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231

화정족발에서 만난 슬픈 냥이_20220908

찐더위와 엉뚱한 버스를 잘못 타는 걸로 인해 일산까지 3시간 소요, 모처럼 만난 지인과 쇠주를 들이켰는데 묘하게 취하지 않는 건 어떤 안주보다 감칠맛 나는 대화 덕분이었다. 잠시 나와 한층 시원해진 바람을 쐬는데 길 생활이 고된 녀석을 만나게 되었고, 녀석으로 인해 우리 냥이 이야기로-사실은 팔불출의 입덕 터지는 자랑질이 맞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대화 소재가 흥미진진할 줄이야. 같은 길 생활 하던 냥이라 길에서 잠시 만난 녀석의 모습에 고단함을 유발한 고달픈 숙명이 읽혔다. 그래도 놀라지 않고 잠시 눈인사 건네는 여유와 더불어 녀석의 불편해하는 한 쪽 눈을 보면서 마음이 쓰라렸다. 녀석의 왼쪽 눈이 언뜻 봐도 확연히 불편해 보였다. 냥이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슬픔이 서린 건 그들만의 숙명에 내가 휘..

호수 위 태고의 섬, 옥천 대청호 부소담악_20220901

대청호는 대전에서 만만하게 찾을 수 있는 전국구 관광지로 주체할 수 없는 욕심에 해 질 녘 도착, 대전 바로 외곽이면서 이내 오지마을처럼 한산한 도로를 질주하여 급히 목적지로 향했는데 사람이 익숙한 냥이 가족의 환영을 우선적으로 받았다. 금세 어둑한 밤이 찾아와 서둘러 차에 오자 어린 삼색냥이 얌전하게 움츠리고 있어 츄르 하나 꺼내 돌아섰는데 녀석이 어떻게 알고는 뒤를 쫓아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 깨끗한 햇반 그릇에 츄르 하나를 짜서 주자 녀석이 환장했다. 츄르가 없는데도 녀석은 여운이 남았는지 그릇을 계속 핥아 손으로 그릇을 잡아 내밀자 여전히 빈 그릇을 핥았다. 어느 정도 쪼그려 앉아 있다 그릇을 치우고 손가락을 내밀어 봤는데 살짝 경계의 뒷걸음을 치다 한발한발 신중하게 다가와 손끝에 빰을 문..

냥이, 그리고 노을_20220828

'집사, 요상한 물 언제 다 마시냥? 얼른 털어 넣으면 안되냥?' 커피 마시는 자리 옆에 붙어 계속 째려보는 녀석은 사실 잠깐 일어난 사이에 자리를 점거해 버리곤 눈총을 주다 커피가 바닥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돌아 앉아 '참을 인'을 되뇌이고 있었다. 사실 커피 다 마신 뒤에 일부러 빈컵을 입에 갖다 대는 시늉을 했던건데 녀석은 그저 지루할 뿐이었다. 커피 마시면서 흑미식빵도 곁들이라는 걸까? 마치 어린 바다표범 같았다. '아직 마시냥? 얼른 완샷으로 털어 넣으면 안되냥?' 빈컵을 연신 입으로 갖다대며 마시는 척하자 녀석이 아예 돌아섰다. '내가 저 꼴은 못보겠다옹!' 민무늬 달팽이의 펑퍼짐한 골반이 보였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예전 같지 않은지 쾌청한 날이 많아 덩달아 하늘에 찍어 그린 그림에 심도가..

냥이_20220825

집사를 손꼽아 기다린 모습에 녀석이 품안에서 잠든 걸 허락한다옹~ 어느새 나 또한 녀석의 사진을 종종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 빈도가 늘어나는 건 온전히 녀석 덕분이다. 늦은 밤 퇴근하여 간단히 요기하는 동안 옆에서 집사를 묵묵히 기다렸다. 녀석과 잠시 놀아주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데 녀석은 습관처럼 냉큼 집사 무릎에 자리잡고 퍼질러 잤다. 조만간 하계 방학이 끝나고 2학기 시작인데 뭘해야 되나? 잠깐의 사색에 해답은 찾지 못하고 녀석의 집사가 되어 버렸다. 이게 집사의 인생이다.

