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색

혹한 속 뜨거운 새해 일출, 영양 일월산_20050101

사려울 2024. 5. 22. 00:46

지인의 본가가 있는 의성에서 밤눈을 붙인 뒤 이튿날 칠흑 같던 이른 새벽에 일어나 예상보다 꽤 먼 일월산 정상으로 향했다.
원래 군사 시설이 있어 민간인 출입 불가 지역인데 특별히 1월 1일 새벽 해돋이 시간대만 민간에 개방해 놓는단다.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찾았는지 행사 주최측의 통제에 따라 주차를 하고 얼마 가지 않아 동녘에 야외 무대 같은 조악한 시설로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해가 뜨는 방향으로 하염없이 기다렸다.
좀 일찍 와서 좋은 자리를 잡긴 했는데 한겨울 1200m 고지의 추위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찌나 추웠던데다 산정상의 바람 또한 상상을 초월하여 노출된 부위들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미리 손난로 챙기길 잘했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또한 그 추위에 감각이 마비 되었는지 코 밑에 맑은 콧물 자국이 있었는데 그래도 해는 뜨는지 어느새 여명이 깔리는가 싶더니 점점 밝아오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바다도 보인다던데 아쉽게 지상과 바다에 낮게 깔린 구름으로 수평선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낮은 구름 위로 선명한 일출을 볼 수 있단다.
행사를 주관하는 영양군 측 사회자의 깨알 같은 설명 덕분으로 지루하지 않게 버텼는데 어느새 동녘이 점점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반대로 서녘은 어둠이 무겁긴 했다.

조만간 해가 뜰 채비를 하는데 달도 함께 떠있었다.

순식간이었다.
구름 위로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금세 대낮처럼 세상을 밝혔고, 이에 맞춰 군수의 해돋이 제사가 이어졌다.
미신이나 민속을 떠나 왠지 이럴 때엔 이런 의식으로 가슴 속이 괜히 뜨거워졌다.

해가 돋는 반대편도 서서히 새해 넘치는 빛의 홍수로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

태양은 구름 위를 힘차게 솟아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손난로 챙기길 잘했다.
함께 왔던 지인과 그 일행들도 번갈아 가며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새해에 뜬 태양의 강렬한 햇살이 사람들의 굳은 표정도 녹였고, 그 빛이 닿는 모든 만물에 희망을 불어넣어 꽁꽁 언 겨울을 버틸 수 있는 가슴 속 난로의 불도 지펴줬다.
바다 해돋이와 다른 산 정상의 해돋이,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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