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한파도 개의치 않는 태백의 포근한 정취, 철암_20240125

사려울 2024. 4. 23. 00:11

원래 연화산 둘레길을 걷는 계획으로 연화산유원지를 찾았지만 제법 쌓인 눈이 두터워 초입에 주차한 뒤 유원지 내부로 걸었고, 이내 신발이 젖어 계획을 수정했다.
때마침 웹으로 회사 전산에 접속해야 될 일이 있어 겸사겸사 도서관을 찾던 중 꽤 많은 도서관 중 철암도서관에 전화 문의를 드리자 외지인도 이용 가능한 데다 심지어 와이파이도 짱짱하다는 말씀에 철암 여정으로 급히 우회했다.
도서관으로 가기 전에 햇살이 넘치는 마을 거리를 배회하며 시간의 단맛, 그리고 추억의 주마등을 회상하는 사이 거리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겸허히 받들어 비슷한 듯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하나씩 만났다.
햇살 아래 한가로이 일광을 즐기는 냥이들, 산허리 구부정 오르는 길, 그리고 그 아래 보이는 것들과 실제 만나는 것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에 하루 시간도 그리 넉넉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천천히 정독하며 귀를 기울였다.

숙소에서 나와 스키장이 보이는 주차장 반대편 광장으로 걸어가자 발이 푹푹 빠져 발목까지 홀라당 집어 삼켰다.
매서운 한파로 어떤 쪽은 단단히 얼어 있어 발이 빠지지 않았고, 반대로 어떤 쪽은 적게 얼었는지 걷다 보면 발이 쑥 들어가 버렸다.
출발 전부터 신발에 눈이 들어가 버려 발에 물기가 조금씩 느껴졌지만 다시 숙소로 들어가면 늦어지고, 밍기적거려 그대로 차를 타고 숙소를 벗어났다.
신기한 건 스키장을 정상 운영 중이었는데 앞서 용평리조트와 달리 이용객은 거의 없어 도리어 스키 즐기기엔 더 좋았겠다.

연화산 둘레길을 걷기 위해 연화산 유원지로 갔지만 차량 진입이 힘들어 초입에 주차한 뒤 유원지로 진입을 했었다.
그런데 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쌓인 눈은 발목보다 더 깊어 하는 수없이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회사 전산에 접속할 일이 생겨 도서관을 검색하자 꽤 많은 도서관이 검색되었고, 그중 철암도서관에 전화 문의를 드리자 외지인도 이용 가능하단다.
감사 인사 드리며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전화받으신 분이 와이파이도 짱짱하다고 하시어 이참에 철암 여정으로 노선을 급변경했다.
다만 노트북을 갖고 오지 않아 다시 숙소로 향하는데 거의 절벽과도 같은 산 위에 숙소가 보였고, 이런 걸 보면 인간도 가끔 위대할 때가 있구나 싶었다.
저 모습 은근 멋지긴 했다.

철암에 도착하자 주차할 곳은 넘쳐났다.
주저할 틈 없이 육성아파트 노상의 너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두터운 패딩으로 갈아입은 뒤 지난번 눈여겨봐 둔 철길 넘어 삼방교 건너 언덕의 전망대로 향했다.
이따금 지나는 사람들, 과분할 정도의 따사로운 햇살, 한파가 여전하지만 처음과 달리 하루가 지날수록 예봉은 꺾여 있어 상대적으로 포근하게 느껴졌고, 전체적으로 조용했지만 평온으로 인지되었다.

마을 전망대로 가던 중 한적하게 햇살 아래 일광을 즐기는 냥이들이 보였다.
’뇬석들아, 좀 있다 다시 보자~‘

전망대로 가는 길이 완만한 오르막길이었고, 길 양옆 민가는 그 길을 통해 바로 진입할 수 없이 다른 길을 이용해야 되거나 그 길로 가다 갈림길로 우회해서 집으로 진입할 수 있어 자연히 길보다 고도가 낮은 집은 이렇게 지붕이 나지막이 보였는데 하얗게 내린 눈에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선명한 냥이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전망대 도착.
태백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저렇게 태백의 이미지와 정겨운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건데 여기도 어김없이 다가온 사람들을 맞이했다.
친근하게 재해석한 광부와 아이가 만나 함께 서 있는 장면에서 가족의 애틋함과 동시에 퇴근하기 전까지 기다림 속의 가슴 조임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유독 나뿐만 아닐 터.

