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한국의 작은 알프스, 태백과 삼척 건의령_20240124

사려울 2024. 4. 21. 22:31

가슴을 한껏 펼쳐 서서히 움켜쥐면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 안에 들어온다.

건의령, 여기선 그게 가능하다.

함백산에 이어 찾아간 곳은 건의령으로 태백 시내를 지나 검룡소가 가는 방향과 똑같았고, 다만 검룡소는 35번 국도를 타고 삼수령을 넘어 삼수동으로 빠져야만 했는데 건의령은 계속 35번 국도를 경유하다 상사미교차로에서 우측의 뿌듯한 오르막 지선인 424 도로를 타면 바로 우측의 장벽 같은 산의 고갯길이 건의령이었다.

가는 길에 폭설의 영향인지 아니면 공사 중인지 삼수령길은 통제 중이라 옛 고갯길로 우회했고, 대체적으로 태백의 제설이 늘 한발 앞서긴 해도 한파로 인해 도로가 쪽의 빙판 자국을 상기시킨다면 평소에 비해 시간은 좀 더 소요됐다.

터널을 지나기 전에 건의령으로 갈 경우 체력적인 자신감이 충만하고 앞서 함백산 일대 설경 여정을 하지 않았다면 걸어서 갈 수도 있겠지만 건의령은 그 자체로 유명하다기 보단 건의령에서 보이는 탁 트인 절경이 일품인지라 424 도로를 따라가다 터널을 지나면 비로소 건의령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터널을 지나 약 1km 정도 진행했지만 마땅히 차량 주차할 장소가 없어 다시 터널로 거슬러 올라와 터널 부근 교차로 도로가에 여유가 있어 거기에 주차한 뒤 거기와 연결된 차선이 없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다.

지도상으로 424 도로는 35번 국도와 태백-도계-삼척을 연결하는 38번 국도를 연결하는 지선이었는데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으로 넘어올 때 도계를 지나 통리까지 구간은 직선화 공사 중이라 완전 개통되면 424 도로는 더 한적해지겠지?

멀리 삼척 방향에 장벽 같은 산세를 보자니 알프스가 언뜻 떠올랐다.

굵직한 근육질의 산세가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뻗어있었고, 그 근육질에 서린 하얀색은 절경을 극대화 시켰다.

길은 낮은 지형으로 향하는 직선의 길이 아닌 산허리를 굽이쳐 크게 돌며 내려가는 길이라 온전히 걷기엔 무리였던 데다 시각은 오후 3시를 훌쩍 지나 4시가 가까워 조금 걷다 돌아가기로 했다.

바로 아래 눈이 덮여 희미한 길을 가려면 두텁게 쌓인 눈을 뚫고 가거나 길 따라 크게 돌아가야 되는데 그마저 쉽지 않았다.

하나의 모퉁이를 돌자 건의령 아래 펼쳐진 세상은 더욱 넓어졌다.

해가 기우는 방향에 매봉산 풍력발전소들이 보였는데 이렇게 보아하니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허나 해가 많이 기운 상태라 하루 시간이 넉넉치 않아 걷는 속도를 조금 올렸다.

걷던 중 바로 옆에 진정한 건의령 옛 고갯길이 눈에 띄어 첫 발을 들였는데 눈밭이 무릎까지 집어삼켜 얼른 발을 빼고 가던 길로 걷기로 했다.-실제 지도상에 표기된 건의령이 바로 요 지점이기도 했다-

여긴 눈이 녹아 봄이나 가을에 오면 넉넉하게 계획을 잡아야 되겠다.

실제 건의령 우측엔 성황당인지 몰라도 작은 암자 같은 게 하나 있었는데 산신각이었나?

해가 비교적 기운 상태라 약간 어두침침해서 으슥하기도 했다.

지도상으로 길은 우측 오르막길로 해서 오르게 되어 있었는데 조금 오르면 지나왔었던 건의령터널 위로 지났고, 계속 진행하게 될 경우 그 능선 따라 1천m가 넘는 언덕을 넘어 한내령을 지나 구부시령, 덕항산, 대이리 군립공원으로 연결되었다.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구간이었으나, 이번엔 패쑤~

너른 분지 지형의 공간 너머 멀리 펼쳐진 산줄기에 겨울이 내려앉은 경관이 장관이었다.

좌측 언덕배기 허리를 지나는 도로는 이용했던 424 도로인데 얼마 걷지 않았는데 까마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시선을 조금 더 남동쪽으로 돌려도 까마득하게 높은 산줄기가 펼쳐져 있었다.

걷고 있던 도로의 고도가 800m가 넘는 점을 감안한다면 멀리 보이는 높은 산세는 1천m를 훌쩍 넘길만했고, 그런 산세가 사방으로 막고 있으니 확실히 강원도 답긴 했다.

아쉬운 점은 오후 들어 대기가 약간 뿌옇게 변했는데 청명했더라면 절경의 민낯을 볼 수도 있었겠다.

유추해 보건데 남쪽 방향의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연화산, 대조봉, 백병산 등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다 문득 머리 위를 올려다봤더니 나무 한 그루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래 바위가 있어 마치 신성시할만한 나무? 같았다.

어느 정도 걷다 돌아서기 전, 눈에 띄는 스팟이 있었다.

능선에 오똑 선 나무로 여기를 갈려면 가던 길 따라 한참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최대한 당겨 찍은 뒤 주차된 곳으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거대한 언덕의 경작지에 우뚝 서 있는 모습에서 일대를 지키는 파수꾼이 아니었나 싶었다.-너무 민속적인 부분으로 생각했나?-

알프스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다이내믹 모드를 활성화시켜 셔터를 다시 눌렀다.

앞서 지나왔던 건의령을 지나 주차된 424 지방로에 거의 접근했을 무렵 갈 때 놓쳤던 모습이 포착되었다.

얼마나 눈이 왔으면 가지가 활처럼 휘었을까?

실제 제설이 되지 않은 길가에 쌓인 눈 깊이가 무릎을 집어 삼키고도 남았으니 내렸던 적설량을 어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로써 건의령 일대 짧은 여정을 접고 곧장 태백의 장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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