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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가을이 주는 치유의 선물, 국립 양평 치유의 숲_20240929

휴양림은 뻔질나게 이용했어도 치유의 숲은 생애 처음 이용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여름 녹음이 완연한 가운데 부쩍 가을 내음이 선명한 시기에 숲은 가을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자 탁월한 체험이기도 했다.전날 충주에서 크게 무리하지 않은 이유도 치유의 숲 방문을 염두에 둔 터라 양평 치유의 숲이 있는 양동까지 가는 길에 풍경들 또한 쉽게 지나칠 법한 가을 체득 중 확실한 경험이기도 했다.진천에서 출발하여 1시간 40여분 동안 이동하며 줄곧 따라오는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가끔 창을 열면 밖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가을 내음에 도착 전부터 기분은 풋풋한 가을에 중독되어 걷잡을 수 없었다.국립 양평 치유의 숲은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황거길 262-10 삼각산(538m) 남쪽자락에 위치하여, 수도권에서 한..

아련한 시대의 자취, 충주 고구려비_20240928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는 충청북도 충주시(忠州市) 중앙탑면(中央塔面) 용전리(龍田里)에 있는 사각 기둥 형태의 고구려비이다. 발견된 곳의 당시 행정 구역이 중원군(中原郡)이어서 중원고구려비라고 명명하였으나, 중원군이 충주시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충주고구려비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글자의 마모가 심하여 판독에 어려움이 있지만 5~6세기경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충주고구려비는 1979년 단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 조사되었다. 충주고구려비는 오랫동안 선돌[立石]로 여겨졌기에 비가 서 있던 마을 이름도 입석 마을이었고, 비를 조사할 당시에도 일부 주민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호인들의 제보가 있어 현지 조사를 한 결과 삼국 시..

남한강을 따라 흐르는 시선, 충주 장미산성_20240928

충주 장미산성을 계획한 날,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충주에 도착했고, 때마침 고구려 축제가 있어 차량 행렬이 비교적 눈에 띄었다.광활한 고구려의 의미를 기리듯 청명한 가을하늘은 더할 나위 없었는데 더불어 여정을 즐기기에도 최적의 날씨라 출발 전부터 기분은 공중부양 상태였다.장미산성은 해발 337.5m인 장미산을 중심으로 계곡을 감싸, 돌로 쌓은 산성이다. 수로 및 육로교통의 요충지이자 삼국시대에 전략적 거점이기도 한 이곳에는 백제시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산성의 원류는 고구려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충주 고구려비’와 관련하여 고구려 세력의 남하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대림산성과 장미산성 내 설명판) 이 성과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의..

여름과의 숙연한 작별, 안성 칠장사_20240910

진중한 사찰의 저녁, 안성 칠장사_20240902칠장사는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에 위치한 칠현산 자락의 고찰.조선 영조 9년(1773년)에 간행한 칠장사 사적비(事蹟碑)에 의하면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중수된 기록이 있으나 초창meta-roid.tistory.com지난주 방문했을 당시 무거운 구름을 떠받들던 산자락이 이번엔 진공의 하늘을 떠받들어 지루한 폭염의 일탈을 천상의 바다에 담갔다.구름 한 점 없는 세상은 마치 우주를 동경이라도 한 건지 흙먼지로 날리는 소음은 사라지고 멍한 망울처럼 고요하기만 했다.한 주 지나 확연히 짧아진 대낮은 폭염만 남겨놓고 냉정하게 돌아서서 서녘 칠현산과 칠장산을 넘기 시작했다.덩그러니 남은 문 앞에서 칠장사로 향하는 걸음이 그로 인해 조급해졌건만 마음은..

남한강 울타리 속 자연, 충주 비내섬_20240620

적당한 물비린내와 풀내음이 뒤섞인 비내섬은 남한강이 만든 섬으로 장자섬과 함께 가끔 들러 봄에는 공허함 가운데 신록의 파릇한 민낯을, 가을엔 생명의 성숙을 가르며 잔잔한 산문집을 읽는 기분으로 거닐던 곳이었는데, 문화 컨텐츠의 화력으로 인해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 명소다.산문집이 그렇듯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쉽게 읽히지도 않는 것처럼 빼어난 풍광이나 특출 난 경관을 바란다면 이 또한 처음 몇 페이지만 읽다 덮고 서가에 먼지가 쌓이는 산문집과 같았다.걸음을 멈추고 익숙해진 화이트 노이즈를 잊어버린다면 무성한 풀섶 어딘가에서 들리는 여러 종의 새소리 화음이 뒤늦게 들렸고, 여러 종의 생명이 바람에 응수하는 제각각의 노래를 깨칠 수 있었다.이왕 비내섬에 왔다면 이미 떠나버린 사랑의 불시착보단 늘 ..

