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세 평 협곡 간이역, 봉화 승부역_20240309

사려울 2024. 5. 27. 02:06

문명은 시간도 거칠고 세차게 현혹시켰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길들여진 세상과 달리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찾은 승부역은 시간도 더디게 흘렀는지 고순도의 옛 모습을 유지했다.
하늘 아래 세 평 간이역, 승부역에서 요동쳐 철길 따라 소소히 구전되다 길의 유래가 되어 버린 협곡 품 아래 작은 간이역에서 작은 도전과 소박한 출발을 고했다.
더불어 변하지 않아 반가운 것들, 붉은 벽돌 역사와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있는 플랫폼, 그리고 산중 에이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대기실을 정독했다.

승부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이다.
역 인근에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역 이용객은 사실상 전무했으나, 1999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어 신호장에서 보통역으로 다시 승격되었으나 2021년 무인역으로 격하되었다.
현재 영동선을 운행하는 모든 여객열차가 정차한다. 승부역은 역무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역이라 열차 내에서 표를 발권해야 한다.
역명 유래는 옛날 전쟁이 났을 때 승부(勝負)가 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승부마을의 이름을 땄다. 지금은 '부를 잇는다'는 승부(承富)의 한자를 사용하는데, 일설에는 옛날 이곳이 다른 마을보다 잘 살았고 부자마을이라고 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승부역은 오지에 있다고 알려진 역 답게 주변 지형이 매우 험해 자동차로도 접근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춘양면에서 5일장이 서는 5일마다 1회씩 석포면사무소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다닌다. 석포면 방면으로만 도로가 나있다.
역무실에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날인할 수 있다. 승강장에 전시된 수동핸드카는 한국철도공사 선정 철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역 구내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이하 다음 단락)
[출처] 승부역_위키백과
 

승부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승부역(Seungbu station, 承富驛)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이다. 역 인근에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역 이

ko.wikipedia.org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 김찬빈

예전 사진이 있었다니!

과거와 비교해 보면 플랫폼 대기실과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나무는 그대로였다.

하늘 아래 세 평 간이역, 승부역에는 한 뼘 대기실도 건재했다.

회상에 젖은 사이 정차했던 무궁화호는 다음역인 석포로 출발했다.

대기실로 들어오자 휑하던 과거의 모습에 온기가 들어찬 것처럼 따스한 햇살 이상의 시간의 열기가 그득했고, 회상에 젖어 흑백으로 사진을 담았는데 왠지 고유의 질감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대기실 외부로 나와서 남쪽 양원역 방향으로 사진을 한 장 더 담았다.

과거에는 초라했을지언정 현재는 그 어떤 화려한 재료로도 재현할 수 없는 본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당시 폰카 수준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아이폰빠지만 당시엔 삼성빠였던 걸 감안하면, 또한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었던 걸 감안하면 내게 있어 삼성은 세계 최고의 폰이라 세뇌당했던 걸 모르고 그렇게 맹신했었다.

사진은 찍지 않은 부분 중 승부역에서 양원역 방향으로 플랫폼 위를 걷다 보면 철길 너머 인가가 있었는데-지금도 여전히 있다- 그 인가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은 꽤 훈훈했었다.

장작을 이용해 밥 짓는 장면과 연결되어 집 떠나 먼 길을 달려온 내게 그 모습이 어찌나 울컥 부러웠던지.

이렇게 오며 가며 사진을 계속 찍었던 건 세평하늘길로 출발해야 되는데 오랜 공백 사이, 그리고 홀로 힘겹게 찾아간 젊은 날의 짙은 향수가 되살아나 미련으로 배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의 구도가 이와 흡사할 거란 예상이 어느 정도 적중했다.

아직 사진이 남아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우연히 백업용 하드디스크를 연결하자 사진이 남아있을 줄이야.

이건 도리어 현대적인 간판에서 과거로 회귀했다.

철도기념물인 수동핸드카가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엔 구시대 유물로 남아 있겠지만 그 현대를 지탱하는 과거의 견고한 유물 중 하나.

협곡 특성상 하늘이 좁아져 비유적으로 '하늘도 세평'이었고, 화강암에 사람 모형의 오목한 틀에 몸을 거치하면 협곡으로 인해 좁아진 하늘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둘러봤을 때 시각은 오후 2시반 가까이 접어들었고, 양원역까지 대략적인 시간을 유추할 수 있었으나, 행여 가던 중 길이 유실되어 돌아와야 될 상황에서 시간이 늦어지면 난감한 상황이라 하는 수 없이 서둘러 세평하늘길로 떠났다.

세평하늘길은 플랫폼에서 철길을 건너 낙동강으로 내려가는 작은 철문을 지나 강을 건너지 않고 강변길을 따라가면 되도록 이정표가 있었고, 함께 승부역에 내렸던 사람들은 모두 세평하늘숲 방향으로 사라져 걸음을 재촉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