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천 129

일상_20240211

왕형님이자 어르신 만나러 가는 길에 어설프지만 엷은 바람 옷가지 입고 찾아온 봄의 향기를 만났다.땅밑 동토는 깊이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봄이 데리고 온 대낮은 부쩍 길어진 자취를 남겼는데 거기에 맞춰 어딘가 숨어버렸던 길 위 작은 생명은 한둘 모습 드러내며 극적으로 봄을 마중 나왔다.아직은 황량한 겨울 잔해 속에서 조심스레 봄을 맞이할 또 다른 생명은 그 누굴까?휴일에 정갈한 공원의 정취는 그 어느 곳보다 친숙해져 버렸다.걸음 수를 채우려 한참을 걷다 여울공원까지 넘어왔는데 점점 익숙해짐과 동시에 거리감도 무뎌졌다.여울공원의 정중앙이자 화목원 한가운데 그리스식 조형물과 더불어 비정형적이면서도 나름 원칙이 있는 계단의 기하학적 배치가 정형적인 길을 연장시켰다.여울공원에 온 김에 꼭 찾아봬야 할 왕형..

일상_20240202

지역에서 터전을 잡았던 것들이 이제는 귀한 대접받았다.기름지고 비옥한 벌판을 만든 오산천.그 옆에서 작은 보탬이 되고, 쉬어갈 휴식이 되는 반석산.그리고 여기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행님이 되어 주신 나무와 아주 오랜 시절 종교적 유물인 석상.한걸음 걸을 때마다 만나며, 시간이 멈춘 존재들의 피나는 인내에 경의를 보내던 날이었다.동탄여울공원은 동탄2신도시에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LH공사에서 조성하였다. 광역비즈니스 컴플렉스에 조성되어 주변에 조성될 고층업무복합 건물들 사이에서 도시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공원 전체면적은 325,378㎡이고, 이 중 178,100㎡의 녹지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40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와, 축구장, 화목원, 음악분수, 동탄 폭포, 작가정원 등..

일상_20230723

장마에도 꽃은 피고, 물방울 열매는 맺는다. 그 계절의 작은 탄생들은 길 따라 해류처럼 흐르고, 어딘가에 고여 길의 형체도 덧씌워 생명을 이끈다. 아무리 견고하게 다진 길도 생명의 분절은 길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길을 만드는 건 실체를 짓누르는 중력이 아니라 유수처럼 흥겨운 흐름이 궁극이다. 비구름이 유유자적하는 길을 밟으며 어느새 길의 호흡에 자연의 혈관은 심장처럼 멈출 줄 모르고 약속처럼 의지를 추동하던 날이다. 우산 하나에 의지해 물에 젖을 각오로 길을 나서 습관처럼 오산천변 산책로의 나무 터널 아래로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자연 발원하는 여울도 많은 비를 방증하듯 갈래갈래 폭포가 되어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는지 꽃은 세찬 장마에도 꼿꼿이 살아갈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여울..

일상_20200530

화창한 날씨에 맞춰 가벼운 차림으로 만보 걷기에 도전한다. 일상처럼 피부에 쏟아지는 햇살이 부쩍 다가온 여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어느새 흥건해진 등짝을 달래며 꾸역꾸역 길을 오로지 하는 사이 꽤나 많은 걸음수를 채웠고, 집안에서 솟구치는 게으름을 떨치는 보람을 정직한 숫자에 위안 삼는다. 휴일 시곗바늘은 조급한 성격을 감추지 못하고 질주하는데 그럼에도 더위를 뚫고 가슴에 안기는 간헐적인 바람이 개운함만 남긴 채 피로를 망각시키는 휴일은 여전히 행복에 겹다. 장미의 미소? 살짝 물 빠진 듯한 이 색감이 도리어 자극적이지 않아 좋다. 정상 인근 낙엽무늬 전망데크에 서서 사정없이 흐르는 땀방울을 어르고 달랜다. 더불어 눈은 시원하다. 호수공원으로 내려와 바삐 움직이는 꿀벌의 꽁무니를 쫓아 몰입의 희열도 맛..