하늘재가 이어준 베바위, 충주와 문경의 하늘재_20240619

하늘재를 넘어 포암산 베바위 아래 포암사를 거쳐 다시 하늘재로, 하늘재에서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다른 숲 속 자연관찰로를 밟아 원점으로 돌아왔다.무성한 숲이라고 폭염을 피할 수 없지만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무거운 더위를 떠받쳐주는 산의 숲에서 말 없는 유약한 길도 그 품을 파고든다.예전엔 끈적한 여름이 싫었는데 어느 순간 나이를 짊어져 무거운 추회를 읽는 순간부터 여름은 피하고 떨치는 계절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자연이 주는 축복이었고, 이렇게 내게 주어진 축복을 덤덤히 즐기는 것 또한 자연에게서 배웠다.더위에 흠뻑 젖은 내게 봇짐을 파는 분이 내민 생수 한 잔은 그 축복의 연장선상이었으며, 인근 수안보 온천에서 몸을 이완시키는 건 행복이었다.하늘재옛길을 걸어 포암산 베바위 아래 포암사에 도착했다.베..

이천 년 삶의 희로애락, 충주 계립령 하늘재_20240619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자 남북을 잇는 요충지인 계립령로 초입에 자리한 절터에 도착하여 폭염을 뚫고 하늘재로 향하기 전, 역사의 흔적에 잠시 숙연한 상상에 빠졌다.한 때는 성행했고, 또 한 때는 외면받았던 하늘재 길목은 창칼을 겨누거나 큰 희망의 고갯길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거운 공기만 가득했다.그래서 그 무거운 정적의 내음과 자취가 이끄는 대로 길을 밟으며 둔중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늘재는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을 잇는 고갯길로 공교롭게도 충주 방면은 미륵리, 문경 방면은 관음리란 지명을 갖고 있었다.미륵과 관음이라...이승과 저승의 고갯길이 하늘재, 계립령이란 말일까?미륵대원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고려전기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사찰터로 198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하늘재[..

아산을 만날 결심,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40614

바람이 많은 날에 문득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걷고 싶었다.곡교천에는 강물이 흐르고, 거리엔 바람이 꿈틀거리고, 허공엔 하늘이 흐르는 곳.덩달아 사람들도 은행의 녹음 제방 사이로 흘러흘러 삶의 단맛을 머금었다.버스를 타고, 다시 1호선 전철을 타고, 그러곤 온양온천역에 내려 버스를 타면 충분히 닿을 수 있어 가끔 차가 짐이라 여겨질 때 부담 없이 올만했다.사람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생명이라 같은 존재를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내게 있어 아산은 단순히 온천을 넘어 여행의 기분을 배부르게 채워주는 곳이었으며, 거룩한 현충사가 있는 의미심장한 곳이기도 했다.그래서 아산에 와서 덤덤히 걸으며 멋진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낭만을 배웠다.아산을 가로질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곡교천은 천안천, 온양천 등 모..

은둔의 산촌을 걷다, 영주 소백산 달밭골과 자락길_20240612

소백산 비로봉 최단 코스, 삼가동 탐방소를 지나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평소라면 잘 포장된 길은 워밍업 구간이겠지만 폭염 아래에선 걸음 뿐만 아니라 양어깨에 둘러 쳐진 백팩조차 천근만근이었고, 사찰 탐방 또한 둔턱이었다.이왕 발길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면 미련을 두지 말자.그래도 무슨 힘이 남았는지, 아님 나무숲에 대한 집착이었는지 가까이 잣나무숲이 있어 소백산 자락길을 걸어 울창한 잣나무숲에 들어섰고, 잣나무숲에서 만날 수 있는 내음과 소리에 흠뻑 취했다.비로사를 지나 소백산 중턱 잣나무숲을 가기 전에 고도 700m 가까운 곳의 산속 달밭골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예전 여정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마을이 바로 여기였다.전쟁이 일어난 줄 모르고 살았다던 소백산 자락, 구병산 자락, 지리산 자..

오지의 깊은 고독, 외씨버선길 1코스_20240611

지금까지의 주왕산은 잊어야 될 주왕산의 또 다른 얼굴, 용연폭포를 지나 고갯마루를 지나는 순간부터 정취는 완연히 바뀌며, 각종 기암 협곡과 마천루는 사라지고, 낯선 생명의 방문을 거부하듯 극도의 적막한 숲 속 진공관과 같은 산길을 지난한 걸음으로 옮겼다.1.6km의 뿌듯한 오르막길을 걷는 동안, 아니 금은광이를 넘어 첫 번째 인가를 만나기 전 약 4km 산길에서 어떠한 인적도, 심지어 주왕계곡에서 줄곧 따라붙던 요란한 개울 소리조차 사라진 길에서 묘한 산중의 무거운 몰입감에 취한 사이 무심코 내딛는 발자국조차 진중한 울림이 오감으로 전해져 깊은 숲 속에 심취했다.빈약한 경험상 산에 오를 때는 정상에 대한 갈망이 있거나 산길을 걷는 과정에 갈망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산의 터주인 숲에 스며드는 각별한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