전망대에서 보이는 광경 또한 걸작이었다.
물론 천혜절경이나 멋진 구조물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게 대수롭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지역만의 색깔이 제대로 구현된 게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여기는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이 지역 색채가 하나씩 배치되어 보기에도 경계선이 분명했다.
산골의 청명한 하늘 아래 강원도를 대표하는 거대한 산세, 그 산허리에 땅을 헤집어 탄광과 선탄시설이 있었고, 그 선탄을 나르는 철도역과 빼곡한 선로, 도로를 건너 귀갓길 광부들이 하루의 긴장을 털어놓고 술잔을 기울이거나 허기진 속을 달래는 식당들, 그리고 그 식당가 뒤켠에 하천.
어쩌면 난 이 전경에서 오늘의 감탄사를 모두 써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고개를 좌측 방향인 남쪽으로 돌리면 탄광역사촌이 인척 발치에 있었고, 그 너머 사람들이 오고 가는 철암역도 보였다.

 

'가행탄광 체험 마지막 기회'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투어 진행

태백에서 오는 6월말 폐광하는 가행탄광을 마지막으로 체험할 수 있는 투어가 진행되는 등 관광객 유치활동이 본격화된다. 시는 국내 최대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둔 6월까

v.daum.net

철암역 선탄시설은 별도 예약할 경우 체험투어가 가능했다.-정식명칭은 ‘철암역두 선탄시설 투어’였고, 뒤늦게 오는 6월 말 폐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너머 1천m가 훌쩍 넘는 산과 그 산을 넘으면 전날 초저녁 여정을 즐겼던 장성동이 있었다.

충분히 멋진 걸작을 즐기고 전망대에서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낙동강이 되는 철암천을 끼고 탄광마을의 정취가 커피향처럼 진득했고, 그 진득한 잔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좀 더 내려와 전망대와 전망대에서 철암천 건너까지 훑어봤다.
좌측부터 철암역 선탄시설, 철암탄광역사촌, 로컬푸드샵, 철암천, 그리고 좀 전 머물렀던 전망대와 함께 마을이 보였다.

짧은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편평한 광장 같은 터에 공원이 있었고, 거기서 철암천을 건너면 탄광역사촌을 비롯하여 도로와 철암역이 있었다.
공원 내엔 갱도와 함께 탄광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재현시켜 놨는데 이렇게 갱도를 재현한 조형물은 멋졌다.
철암천을 조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뚫어 놓은 건 누구 아이디어길래 이렇게 번뜩이게 만들어놨을까?

공원에서 신설교를 이용하여 철암천을 건너 탄광역사촌으로 향했다.
워째 하늘이 티끌 하나 없이 맑더래요~

신설교에서 지나는 사람들을 일일이 환영해 주는 눈사람 커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아주 귀여운 멋진 폭포빙벽을 만들었다.

탄광역사촌에 가장 상징적인, 아이를 들쳐업고 남편을 마중 나온 엄마, 또는 일터로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일 수 있겠다.

이 모습은 왠지 흑백으로 남기는 편이 낫겠다.

다시 공원으로 건너갔다.
산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생수터가 있어 물 한 모금의 알싸한 기분 또한 필수 경로였기 때문이었다.

 

태백의 일기, 철암_20221109

그리 긴 세월의 향연도, 그리 머나먼 과거도 아닌데 까마득한 건 망각의 영역에 방치한 기억의 단절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고, 더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허나 옛 정취는 모두 자물쇠가 물

meta-roid.tistory.com

이어 철암역으로 이동, 대합실은 무척 깨끗했다.

