장미산성은 자고로 남한강 일대를 관망하기에 좋은 곳인 만큼 산성의 성곽에 오르자 단번에 축제 현장인 목계솔밭까지 훤히 보였다.
성곽 끝에 다다르면 앞으로는 강으로 훤히 트인 자리에 이렇게 벤치까지 설치되어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활동하기 좋아 장미산까지 욕심을 냈고, 카카오맵에선 정확한 길을 유추할 수 없어 일단 산으로 향한 길을 선택하여 걸었다.
도중에 산성의 북편에 있는 목계솔밭 반대편인 남쪽 충주 방면 또한 이렇게 스원하게 트여 있어 눈뿐만 아니라 가슴까지도 뻥 뚫린 기분이었다.
오르막길은 무척 완만하여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사유지의 무덤에 가로막혀 있었고, 때마침 벌초 온 분들께 길을 여쭙자 그분들도 벌초가 아닌 이상 올 일이 없어 길을 몰랐다.
하는 수없이 성곽으로 다시 내려와 봉학사로 되돌아갔다.
성곽길은 지난번처럼 매끈한 잔디가 깔려 있어 산성을 탐방하는 게 아닌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착각이 들었고, 봉학사로 돌아오자 사찰 바로 옆에 산으로 향하는 길이 있어 직감적으로 확신이 들어 그 길로 접어들자 얼마 걷지 않아 풀이 무성한 헬기장과 묘지를 지나 장미산 정상에 도착했다.
장미산성 일대는 한창 문화재 발굴 작업 중이라 곳곳에 파헤친 흔적이 많았지만 길을 막거나 통제 중이 아니라 있는 길을 고스란히 이용하는 데엔 전혀 무리가 없었다.
함께 여정길에 동행한 동반자는 한 덩치 하는 떡대라 오르는 내내 가쁜 숨을 헐떡이긴 했지만 기초 체력이 워낙 좋아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고, 도착해서는 등반 성공의 성취에 도취되었다.
무성한 나무에 가려 조망점이 거의 없던 산길과 달리 정상은 사방 조망도 괜찮은 데다 고원처럼 널찍했고, 이렇게 상수리나무가 사이좋게 공생하는 모습 또한 훈훈했다.
아마도 과거엔 관리에 신경을 썼던지 감시초소도 있긴 했지만 이제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역력했고, 장미산 목판은 쪼개져 상판은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멋진 나무의 군집은 장미산에 오른 노력을 배가시켜 줬고, 사방으로 뻗은 시선은 산성이 들어설 만큼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했다.
따가운 햇살도 가을의 청량감을 꺾을 수 없어 정상 표지석에서 그 기분을 충분히 만끽한 후 천천히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정상 표지석 옆엔 이렇게 한 뿌리에 근간을 둔 나무가 세 줄기로 곧게 뻗어 자랐는데 이 또한 고색창연한 충주의 모습에 어울려 특이하게 자란 나무 또한 충주의 멋과 조화로웠다.
장미산의 여정이 그리 짧은 건 아니었건만 함께 동행한 녀석과의 대화 꽃이 무르익어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는데 장미산으로 오르는 길에 헬기장과 묘지가 있던 자리 또한 충주 방면으로 힘차게 굽이치는 남한강과 함께 강이 만들어놓은 일대 평원도 시원스럽게 조망이 가능했다.
장미산의 남쪽 산자락엔 고구려비 전시관이 있어 우리에게 있어 얼마 남지 않은 고구려의 귀중한 흔적이 있던 자리에 잠시 서서 사라진 번영의 한 때를 가슴에 묻을 수 있었다.
덧붙임)
봉학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냥이 급식소가 있었고, 부근에 있던 치즈냥 하나가 우리를 보곤 산으로 급히 자리를 피했다.
트렁크에서 밥 한 줌 들어 편평한 돌 위에 올려놨는데 녀석은 그걸 못 봤는지 돌아와서도 밥은 그대로 있었고, 녀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자리를 뜬 뒤에라도 녀석이 돌아와 맛난 식사를 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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