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눈 내리는 산책에서 만난 냥이_20200216

사려울 2021. 8. 4. 01:06

그립던 눈이 사무치도록 내리던 휴일, 반석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동안 변덕스럽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내리던 눈은 이내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지만, 발길이 쉬이 닫지 않는 곳에선 서로 모여 무던히도 조잘댄다.

겨울에만, 그것도 눈이 내릴 때만 만날 수 있는 뽀송뽀송한 눈꽃이 화사한 꽃잎을 부풀려 이따금 내비치는 햇살을 굴절시켜 망막이 시큰거리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든 신경은 지칠 기색이 없다.

햇살을 가르며 그치질 않는 눈송이가 어느새 무르익어 추운 겨울밤도 따스하게 저민다.

눈이 내린 시간은 좀 지났지만 여전히 눈발은 날려 눈이 쌓일만한 곳엔 풍성한 솜을 뿌린 것 같다.

굶주린 길냥이 가족을 만난 곳, 세찬 눈보라와 달리 정취는 따스하다.

올라프?는 아니구나.

굵직한 눈이 떨어지자 마자 민망한지 금새 투명한 물이 되어 달아나고 흩어져 버린다.

눈비에도, 어느 계절, 어느 날씨에도 늘 유유한 오산천의 철새 도래지.

남쪽을 등진 반석산 북편은 언제나 눈들이 모여서 오래 동안 남아 겨울을 보낸다.

송이송이 활짝 핀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복합문화센터 야외음악당의 너른 잔디광장에 눈이 쌓이면 더욱 물씬한 겨울 정취가 느껴진다.

다른 곳은 금새 녹더라도 여기만 눈이 소복하게 쌓이길...

내리는 눈에 흥겨운 놀이를 찾은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여기에선 풍성한 눈꽃 구경을 할 수 있다.

흩뿌리는 눈발에 막바지 겨울 고비를 나고 있는 까치들.

겨울, 눈, 고드름... 요람의 시절이 회상되고, 종내엔 그립고 그립다.

누가 가장 단단한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에 끝까지 멀쩡한 승자가 되는지, 때론 그 고드름을 아이스바처럼 녹여 먹기도 했다.

올 겨울엔 유독 내리는 눈이 귀하디 귀하신 몸이다.

역시 겨울 정취의 대명사는 눈 아니더냐.

우산 없이 방수 코트를 걸쳐 입고 가까운 동네 겨울 구경에 나섰다 굶주린 길냥이 가족이 보여 행여나 하는 마음에 슬링백을 뒤졌더니 지난번 넣어둔 츄르가 하나 있었다.

때론 무신경하거나 깜빡하는 건망증이 유용할 때가 있구나.

누가 봐도 굶주린 표정이 역력한 아기 냥이한테 츄르를 내밀자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거리를 두지만 도망 가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둔다.

하는 수 없이 석재 블럭을 슬쩍 닦고 거기에 츄르를 짜서 두자 처음엔 두리번 못 찾는가 싶더니 제대로 찾고 순삭해 버렸다.

어미 냥이는 뒷전에서 한참을 지켜 보고 있었는데 아이가 츄르를 다 먹곤 전혀 예상치 못한 노출된 공원으로 나가자 어미가 화들짝 놀라 이내 따라와서는 아이를 안전한 곳을 따라 오라고 한다.

일 년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냥이의 편견.

1. 어릴 적 어른들은 길냥이를 도둑고양이라 부르며, 주인이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주인을 등지고 집을 나가 버린단다.

허나 냥이들이 집을 나가는게 아니라 호기심이나 다른 위협을 피해 잠시 피한다고 낯선 환경에 노출되는 순간 당황해서 몸을 피신했다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걸 알았다.

냥이들은 파양을 해도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자리를 절때 떠나지 않고,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린단다.

또한 죽음이 임박하면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 거기서 임종을 한다고.

그러니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아 집 나간걸로 오해할 만하다.

2. 길냥이들은 전염병을 옮기고, 애기 울음 소리를 흉내내어 아이들을 꿰어 내거나 정신을 현혹시킨단다.-냥이가 곡성이냐?!-

근데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아무리 좋은 쥐약을 사서 동네 방네 뿌리고 다녀도 쥐는 박멸 되지 않았는데 냥이를 한 마리 들여 놓는 순간 그 많던 쥐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쥐는 곡식의 최대 흉적이며, 흑사병의 주범인데 유럽인들이 처음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면서 곡식 창고에 냥이를 키웠고, 그 냥이들 중 강인한 생명력과 외모가 좋은 종자가 아메리칸쇼트헤어란다.

또한 길냥이가 사라질 경우 흑사병 창궐로 문명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건 여러 자료를 조금만 찾아 봐도 알 수 있다.

그걸 깨달은지 한참 지났지만 이제 냥이를 보게 되면 설사 녀석들이 도망 가더라도 나는 손가락을 내밀거나 눈을 가늘게 떠서 인사를 건넨다.

그리햐야 결국 집사가 되었지만 이제라도 잘못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던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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