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겨울의 창대한 밀림 속에서, 태백 함백산, 창옥봉과 만항재_20240124

사려울 2024. 4. 21. 19:45

발왕산의 설경은 지형적인 특성이 그대로 용해되어 장쾌하고 하늘과 적재적소에서 어울린다면 태백의 설경은 정형화된 게 없이 야생의 밀도가 높고 여백 사이로 섬세하게 터치하여 한 올 한 올 자수를 놓았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어디가 상대적으로 좋고 나쁨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정의한 거라 두 곳 모두 놓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발왕산은 홀로 우뚝 선 마냥 시선의 반은 하늘이었고, 그래서 솟구치고 도드라진 느낌이 동행했었는데 함백산은 지형적으로 발왕산과 달리 일대가 거의 비슷한 고봉들이 산재해 있어 설경의 밀림 속에 은둔한 느낌이었다.
무심히 지나는 한 조각구름조차 원래부터 있던 자리처럼 제 소향에 맞춰 춤을 췄고, 아주 가끔 마주치던 사람이 지나간 자리엔 공백의 정적도 제 역할인 양 막연히 머물고 얼어붙은 눈이 아닌 존재의 가치가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
하얀 집념은 그 날카롭던 첨탑을 보얗게 담금질하며, 건조한 가지에 역동의 미각을 적셔 모든 존재가 얼어붙을지언정 심장이 부여된 듯 생명의 의지가 얽히고설켜 겨울 속 포근함을 역설했다.
그토록 손끝을 에위던 추위는 깊게 졸고, 증발했던 은은한 체온은 아이 눈동자처럼 총총히 다가와 미소를 데웠던, 사유조차 하얗게 채색되던 순간들이었다.

함백산은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에 있는 해발 1,573m의 산으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대한민국 남한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다. 태백산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는데 구역 내 봉우리들 중 최고봉으로 태백산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높이는 태백산보다 6m 높다.
함백산에서 북동쪽은 매봉산(1,303m), 북쪽은 금대봉(1,418m)과 대덕산(1,307m), 서쪽은 백운산(1,426m), 서남쪽은 장산(1,409m), 남쪽은 태백산(1,567m), 동쪽은 연화산(1,171m)이 솟아 있다.
[출처] 함백산_위키백과
 

눈꽃들만의 세상, 함백산_20151128

기대했던 일들에 반하여 아쉬움도 크다면 떨칠 수 있는 노력은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사북 하늘길이 막혀 버려 검룡소를 가게 되었는데 예상외로 멋진 눈꽃 세상을 보게 되어 내 마음 속의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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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환생한 겨울 왕국, 함백산_20200412

엘사의 마법이 발휘된 걸까?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내려 순식간에 하얀 세상이 펼쳐져 겨울의 집착적인 미련을 실감케 했다. 서둘러 사람들이 떠나 세상은 텅 빈 듯 눈처럼 쌓인 적막과 두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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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초입에 도착하자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차량을 몰고 와 주차할 곳이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 다시 뒤돌아가 함백산 초입에서 선수촌으로 가는 방향 길가 주차장에 차량 1대 공간이 있어 잽싸게 주차를 한 뒤 태백산 백단사로 이어지는 좁은 길의 멋진 설경이 눈에 띄어 무작정 그 길에 합류했다.

게다가 우거진 수풀로 녹음이 짙어지면 엄두도 못 낼 텐데 단체로 온 사람들의 마지막 후발 주자의 꼬리가 보여 그래도 겨울이 내어준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게 겨울의 매력이기도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젠은 끼지 않고 백팩에 넣어뒀는데 내린 눈이 발자국으로 얼지 않아 딱히 미끄럽진 않았다.

15년 초겨울에 무심코 찾았다 하얀 설경처럼 순수한 매력을 잊지 않고 기어이 다시 찾았은 함백산자락은 당시 원시적인 설경 또한 명징하게 회상되었고, 함백산의 멋진 위용은 여전했다.

일련의 무리들 중 대부분의 무리는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갔고, 몇몇 사람들은 백련사 방면으로 내려갔는데 태백산까지의 거리가 만만찮기도 했고, 스패츠 같은 겨울 산행의 필수 장비가 없어 나 또한 왔던 함백산 초입 방면으로 내려갔다.

