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들판에 서리는 정겨운 봄

사려울 2014. 4. 22. 20:33


휴일이지만 늦게 출발한 봄나들이 한답시고 딱히 무얼 보거나 듣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나갔다가 들판에 핀 봄의 징표들을 보곤 계획도 없고 예상도 못했던 작은 즐거움에 젖게 되었다.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람은 어쩌면 기름진 패스트푸드를 먹은 뒤 그 텁텁함을 날리기 위해 마시는 탄산음료와 같은 것이렸다.

이름 모를 들꽃의 작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은 감추려 해도 종내엔 주체할 수 없이 튀어 나오는 기침처럼 잠시 주위를 둘러 보는 사이에 눈을 통해 마음으로 몸을 숙이게 하는 마녀와도 같다.



민들레는 지극히 평가절하되는 희생양이면서도 그런 건 개의치 않는 호연지기의 대표 주자 같다.

꽃밭을 아무리 화려한 꽃들로 장식한 들 민들레만큼의 뚝심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으리.





차가운 겨울과 초봄의 변칙을 이겨낸 징표인 듯 꽃망울은 미세한 털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생존 방법은 대부분 흡사하면서도 인내 후의 결실은 제각각이다.

곧 꽃망울을 터트려 그 결실의 화사함은 어느 하나 미비한 것 없으나 웅크리고 나온 후에 그 억눌렸던 심신의 표현 방법은 꽃의 다양하고 화려한 색감과 자태로 보여 주니 말이다.

때론 육안으로 봤을 때 쉽사리 지나칠 수 있는 미세한 파동은 사진을 통해서 새삼 깨닫는 바라 그 느낌은 반가움을 넘어 심오하기까지 하다.



이 벤치는 자칫 보여 줄 게 없는 초라한 존재 같지만 기실 시간의 변화와 무심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며 지치거나 쉼표가 필요한 자의 안식을 자처하는, 어쩌면 화려함 후의 실망보단 어떤 편견도 무마시킬 줄 아는 위안임에 분명하다.



봄의 전령사 벚꽃은 조만간 질 궁리를 하는 것 같다.

가장 만개한 꽃의 화려함 후에 여름에게 자리를 닦아 주고 먼저 오게 된 수 많은 사연을 들려 줄 것만 같지 않나?



반송초등학교가 벚꽃 송이들 사이로 비친다.

비록 묘목 수준의 벚나무라 아직은 벚나무가 유명한 관광지에 비해 빈약하기 이를데 없지만 시간을 먹고 자란 미래의 이 벚나무들은 그들 못지 않은 화려한 자태가 예견된다.






즐비하게 한 줄로 늘어선 벚나무들 중 유독 이 나무의 자태가 시선을 고정 시킨다.

그 키에 비해 유별나게 꽃송이도 탐스럽게 뻗어 나온데다 나무 자체의 곧음도 남다른 모습인데 아주 잘 가꿔서 매끈하게 자란 나무가 아닌 산전수전 몸소 겪으며 그 세월의 풍파를 긍정의 숙명으로 승화시킨 모습이랄까?

한올한올 자라서 터트린 꽃들이 그런 나무의 과거를 살포시 가리고 이제는 어떤 역경에도 미소로 일관할 수 있으리라 다짐하듯 탐스럽고 화사하기만 하다.








모처럼 만난 매화도 담아 두었다 이렇게 펼쳐 보니 진달래와 더불어 모든 봄꽃들의 선배 같단 생각이 든다.

겨울을 뚫고 가장 변덕스런 기온의 파고를 유유히 넘어 꽃망울을 터트릴 땐 충분히 그런 통과의례도 거쳐 온데다 진달래처럼 그 절제된 아름다운 기상이 예삿내기가 아니니까.

일 년 중 그 짧은 시절의 추억들을 내가 보아온 나무들은 하나하나 담아 두고 있겠지?

언젠가 그들이 전해 주는 긴 여정의 이야기들을 내가 들을 수 있다면 난 그들이 떨구는 꽃잎들조차도 속속들이 아름다운 공감을 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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