일반 열차가 점점 영역을 잃어가는 가운데 관광열차가 빈자리를 꿰차고 차량으로 불가능한 오지를 오갔다.
예상보다 편수가 많아 다음에 큰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겠다.

철암역 플랫폼으로 올라와 주변을 둘러봤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열차는 이제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철암역 주차장에 관광버스와 다른 차량들이 종종 오고 가며 싣고 온 사람들은 철암역으로 우르르 들어섰다 이내 열차를 탔고, 다시 텅 빈 역사로 남았다.
어느 누군가는 철암에 삶의 뿌리가 있어서, 또 다른 어느 누군가는 우리나라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철암역에 왔을 터, 유난히 인적의 소음이 반갑게 들렸다.

철암역 플랫폼에 정성을 들여 방문자를 환영했다.
실제 협곡으로 지정된 구간을 운행하는 관광열차는 철암-승부-양원-분천만 운행했고, 열차의 종류도 V-train에서 하나 더 늘어나 강릉과 분천을 오고 가는 동해산타열차가 추가되었다.

선로에도 온통 눈밭이었다.
과거 영화를 말하듯 철암역은 꽤 넓었다.

철암역 이야기
1936년, 단일탄광으로는 국내 최대규모인 장성탄전의 석탄이 철암으로 운반되어 오면서 이 지역에 본격적인 탄광사회가 형성된다. 1940년 9월 영업을 시작한 철암역이 바로 이 탄광사회의 중심이었다. 철도가 없는 장성에서 생산된 석탄이 철암역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역의 위상은 대단했다. 당시 강릉역 역무원이 28명이던 80년대, 철암역에서 근무하는 역무원이 300여 명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추진에 따라 활력을 잃어가던 철암역은 2013년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운행과 2014년 문을 연 철암탄광역사촌과 더불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철암 관광 안내도.

여긴 병맛 안내소.
지난 방문 때 첫인상에서부터 정나미가 똑! 떨어졌었다.

철암역을 나와 탄광역사촌으로 향했다.

지난번엔 좀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었는데 이번엔 일부 개방되어 내부도 둘러봤다.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외상으로 과일이나 좀 사갈까?

아이들을 설레게 했던 오락기는 익숙한 전자음이 들릴 것만 같았다.

아리랑은 늘 구슬프다.

태백아리랑
불원천리 장성땅에 돈벌러 왔다가_꽃같은 요내 청춘 탄광에서 늙네
작년간다 올해간다 석삼년이 지나고_내년간다 후년간다 열두해가 지났네
남양군도 검둥이나 얼굴이나 검다지_황지장성 사는 사람 얼굴 옷이다 검네
통리고개 송애재는 자물쇠고 개인가_돈벌러 들어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네
문어낙지 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_이내몸 목구멍에는 검은 가래가 끓네

어느 광부의 노래가 마치 여느 광부의 노래 같았다.

철암마을을 재현한 부분도 있었다.

이 스위치는 좁고 가파른 계단에 붙어 있었는데 의도인지 아니면 간과인지 모르겠지만 꼭 사진으로 남겨야 될 비주얼이었다.

이렇게 구경하는 사이 옥상에 올랐고, 앞서 들렀던 철암천 너머 마을 전망대가 훤히 보였다.
한 건물 옥상에 올라 옆 건물 옥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동한 건물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이동한 건물은 삶의 뿌리를 두고 사시던 분들이 알흠알흠 찍어놓은 사진을 전시한 갤러리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정말로 주옥같은 사진들이 꽤 많았다.
탄광역사촌에서 가장 주옥같은 공간이라 한참 감상에 젖었는데 유년기 탄광과 전혀 관련 없었음에도 이 정겨움이란…

가장 관심이 쏠렸고, 세세히 감상한 작품으로 버스에서 내려 다시 힘든 일상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이미 술판을 벌여 일상에 젖은 사람들 표정이 대비되었다.

이분 작품도 대체적으로 흥미로웠다.

상가 건물 내부는 생각보다 넓어 이런 공간도 있었다.
늘어선 책상, 의자와 작은 무대가 있었는데 아마도 독서 토론회 같은 이벤트를 여는 곳 아닌가 싶었다.

