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지붕,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_20220925

지나는 길에 굳이 들러야 할 곳, 80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존재 만으로도 먼 길 수고로움조차 지나치게 가볍다.
기나긴 세월 동안 희로애락의 쓰고 단맛을 셀 수 없는 세포 속에 저장시켜 무성한 상호작용을 몸소 표현하자면 실타래처럼 뿌리는 뒤엉키고, 가지는 형용할 수 있는 방향의 범주를 벗어나 모든 걸 기린다.
1시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존재를 규정짓기보다 기나긴 서사시 한 편 읽는 기분으로 물끄러미 감상하는 사이 퇴색된 표지는 도리어 찬연한 노을빛으로 덮는다.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큰 품 아래 그늘, 반계리은행나무_20210911

저녁 시간이라 민가 굴뚝에서 연기가 연주되고, 그 너머 석양빛 산언저리에 멈춰 쉰다.

하루 등불이 꺼지기 전에 도착했음에도 조급함은 숨 죽인 채 어느 때보다 걸음수가 부쩍 줄어든다.

굳이 800년이라 이야기하지 않아도 가까이 서면 인간은 초라해진다.

어느 방향에서든 다른 모습이다.
풍성하고 거대해졌다가 소소한 도형을 그렸다가도 산처럼 단단히 뿌리내린 모습도 보여준다.

시간을 잊었는데 하늘이 귀띔해 준다.

항상 짧거나 늘어져서 아쉬운 건 없다.
늘 주어진 시간만큼 마음속에 담아 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