일상_20200519

봄의 불청객이자 단골 손님인 황사와 미세 먼지가 올해는 예외다. 하늘만이라도 맑은 대기로 제 빛깔을 찾아 돌아오는 날엔 덩달아 기분도 화창해진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여세를 몰아 밥 한 주먹 정도 챙겨 냥이들 만나러 갔다. 온순하고 말끔한 건 한결같다. 보정하지 않은 벨비아의 채도 높은 하늘이 인상적이다. 문득 이런 하늘을 바라보면 여행 욕구가 울컥한다. 치즈뚱이 가족이 가장 먼저 반겨 밥 한 주먹 내어 주자 냉큼 식사를 한다. 이젠 약속처럼 절도 있게 모든 행동이 연결된다. 냥마을에 살지 않지만 늘 여기에서 다른 냥들과 어울리는 어린 냥. 이 녀석을 감안해서 밥 한 주먹은 꼭 남겨둔다. 가장 경계심 없는 치즈뚱이 아이는 이제 몸을 부비는 건 기본이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반기는데 반해서 좀 더 신경 쓰게..

일상_20200512

눈 덮인 양 이팝나무가 뽀얗게 물들고, 넘실대는 바람결에 향긋한 아카시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야생마 같지만 그 계절의 옷깃에 내비치는 풍경은 향기로 가득하다. 살랑이는 아카시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소담한 길을 따라 피어나는 신록을 만나러 가는 길은 흥겨운 놀이를 쫓는 아이 같다. 산책의 행복을 저미던 시간, 손끝에서 조차 잠자고 있던 유희의 감각이 긴 잠을 깨치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도 피부를 간지럽힌다. 노작마을 초입에서 반겨주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인사. 마치 뽀얀 눈이 덮여 눈꽃 만발한 나무 같다. 여기를 지나 곧장 노인공원을 거쳐 냥마을로 향했다. 뽀샤시한 외모와 순둥순둥 성격, 하지만 길냥이 특유의 경계심으로 가..

냥이 마을_20200421

얼마 남지 않은 하루 낮시간대에 산책 삼아 집을 나서 곧장 냥이 마을로 향했다. 봄바람이 적당한 청량감을 싣고 코끝을 부딪히는 날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냥이 마을에 도착, 때마침 치즈 뚱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카오스 가족은 보이지 않고, 아이 둘은 냥이 마을에 있는데 어미가 없어서 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가장 격한 반가움을 보여주는 치즈 얼룩이가 식사를 끝내고 어딘가를 응시하여 그 방향을 바라보자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렸다. 아이들이 식사를 끝내길 기다렸다 치즈뚱이가 식사를 시작했고, 뒤이어 얼룩 태비가 슬며시 다가와 조심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얼룩 태비는 늘 어미는 어디 두고 냥이 마을에 부비적 찾아와 다른 녀석들과 친해지려 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많던 날, 녀석들의 화목한 모..

봄길 산책_20200418

얼마 남지 않은 봄의 작별을 기약하며 잠시 스치는 한 순간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람도, 자연도 올 때는 반갑고, 갈 때는 서운하지만 마냥 생각을 그 자리에 머물러 두기보단 다음에 올 변화에도 관대하자. 매번 아쉽고 서운함이 반복되는 가운데 자연도, 나 자신도 성숙의 레드 카펫을 밟으며 무르익는 성찰이 되니까. 벚꽃이 줄지어 서 있던 자리가 어느새 신록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흔히 피는 꽃들도 하나 같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아름다움을 전도한다. 아직은 남은 개나리. 봄 내내 묵묵히도 화사한 약속을 지켰다.

반석산에서 기분 좋은 야경 산책_20200404

정적이 무겁던 이 도시가 해가 지날수록 야간 산책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초저녁에 집을 나서 습관적으로 불빛을 따라 걷던 중 간헐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도리어 반갑다. 가장 만만한 반석산 둘레길을 선택, 익숙한 길을 따라 등불도, 봄소식도 피어나 방긋 웃어줘 피로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둘레길을 걷다 처음 한숨 돌리는 곳은 오산천 방향 전망데크로 오산천 너머 여울공원은 환한 가로등 불빛이 무한할 만큼 적막하다. 이따금 지나는 사람들의 소리가 반가울 때, 바로 이 순간이다. 벚꽃이 한창인 산책로엔 밤에도 드물긴 하지만 인적은 쉽게 눈에 뜨인다. 둘레길을 걷다 가장 지속적인 오르막길을 지나면 두 번째 나뭇잎 전망데크에서 도착하여 습관처럼 한숨 돌린다. 해가 거듭될수록 동탄 일대는 꺼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