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21

냥이_20240211

늦은 시각에 잠자리를 들면 녀석은 백발백중으로 집사 무릎에 올라와 온갖 자세로 잠을 청했다.고양이란 존재를 키우며, 성묘가 되었건 아깽이가 되었건 녀석들은 있는 그대로 행동하지만 집사 눈엔 왜 이리 귀여운지 모르겠다.그래서 집사는 늘 무릎 혹사 당한다.이렇게 무턱대고 올라와 잠들면 깨울 수 없었다.난 죄가 없는데 누명을 쓴 기분이랄까?꼼지락꼼지락.원래 잠꼬대나 몸부림이 심한 녀석인데 이렇게 불편한 자리에서도 똑같았다.순간 눈을 뜨고 집사를 째려봤고, 그와 동시에 집사도 녀석을 째려봤다.앞족발을 뻗어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기도 시작할고냥. 새해엔 츄르 홍수 터지공, 딸랑이들이 미쳐 날뛰게 해줄고냥?'

일상_20240211

왕형님이자 어르신 만나러 가는 길에 어설프지만 엷은 바람 옷가지 입고 찾아온 봄의 향기를 만났다.땅밑 동토는 깊이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봄이 데리고 온 대낮은 부쩍 길어진 자취를 남겼는데 거기에 맞춰 어딘가 숨어버렸던 길 위 작은 생명은 한둘 모습 드러내며 극적으로 봄을 마중 나왔다.아직은 황량한 겨울 잔해 속에서 조심스레 봄을 맞이할 또 다른 생명은 그 누굴까?휴일에 정갈한 공원의 정취는 그 어느 곳보다 친숙해져 버렸다.걸음 수를 채우려 한참을 걷다 여울공원까지 넘어왔는데 점점 익숙해짐과 동시에 거리감도 무뎌졌다.여울공원의 정중앙이자 화목원 한가운데 그리스식 조형물과 더불어 비정형적이면서도 나름 원칙이 있는 계단의 기하학적 배치가 정형적인 길을 연장시켰다.여울공원에 온 김에 꼭 찾아봬야 할 왕형..

선물_20240210

설날이라 잔뜩 들어온 선물들을 하나씩 펼쳐봤다.근래 사과 값이 금값이라 배에 비해 빈약하고 때깔도 생겨 먹다 말았다.그런데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의 선봉장답게 가운데 떡!허니 자리 잡았다.상대적으로 착하게 보이는 배는 햇배와 묵은 배를 섞는 상술을 발휘하여 푼돈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영혼은 팔 지언정 돈은 포기 못하는 행태를 보자니 정직하게 사업하는 분들이 엄하게 피해 보는 세상, 그래서 반어적으로 용팔이, 테팔이, 장똘배기 홧팅~!

냥이_20240209

햇살이 포근한 오후, 녀석은 정해진 시각에 낮잠을 자는데 실내 따스함이 더해져 쿠션 위에서 급격히 무너져 잠들었다.집안 평온의 저울은 녀석의 표정에 스며들어 나른한 전염병처럼 번졌다.겨울 햇살은 녀석에게 개꿀.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창가에서 녀석은 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잠들었다.따스한 실내 공기와 포근한 오후 햇살이 녀석에게 있어 단잠 이불이자 꿈속 친구가 되어줬다.한참을 자고 부스스 일어나 집사들 출석 체크 중.만족스런 저 주뎅이.저녁을 준비하는 집사들을 따라와 화이트 노이즈에 안심하는 녀석이었다.

삼국시대의 뜨거웠던 흔적, 화성 당성_20240209

신라와 백제의 함성이 겨울 서릿발처럼 묻혀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에 빠진 당성(당항성)이 같은 고장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북편 멀리 사라진 위대한 한민족 고구려가, 남편 가까운 곳엔 슬기롭던 백제가, 서해 건너 대륙을 호령하던 당이 있었고, 성 일대 맹주는 지혜롭던 신라였다.현재의 필연은 과거의 셀 수 없는 파편들이며, 생존을 위한 핏빛 투쟁은 인류의 본질이다.그 파란만장했던 시대에 뜨겁던 열기는 잠자고 이제는 황량한 겨울이 활보해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시대의 슬픔과 기쁨도 모두 땅 속에 묻고 서리와 이슬처럼 그저 다가왔다 흩어질 뿐이었다.당성 또는 당항성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테뫼형(산봉을 중심으로 산정 외곽부를 돌로 쌓은)과 포곡형(봉우리와 계곡 주위를 둘러쌓은)..

냥이_20240208

녀석 또한 사람처럼 감정이 있다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의도적으로 못 본 척했는데 그게 더러운 기분의 시초였고, 그 더러워진 기분은 말 그대로 냥무시로 되돌아왔다.아! 무관심과 다른 무시가 자극이 가능하단 걸 새삼 깨달았다. 다른 집사한테 안겨서 꼬물꼬물거리던 녀석.녀석은 털 한 움큼 먹은 표정 마냥 떨떠름하게 쳐다봤다.사실 저 눈빛이 '난 만족스럽다옹~'이긴 하지만.안 자면서도 자는 척했고, 눈을 마주치면 '난 지금 편하다옹~''집사, 볼 일 없습네다옹~'어차피 결말은 같은 거 아닌가?안겨서 쉬고 싶었던 것.

냥이_20240207

새벽에 완전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묘한 압박감에 어스름 눈을 뜨자 창 쪽으로 괴물 실루엣이 보였고, 그래서 순간 악! 소리도 못하고 ㅎㄷㄷ잠에 취해 그렇게 봤는지 이내 익숙한 형체라 손을 뻗자 털뭉치가 내민 손끝에 털을 문질렀다."욘석아, 까무라칠 뻔했잖아"오후엔 컴 앞에 앉아 열중하고 있었는데 녀석이 어느샌가 그림자처럼 다가와 째려봤고, 그걸 뻔히 알면서 무시함으로써 소심한 복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