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산들이 모여 숨어 있던 곳, 구름 이불을 덮어 월동준비로 분주한 가리왕산의 절경 앞에서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미려한 자연의 화음에 감동하고, 그리하여 이 자리에 서서 숨죽였던 감성들이 깨어나는 순간을 감사하게 된다.
모든 지나치는 찰나가 다르겠지만 이 순간도 수많은 찰나 중 하나의 조각이며 파란만장한 작품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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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엔 앳된 가을이 젖어들었고, 산 위엔 앳된 겨울이 젖어들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20여 분간의 긴 오름 끝에 산을 밟았고, 그 과정에서 점점 무르익어가는 가을이 어느덧 깊은 만추와 이른 겨울 정취가 압도적이라 미처 누리지 못한 가을이 아쉬웠는데 이 땅에 딛는 순간 모든 주저함과 아쉬움을 잊어버린 채 셀 수 없이 수많은 산들이 서로 부둥켜안은 모습을 넋 놓고 지켜봤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가장 먼저 거대한 고원 같은 가리왕산을 바라본 뒤 남쪽에 펼쳐진 끝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첩첩한 산의 능선들을 바라봤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산과 그 산들을 연결한 능선 사이엔 어디선가 발원한 강과 인간이 가꾼 삶의 터전들이 언뜻 보였다.
남쪽을 잠시 둘러보고 이어 데크를 따라 동쪽을 바라보며 북쪽 방면으로 천천히 걷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고목을 만났다.
살아서 미쳐 천 년 누리지 못한 생, 새로이 남은 천 년을 누리길.
데크를 걷다 문득 가리왕산을 바라보며 그 위대한 위용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만추와 이른 가을 흔적이 뒤섞인 일대는 묘하게 의욕과 성숙의 정취가 느껴졌다.
이분들 특히나 감탄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솔직한 기분을 드러내며 웃고 심취했다.
데크 북쪽 끝에 솟아오른 전망대에서 오대산 방면을 바라보면 부푼 기대를 잔뜩 싣고 분주히 오고 가는 케이블카와 역시나 헤아릴 수 없는 산과 능선들이 이어졌다.
미세 먼지의 여파로 멀리 오대산 일대는 육안으로 보기 힘들었지만 하늘과 가까워진 기분에 욕망을 충족하며 안타까운 감각은 마비되었다.
연신 오고 가는 케이블카가 사람들을 바삐 날랐고, 케이블카에서 내린 사람들은 익숙한 듯 데크길과 전망대를 분주히 걸어 다녔다.
찰나를 가두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진과 영상이라 어느 방향을 가리지 않고 셔터를 눌러 전망과 시간을 담았다.
가을과 산을 거슬러 케이블카는 멈출 줄 모르고 연신 줄에 매달려 움직였다.
앞서 운탄고도를 탐방할 때 만났던 백운산처럼 가리왕산도 정상 부근에 고원과 같은 너른 하늘을 담았다.
발아래 이른 만추의 정취를 관통하여 절정의 가을도 투혼을 불살랐다.
삭막하고 황막한 가운데 자리 잡은 가을이라 어쩌면 상대적으로 더 화려했고 아름다웠다.
전망대 3층에 올라 이번 가리왕산 케이블카 여정의 하이라이트.
남쪽에 펼쳐진 강원도의 절경, 첩첩 산능선의 향연은 언제 봐도 감동의 발원지가 되어 솟아나는 샘처럼 감탄이 그칠 줄 몰랐다.
오색의 울긋불긋한 색감이 물들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 자리에서 확신했다.
전망대 북쪽은 시선의 방향에 맞춰 상대적으로 골이 깊고 명확했다.
오대산 일대가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아쉬울 건 없었다.
마음속 욕심이 잦아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 장관을 바라보게 되니까.
가리왕산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전망대 건물과 데크만 밟을 수 있었고, 그게 협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했고, 적당한 통제가 가리왕산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노크롬으로 찍어도 묘한 정취가 느껴졌다.
충분히 주변 세상을 공감한 뒤 떠나기 전에 아쉬운 듯 다시 둘러보며 헤아렸다.
관용과도 같은 너른 가리왕산이 하늘에 맞닿아 구름조차 아득하게 보였다.
내가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탄 이유는 어떤 명확한 언어적 표현보다 이 모습에서 완벽한 설득력이 전해졌다.
자극적인 색감이 없어 오래 기억되고, 지치지 않고, 내포된 의미가 더욱 심오했다.
정선에 오면 여전히 찾아야 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그래서 다시 찾는 재미, 찾아보는 호기심이 남겨져 설렐 수 있겠다.
케이블카 하부역인 숙암역에 내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지역 사람들의 손길을 느끼며 이 여정을 끝으로 정선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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