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231

찜통 같은 대구, 욱수골과 금호강변_20220708

녹음이 무성한 개울가 산책로를 따라 잠시 걷는 사이 대구를 떠올렸다. 대구! 그냥 덥다는 생각뿐. 어차피 여름이면 어디든 덥다고 생각했지만 대구에 도착해서 도어를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헉!'소리가 난다. 서울도 열섬 현상으로 찌는 듯한 여름을 보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대구는 묘하게 찜통 같다. 2013년 한여름에 지인 잔치가 있어 대구를 왔을 때, 차량 온도는 30도를 조금 넘는 수치를 보여주다 대구에 가까워질 때부터 1도씩 오르다 결국 범어네거리 도착하는 순간 39도를 찍었던 기억도 있다. 차를 내리던 순간 선글라스에 뿌연 김이 서려 확실한 여름을 체험한 날이었는데 그 이후부터 여름에 대구를 오면 진정한 여름을 체험한다. 욱수골공영주차장에 주차, 요람을 회상하면서 길을 걸었다. 물론 당시..

냥이 족발로 마수걸이_20220622

마수걸이란 게 새제품이 아까워 선뜻 사용하지 못할까 봐 친한 사람들끼리 중고빵을 날려서 미련을 버리게끔 하는 일종의 장난 섞인 행위인데 냥이가 마수걸이할 줄 누가 알았을까? 가죽 클러치백 하나 선물 받아 집에 와서 풀자마자 베란다에 서성이던 녀석이 바로 마수걸이를 해 버렸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님 왠수라고 해야 하나? 저 선명한 뒷족발 자국. 말이 통하면 앉혀 놓고 따끔하게 하악질 날려주는데 이건 원, 말이 통해야 훈계를 하지!

속리산 아래 기개 곧은 벼슬아치, 정이품송_20220613

저물어가는 하루의 시간이 극적이었다면 수백 년 동안 단 하루도 소홀하지 않았던 소나무는 이 하루가 어땠을까? 역치는 자극에 쫓겨 무뎌지듯 수령님은 시간의 파고가 그저 숙명의 무수한 털 한 끗도 되지 않겠지? 저녁 식사로 들른 식당 쥔장이 유기묘를 거두고 나서 두 번째 출산으로 5마리 키튼을 선물했단다. 가만 보고 있으면 심장이 멎을 것 같아 그 자리를 벗어나면서 내게 무턱대고 궁뎅이를 내민 털보숭이 어미에게 냥캔과 항생제 선물로 응수했다. 이를 보면 생명의 위해함과 강인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이품송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에 있는 수령 600~700년의 소나무. 1962년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세조가 얽힌 전설이 있어 대중들에게는 한국의 천연기념물 중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

집으로 가는 길, 속리산 휴게소_20220503

힘겹게 넘어가는 백두대간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쉰다. 휴게소 옆 멋진 산세는 굳이 이 휴게소를 들른 이유로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한 접근성이 좋아져서 그렇지 원래 오지 중의 오지였단다. 오죽했으면 6.25가 발발했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산은 천연 요새며 생명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다. 먼저 아부지 산소에 들러 설 차례를 지냈다. 항상 이 자리에서 인증샷 한 컷을 찍게 되는데 계절의 특징도 잘 나타나고, 인사를 드리고 난 후의 후련함이 있기 때문이다. 남쪽 지역의 봄은 비교적 덥기도 했다. 올라오는 길에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보면 속리산 휴게소가 단골 쉼터였다. 그래서 몸에 덕지덕지 끼여 있는 노곤함을 털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의 구병산을 바라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그 자태에 감탄하게 되며,..

친근한 녀석들과의 저녁 만찬, 오도산 휴양림_20220502

숙소에 들어와 모두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저녁을 준비하는데 어렴풋 꼬물이 하나가 보여 불렀더니 정말 다가왔다. 비교적 어린 냥이라 당장 줄 건 없지만 녀석은 내가 그리 적대적이지 않은 걸 눈치채곤 발코니 쪽으로 사라졌다. 여긴 종종 냥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번엔 내 차가 아니라 밥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 또한 눈치를 챘다. 휴양림 투숙객들이 하나둘 던져주는 고기 맛을 알고 있는 녀석들이라 아니나 다를까 회전불판에서 고기 내음이 뿜어져 나오자 발코니에 모여들어 냥냥송을 합창했다. 울가족들은 코코 이후로 전부 냥이들에 대해 호의적이고 측은해하는 편이라 하는 수 없이 고기 몇 점을 잘라 녀석들과 틈틈이 나눠 먹는 사이 밤은 깊어갔다. 숙소 출입구 앞에서 까만 무언가를 보고 혹시나 싶어 부르자 그 소리에 달려온..