갯마을 삶의 모세혈관, 논골담길_20220824

삼척과 또 다른 정취의 갯마을. 급경사의 척박한 현실에서 처절한 인고의 세월을 말해주듯 어느 하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고, 그로 인해 그 흔적은 문자가 되고, 언어가 되었다. 그렇기에 바다 앞에서도 당당했고, 아름다웠다. 도째비골 해랑전망대에서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이다. 도깨비방망이를 형상화하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85m 길이의 해상보도 교량이다. 해랑은 바다와 태양 그리고 내가 함께 하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입구에는 도깨비 영역으로 들어가는 의미를 가진 파란색 진입 터널이 있고, 가운데 조형물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전망대의 봉오리 진 슈퍼트리가 도깨비방망이를 통해 만개했다는 스토리를 조형화했다.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바다 위 파도를 발아래서 느낄 수 있도록 유리바닥과 메쉬바닥으로 ..

묵혀둔 정감, 나릿골 감성마을_20220824

마을길을 따라 좀 더 오르자 언덕의 너른 지세가 펼쳐졌고, 그제서야 파도치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좀 전 지나온 길은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이 아니라 인가가 비교적 적었고, 언덕에 올라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인가가 밀집한 골짜기 마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쩌면 마을 뒤편 가장 높고 너른 고원 같은 곳인데 여기는 완연한 공원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산책하기 최적의 길이 뻗어있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이라 육각정 전망대와 쉼터가 있었는데 때마침 말벌 몇 마리가 또다시 주변을 윙윙거리는 바람에 오래 있지 못했다. 길과 전경에 몰입해야 되는데 말벌로 인해 연이어 방해받는 기분이라 벩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가야 될 방향을 조금 서둘러 걷자고 생각해야지. 좀 전 지나친 원주민처럼 보이는 분이 ..

바다를 향한 꿈, 흰여울 문화마을_20220816

바다를 향한 꿈, 오랜 세월 삶의 무게와 맞물려 장독에 묵힌 구수한 장맛처럼 진면목을 드러내고 비상하는 바닷새가 되어 수평선을 출렁이는 아리랑이 된다. 지칠 줄 모르는 바다 바람이 세 평 쉴 틈 없이 몰아넣어도 태초에 솟은 산에 업혀 엄마 품에서 처럼 곤히 졸고 있는 아가처럼 이따금 근원 모를 함박웃음에 기나긴 설움 터널은 지워지고 어느새 갈망의 견고한 돌탑이 머나먼 걸음 마다한 나그네를 동심의 울타리로 안도시켜 준다. 지인과 만나 영도로 넘어갔고, 비가 내릴 듯 말 듯 애매한 날씨긴 해도 그리 덥지 않은 날이라 도보 여행을 곁들이기로 했다. 우선 태종대 초입까지 또 다른 지인이 데려다준 덕에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버스로 중리방파제에 도착했다. 정박 중인 선박들이 수평선에 사이좋게 걸쳐져 있었다. 걸..

작은 오지 쉼터, 봉화_20220731

깨진 평온에 심술이 난 물안개 사이로 금세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고, 여울틈 사이로 숨어 있던 생명들이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난 양 다가와 툭툭 입을 맞혔다. 하늘이 떨구는 비는 여유의 향미가 곁들여지면 잠자던 자연의 협주곡이 되며, 수줍어 숨어 있던 안개를 춤추게 하며, 침묵하던 바람의 세상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살짝 찍는 쉼표는 견줄 수 없이 감미로웠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차가운 여울에 살짝 발만 담근 채 잠잠해진 비를 피했다. 멀찍이 어딘가 숨어 있던 안개가 여울 위로 만개했다. 근래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물이끼가 제법 끼어 있었고, 그걸 먹이 삼아 다슬기도 빼곡하게 있었다. 굵은 빗방울 하나 여울에 튕겨 수정 구슬이 생겼다. 비가 내려 그나마 수량이 늘었고, 물은 원래의 그 청정함을 되찾았다..

냥이_20220726

그리 긴 외출이 아닌데도 녀석은 어찌나 애틋한지. 때론 아끼는 가족, 사람에게 이렇게 맹목적으로 애틋해질 필요가 있음에도 그런 표본이 없다면 쉽지 않고, 녀석으로 인해 맹목적인 순수를 배웠다. 그로 인한 화답으로 새가 지저귀는 영상을 틀어 주자 거기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사는 녀석의 그런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저녁부터 발치에서 떠날 줄 몰랐다. 심지어 방까지 따라와서 바닥에 붙어 이렇게 째려봤다. 이 눈빛 왜캐 불쌍불쌍해 보이지? "난 컴 키보드를 팰 테니 넌 지저귀는 새를 패거라." 정말 화면이 뚫어질 기세로 초집중했다. 새가 날아왔다 날아가면 이따금 앞 젤리를 날리거나 혓바닥으로 쓸어버렸다. 그러다 솜뭉치를 걸치곤 밀려오는 피로감을 꾸역꾸역 참다가 급기야 녹다운되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