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하루 동안 많이도 다녔고, 많은 만남과 헤어짐도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에 들렀고, 이어 노령으로 건강이 급격히 떨어진 외삼촌도 뵙고, 명절이 지나 절대 지나칠 수 없었던 아부지 성묘까지, 그리고 오마니 추억의 장소에 들렀다 이른 저녁을 해결한 뒤 상행길에 올랐다.
다리를 건널 무렵 퇴근 러시아워라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는데 그 찰나 차창 너머 광활한 가을 하늘에 석양이 질러 놓은 노을 불빛에 매료됐다.
어차피 막히는 교통이라 조바심 낼 필요도 없어 차라리 잘 된게 아닌가.
석양빛 물드는 하늘이 어찌나 고운지 이렇게 정체 구간 속에서 하늘을 충분히 감상하며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다리를 지날 무렵 남은 석양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아파트 옥상 구조물에 살짝 빛자락을 걸쳤다.
그러다 아파트 뒤로 숨은 녀석이 누가 볼 새라 바삐 서녘으로 뛰어가던 찰나, 신호가 바뀌어 차량이 출발하기 전 얼른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막히는 길이라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만 찰나는 언제나 다른 모습, 다른 빛깔이라 그 순간이 아름답거늘.
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평택제천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쉬기 위해 금왕 휴게소에 들렀는데 오마니께서 언뜻 냥이를 보셨단다.
그래서 대략적인 위치로 찾아가자 정말 얌전한 냥이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만난 양 사정 없이 부비부비했다.
차에 있던 밥을 두고왔던 터라 주머니에 있는 츄르 하나만 주고 다시 가던 방향을 바라는데 사료와 물을 주고 오라는 맘씨 고운 울 오마니 명령에 꼼짝 없이 녀석을 다시 찾아 자리를 마련해줬다.
보아하니 사람 손을 많이 탄 걸로 봐서 누군가 잃어버렸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유기를 한 건데 녀석이 굳이 첫 자리를 고수하는 걸 보면 조용한 시기에 누군가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럴 경우 대략 난감한 게 보호소에 신고하면 당연히 유기한 집사가 나타날리 만무해서 다른 집사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일정 기간 경과한 뒤 안락사, 그렇다고 내가 키울 수 없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 발걸음을 돌리는 마음은 엄청난 무게감에 시달렸다.
처음엔 쉴 새 없이 부비부비 하더니 발치에 자리잡았다.
누가 보던 전혀 의식하지 않고 내가 있는 동안은 녀석을 지켜줄 수 있었다.
가던 길을 돌려 다시 찾아와 녀석에게 식사와 식수를 줬다.
한참 식사를 하고 다시 물을 마시기를 몇 번 반복.
누군가 이쁘게 키운 티는 나는데 그걸로 끝일까?
떠나는 길에 불쌍한 녀석의 모습과 현실이 마음에 걸려 무척 가슴이 쓰라렸다.
'일상에 대한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냥이_20221030 (0) | 2023.12.18 |
---|---|
냥이_20221029 (0) | 2023.12.18 |
가을 성묘_20221027 (0) | 2023.12.18 |
냥이_20221023 (0) | 2023.12.18 |
일상_20221022 (0) | 2023.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