대구행_20220429

오랜만에 대구를 방문한 건 아주 오래전 내 기억에 각별한 분을 뵙기 위한 건데 대책 없이 막히는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자정 넘어 도착했다. 그리 늦지 않았다면 숙소 옆 강변과 너른 공원을 루틴처럼 둘러봤겠지만 이튿날 빼곡한 일정이 부담스러워 바로 쓰러졌다. 다행히 흐리지만 대기가 무척 맑아 이번 대구행은 타이밍 조~~~ 타. 집에서 살림을 챙기면 녀석은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거리를 두고,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얼른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뇬석아. 대구에 오면 절반 이상은 이 호텔을 이용하게 된다. 강변과 짝짜꿍이 되어 호텔 자체보다 하나의 덩어리가 무력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갠적으로 대기가 맑고 햇살 쨍한 날보다 차라리 이렇게 흐리지만 대기가 화사한 날을 좋아한다. 이튿날 숙소를 빠져나와 서변동으..

정선에서의 특별한 경험들, 파크로쉬-가리왕산-백석봉_20220317

경이로운 동강의 이야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은 기분을 억누르는 복병이 아니라 성취를 북돋워 주는 흥겨운 귀갓길의 동행자며 어깨동무를 나누는 친구였다. 어스름 피어나는 정선의 대기는 일찌감치 내린 암흑조차 위압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는 시간의 정겨운 순응이며, 그 암흑이 걸쳐 입은 옷은 저녁밥을 짓는 굴뚝의 향그로운 낙엽 타는 내음으로 단장했다. 숙소가 가까울 무렵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샘터에 들러 청량감이 터질 듯한 알싸한 생수를 들이키며 하루의 온전한 여정에 뒤늦게 화답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냥이들을 만났던 자리를 두리번거리자 마치 손꼽아 기다린 양 작은 담장에 웅크리고 있다 보슬비를 피한 자리에 마련해 준 식사를 정신없이 해치웠다. 녀석들이 식사를 하는 사..

때론 포근하게, 때론 강렬하게, 파크로쉬_20220316

일 년에 한 번은 꼭 오게 되는 정선, 그중에서도 파크로쉬 또한 꼭 들러 지친 여정을 털어내기엔 적절하고 편안한 베이스캠프가 되어 버렸다. 휴식이라는 컨셉에 걸맞게 사물들 사이에 배치된 여유와 뒤뜰에 추구된 쉼터, 게다가 여기를 찾는 사람들 또한 거기에 맞춰 느림의 보폭으로 추억의 돌탑을 쌓는다. 석탄이 부르는 음악소리에 한껏 춤을 추는 모닥불이 그리웠는지 한참을 앉아 춤사위 공연에 심취하는 동안 밤은 깊어 달무리가 시선의 이불을 펼친다. 정선 파크로쉬로 떠나다_20190216 원래 의도와 다르게 혼행을 떠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좋았던 이번 여행.영동 고속도로 진부에서 내려 정선 숙암으로 천천히 흘러갔다.토 요일 저녁이라 차가 많을 법도 하지만 진부를 벗 meta-roid.tistory.com 두 ..

밤에 휴게소에서 만난 고양이_20220314

주유할 겸 잠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얼핏 본 냥이가 재활용 분리수거통 부근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 처음엔 인형인 줄 알고 긴가민가 싶어 다가가자 몇 발 도망간다. 때마침 비가 내린 뒤라 여기 있나 보다 싶어 "밥 하나 줄 테니 여기 있어" 돌아와도 그 자리에 가만있었다. 햇반 그릇이 석판 바닥에서 잘 미끄러져 멀찍이 습식 파우치를 줬음에도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녀석이었다. 울 냥이는 습식 하나로 3~5끼를 먹는데 녀석은 앉은자리에서 해치운 걸 보면 배가 고프긴 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멀어지는 사이 녀석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래서 한 편으론 다행이다 싶었고, 한 편으론 마음 짠했다. 습식 하나 풀어주자 금새 다가와 먹는 걸 보면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녀석은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