함백산 초입에서 15년에 걸었던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설경에 취했는데 당시 회상도 오버랩되어 감명의 역치는 애시당초 뛰어넘은 지 오래전이었다.

멀리 한 무리 구름과 도로 끝이 뒤섞여 환상의 세계로 빨려드는 것 같아 설경의 멋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항재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 위 소복한 눈길을 밟으며 길가 화려한 설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발을 디뎠다.

때마침 하늘도 심연의 바다를 보는 듯 대기가 청명한 건 복 중에 행복이었고, 운 중에 행운이었다.

가지 끝에 축 늘어질 만큼 토실토실하게 익은 눈꽃 상고대 열매가 매우 풍성했다.

하늘에 모세혈관처럼 촘촘히 뻗은 하얀 꽃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가 아닌 훤칠한 나무들이어서 하늘의 일부로 여겨졌다.

어느새 뒤돌아보면 함백산은 모습만 달리 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그 모습은 미련한 게 아닌 믿음직한 뚝심이었다.

창옥봉으로 향하는 길목의 작은 공터는 잊었다고 여긴 2015년 겨울의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상기시킬 만큼 평범을 뒤집어 인상적이었다.

때마침 얼핏 지나가는 사람들의 궤적을 밟고 여기서부터 창옥봉으로 이어진 오솔길에 합류했다.

겨울 정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설경에서 작은 환영을 읽었고, 무성하게 뒤엉킨 하얀 가지에서 겨울을 읽었다.

겨울로 인한 특별한 존재가 되어 감동을 줬다.

점령한 상고대로 인해 철탑이자 첨탑의 시리도록 건조한 악연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미려한 나침반이 되었다.

겨울의 왕성한 감염력은 이런 하찮은 피조물조차 특별하게 만들어 버리는 엘사였다.

극도로 시린 하늘에 하얀 혈관을 수혈하여 모든 하얀 존재들에게 생명을 부여했다.

여전히 한파의 위력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던 데다 높은 고도에 도사리고 있던 추위를 하얗게 잊은 채 앞으로 만날 존재들을 기대했다.

창옥봉으로 향하는 길은 완만하여 힘들다는 잡념은 전혀 들지 않았고,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끝끝내 겨울에 도치되어 버렸다.

띄엄띄엄 지나는 사람들을 따라 걷다 문득 왔던 길을 되돌아보자 안심의 산신령인 함백산이 든든히 자리를 지키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낯선 길을 걷는데도 의혹이나 의심이 추호도 들지 않았다.

하얀 혈관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곳을 지나 모처럼 뻥 뚫린 한 뼘 하늘을 만났다.

창옥봉 정상도 잊고 계속 걸었는데 거기를 지났는지 아니면 다다른 건지 전혀 기억에도 없을 만큼 난 이 길에 엄청난 몰입을 했었나 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걷다 이정표를 만났는데 사념에 조각된 기억은 함백산 초입에서 한참 걸어온 것 같았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이 길 따라 모든 긴장을 내려놓은 덕분 아니겠나.

눈이 자욱하게 덮인 산길에 나무들은 길에 가지런히 서서 길 위에 눈꽃 터널을 만들었다.

여긴 창옥봉을 지난 지점이 확실했고, 여기서부터 만항재로 가는 내리막길에 간헐적으로 만항재 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서 처음으로 비교적 가파른 내리막길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올라오던 분들께 길 컨디션을 묻자 그리 긴 코스는 아니지만 아이젠은 꼭 착용하길 권장받아 부랴부랴 아이젠을 착용했다.

결론적으로 그분들 말씀 듣길 잘했스~ 

만항재 너머 선풍기 능선 따라 길게 뻗은 산줄기가 그야말로 절경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저 산줄기 하늘 맞닿은 산이 백운산이었고, 보이지 않지만 그 줄기를 따라가면 두위봉도 있겠다.

지금까지와 완연히 다른 가파른 내리막길-물론 창옥봉 기준이며 객관적으로 따지면 그리 가파른 길은 아니다-을 지나자 이내 완만해졌고, 어디선가 함박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는데 그 웃음소리의 진원지는 보이지 않았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는데 조금 더 내려오자 숲 속에 몇 무리 사람들이 목격되었다.