여긴 성업 중으로 굴뚝이 그걸 말해주었고, 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또한 그랬다.

탄광역사촌 옆 로컬푸드샵은 모두 성업 중으로 뭘 먹어야 되나 고민하다 결국 여기를 지나 주유소 옆 오래된 반점에서 자장면을 먹었고, 생각보다 꽤 괜춘했다.

로컬푸드샵을 지나 다시 전망대 방향으로 걸었다.
앞서 만난 마을 냥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고, 다행히 어느 순간부터 필수품 항목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츄르와 밥이 있어 녀석들의 경계심이 관건이었다.

바로 옆 민가에서 거둬주시는 마을냥이들은 앞서 전망대로 가는 길에 양지바른 마루 위에서 일광을 즐기고 있었다.
이제는 필수품이 되어 버린 대형 츄르를 가져와 녀석들을 부르자 몇 녀석이 다가와 처음엔 거리를 두다 이내 츄르맛에 뿅 가서 녹아내렸다.
어린 냥이 3 녀석-카오스, 삼색, 태비-과 어미 카오스, 그리고 청년 뻘 되는 치즈가 온몸을 비비며 좋아하는 모습이 무척 재밌었다.
어린 태비는 얌전한데 과감했고, 삼색이는 적당한 경계심과 친근함이 버무려져 매너 있었고, 카오스는 욕심쟁이였다.
그래서 태비는 먹을 만큼 먹고 순서를 기다린 뒤 다시 달라고 보챘고, 삼색이는 따라다니며 먹었지만 보채는 건 없었고, 카오스는 츄르 잡은 손까지 끌어내리면서까지 독차지할 기세였다.
어미도 이번만큼은 아이들에게 양보하기 싫은지 얼굴을 들이밀었는데 그래도 어느 하나 욕심부리며 위협하지 않았다.
나중엔 어린 태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무릎 위에까지 뛰어올라 카메라를 연신 살폈다.
한파의 기세가 여전한 산골이라 에위는 추위가 있었지만 워낙 햇살도 좋아 넘치는 햇살만큼 유희도 넘치는 순간이었다.

인물이 출중한 카오스가 어린 냥들의 어미란다.

그래서 처음 츄르를 줬을 때 낯가림 없는 요 녀석이 가장 먼저 접근해 맛나게 먹다가 조금 경계심이 있던 어린 냥들이 츄르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부터 한 걸음 뒤로 빠져서 있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면 적극적이고 힘이 센 녀석이 독식할 수 있어 일부러 츄르를 줄 때 녀석들에게 조금씩 배분해서 주게 되었고, 카오스 어미는 꼭 빠뜨리지 않았다.

어린 냥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츄르에 집착하는 카오스 녀석은 손까지 끌어당기면서 츄르를 독식하려 했는데 그럴 땐 일부러 손을 빼서 다른 녀석들에게도 한 입씩 줬었다.

그래도 이리 귀여운데 안 줄 수 없잖아.

적당히 집착하면서도 매너 있는 삼색 카오스도 츄르를 먹겠다고 달려들었지만 앞서 카오스처럼 손을 끌어당기지는 않아 카오스와 비슷한 비율로 조절해서 줬었다.

사진과 달리 실제 보면 어찌나 귀여운지.

잠시 물러섰다 다시 돌격하는 두 카오스 자매.

카오스가 어찌나 적극적으로 달려드는지 그러다 목에 걸린 카메라 렌즈에도 호기심을 보였다.

렌즈에 바짝 얼굴을 들이미는 바람에 초점이 전혀 맞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런 사진 넘 재밌다.

이렇게 제대로 보면 귀여운 얼굴을 가진 어린 카오스였다.

그러고 보면 어린 태비가 하나 있었는데 그 녀석은 적당히 경계심이 있었음에도 츄르맛을 본 뒤 다가왔다 멀어졌다, 밀당을 반복하는 바람에 클로즈업된 사진이 없었다.