창옥봉에서 만항재 가까이 내려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하늘 아래 까마득히 펼쳐진 설경 고지가 환상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만항재에 거의 도착했다.

가지가 앙상한 나무와 소나무는 제각각 그대로의 하얀 아름다움이 고유명사처럼 선명했다.

만항재 아래에 도착하여 공원으로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고, 초입에 우람한 시비가 놓여 있었다.

함백산 시비 - 곡죽 최인수

함백 산하 만첩봉은 여명에
운무 이불 허리 덮고

검푸른 봉 머리 모아 아직도 단잠인데
동트며 솟는 햇님 찬란한 아침 햇살

이곳 먼저 비추시니 이것이 일백이요

한나절 햇님이고 스르르 낮잠들면 하늘에서 놀던 구름
소리없이 내려와서 잠든 함백 휘감으니

이것이 일백이요

햇님 종일토록 세상만물 생성 타가
함지에 드시면서 거룩하신 큰빛노을 다시 함백 밝게
하니 이 아니 일백이며

햇님들고 어스름에 행여 이곳 어둘세라 달님 서둘러서
은하수에 세수하고 맑게 밝게 웃으시며
여기 먼저 오시니, 이 또한 일백인데

억겁토록 세인들은 크고 밝은 이곳 일러
함백산이라 불렀더라

함백산 찬양글에서 알 수 있듯 함백의 위대함은 비단 겨울뿐만 아니었다.

이제는 익숙한 공원에 들어가 성큼성큼 걸으며 초입 전나무숲을 지났다.

하늘로 길게 뻗은 전나무 작은 가지마다 두터운 상고대가 쌓여 가을의 갈색 이파리가 떨어지고 새로 맺힌 겨울꽃으로 계절을 관통한 영속적인 삶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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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여기 찾은 이래 가을이나 겨울이면 꽤 괜찮아 지나는 길에 들르게 되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작은 소공연장의 조형물도 겨울 담장 안에서는 낡은 기색을 감췄다.

길이 그어진 대로 만항재 방향으로 걷자 공원의 너른 광장 같은 곳이 눈밭으로 바뀌며 하얗게 단장한 함백산의 위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만항재 바로 아래 지점까지 걷자 하늘 향해 일렬로 늘어선 전나무숲이 나왔고, 그 사이로 함백산의 눈부신 위용이 드러났다.

일렬로 늘어선 전나무숲 사이로 겨울을 즐기는 발자국이 깊게 찍혀 어디론가 흩어졌다.

옷과 신발이 젖는 것도 모른 채 무릎까지 쌓인 눈밭에 서서 이 모습을 감상했다.

멀리 함백산 등성이 위로 짙고 선명한 구름이 바삐 흘러가며 그림자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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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행님, 잘 계셨더래요~

만항재 표지석으로 올라오자 꽤 많은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들어오는 차량도, 떠나는 차량도 심심찮게 많았다.

이 모습을 끝으로 만항재를 출발하여 작은 도로를 따라 차량이 주차된 함백산 초입으로 걸었다.

짙고 파란 하늘에 눈꽃 봉오리가 탐스럽게 열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태백에서 작은 동산은 1천m가 훌쩍 넘는 데다 함백산과 1,330m에 달하는 만항재 인근 나지막한 언덕조차 1,300m를 가볍게 넘겼다.
그래서 아이젠은 챙겼지만 백팩에 넣어두고 굳이 끄집어내어 착용할 만큼 가파르거나 위험한 곳이 없었는데 만항재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 만난 분들이 짧은 구간이나마 장착해야 된단다.
슬립에 대한 신경을 적게 쓰다 보니 눈꽃과 상고대를 더욱 진득하게 감상할 수 있어 역시 눈길에선 가급적 아이젠은 필수품이라 여겨야 되겠다.
함백의 겨울 속에서 파란 하늘을 뚫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살은 하얀 세상을 굴절시켜 인간이 가진 모든 오감을 따스하게 녹였고, 또한 그 자극된 오감은 시간을 멈추고 세상에 흘러가는 것들을 멈추며 머문 것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는 깊게 잠든 행복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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