그 녀석은 심지어 츄르를 준다고 쪼그리고 앉은 내 무릎 위에도 올라왔었다.

그 귀여움에 절대 밀어낼 수 없었고, 도리어 한파가 있는 추운 겨울이라 잠깐 안아주기도 했었다.

대부분은 두 어린 카오스가 적극적으로 츄르에 매달리는 바람에 사진 또한 두 녀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삼색 카오스도 너무 가까이 있어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이 몇 장 있었는데 이런 사진 너무 재밌다.

삼색 카오스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츄르 순번을 기다리기도 했다.

매너도, 애교도 적당히 갖춘 팔방미인이 바로 요런 게 아닐까?

카오스 넌 이렇게 얌전할 때도 있었구나.

나머지 치즈 성묘와 조금 어린 치즈도 있었는데 그 녀석들도 적당히 챙겨주긴 했지만 어린 냥이들한테 대부분 양보한 걸 보면 고양이는 우리가 알던 이기적인 생명이 절대 아니었고, 도리어 인간처럼 모성애와 묘륜도 많은 생명이었다.

어릴 적부터 세뇌당했던 편견이 잘못된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난 냥이 예찬론자가 되기도 했었다.

두 턱시도는 애당초 츄르에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 붙어 일광에만 집중했었다.

측은심에 츄르를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들이 경계를 했고, 괜한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아 포기했었다.

어린 치즈가 바로 요 녀석인데 츄르를 먹긴 해도 많이 먹지 않은 건 다른 녀석들 때문이기보단 요 녀석 자체가 조금 경계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턱시도 둘은 어미와 새끼로 모든 생명은 역시나 어미와 함께 할 때가 가장 든든하다.

대용량 츄르 하나를 녀석들에게 상납했었는데 그걸 다 비우고 나서 녀석들은 다시 평온의 햇살 아래 저마다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턱시도 가족은 미동도 않고 일광 중이었다.

가장 친화적인 카오스 어미는 역시나 가장 의젓하기도 했고, 인물도 가장 출중했기에 어린 냥이들 또한 귀여움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파 속에서 저렇게 쪼그리고 잠이 드는 어린 치즈가 못내 측은했다.

어미 카오스는 어떤 각도로 봐도 인물이 좋았고, 어떻게 보면 품종묘에 가장 가까운 외모였다.

물론 코숏 자체가 믹스긴 해도 정도의 차이는 분명하니까.

결국 턱시도 어미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요 녀석은 성묘 카오스 곁에 붙어서 지내는 성묘 치즈인데 둘 관계가 커플은 아니란다.

츄르를 줄 당시 녀석들을 보살피는 주민이 옆에 계속 계셨는데 그런 관계나 사연들을 틈틈이 들려주셨고, 인상이 좋으신 만큼 이렇게 불쌍한 길생명들을 케어해 주셨다.

집사들처럼 지극정성은 아니어도 이렇게 관심을 갖고 챙겨주시는 게 이분들은 극도의 정성과 같은 거라 인식의 차이를 굳이 논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녀석들과의 짧지만 정겨웠던 시간은 마무리하고 다음 여정을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깊은 갱도만큼이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철암역, 탄광 그리고 거리는 비교적 충실히 재현되어 그 시절이 그리운 이들에겐 추억을, 전혀 기억이 없는 이들에겐 경험을 줬다.
고만고만한 상점들의 낡은 샤시문을 열면 의례히 삐걱거리며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이 동반되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매일매일 사선과 같은 갱도의 무사한 귀환을 자축하는 대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뒤따라 들리는 유리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
밤이 깊어감에 따라 하나둘 빈자리가 늘어나고 다시 찾아온 적막이 환청처럼 상상의 청각에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이제는 모두 떠나고 그 흔적의 화석을 낡은 벽에 박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 버린 그 시절의 남은 기억에 원색조차 떠나 이제는 아득한 흑백사진만 걸렸다.
보여지는 건 시각 신경의 자극이었지만 그 추파는 나머지 감각기관의 역치를 뒤흔들고 어느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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