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445

일상_20200612

무르익은 밤꽃이 무심하게 지나는 바람에도 떨어질 무렵, 무심할 것만 같은 바람 속에서도 여름 향기가 흥건하다. 약속한 사람 마냥 같은 길을 걸어 파릇하게 피어나는 신록도 찾고, 동산을 누비는 길냥이 가족들도 찾는다. 전부 비슷하게만 보이던 냥이들도 이제는 짬밥이 쌓였다고 특징과 생김새를 알아볼 경지에 이르렀다. 유별나게 산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녘에서 내 의지를 갖고 찾아간 첫 발걸음이 4월 9일이었고, 어느덧 2개월이라는 출석 도장을 듬성듬성 찍었다. 인연이란, 정이란 이렇게 알흠알흠 쌓인 시간의 벽돌처럼 어느샌가 빈자리의 허전함에 공허함을 느끼는 것과 같다. 빈약한 가지에 위태롭게 남은 밤꽃이 떨어지고 나면 바람에 섞인 여름 내음도 더욱 텁텁해지겠지? 냥마을 인근에 이런 매혹적인 야생화가 군락을 이뤘다..

냥이_20200611

하루 종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이다. 식사량과 횟수가 줄고, 특히나 냥마을에 다녀오고 나면 신발에 한참 냄새를 맡는다. 그렇다고 내 족발 냄새에 취한 건 아닌데 활동적이고 애교가 많은 녀석이 이러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SNS 고견을 들은 결과 대부분은 더위 때문에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단다. 그러면 다행이지만 좀 더 관찰해 봐야 되는, 초보 냥집사의 흔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사람처럼 팔을 괴고 누워 있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몸을 뒤집는데 왠지 경쾌한 뒤집기가 아닌 억지로 뒤집는 것만 같다. 의자에 다리를 뻗으면 넙쭉 달라붙어 힘 없이 눕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츄르로 달래 본다. 일시적이긴 해도 이런 녀석의 윤기 나는 눈빛이 좋다. 이런 모습에 마음 한..

도심의 오래된 정취, 낙산공원_20200610

서울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옛 정취를 찾았다. 때마침 초저녁 빗방울이 기습적으로 떨어지던 때가 성곽을 따라 산책로마저 텅 비어 버린 날, 가까이 있을 땐 불편하던 것들이 이제는 그리움과 정겨움으로 재포장되어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 새로운 생명이 꿈틀대는 건 현재를 지탱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면서 주민들이 다시 지웠단다. 이렇게 좁고 가파른 계단길이 어느새 추억을 회상시켜 주는 유물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냥이_20200608

가끔 가족들이 잠이 들 때, 잠 못 이루는 한 녀석이 있었으니... 잠 자기 전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을 때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내 방에서 맥 앞 좌식의자에 앉아 나를 맞이한다. 장난 삼아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망부석처럼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하는 수 없이 녀석을 스담스담해 주며 속마음에 있던 애정의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주면 어김없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노래로 화답한다. 냐아~옹~ 방으로 들어와 앉으면 이런 꿀 떨어지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움직여도 시선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이렇게 잠시 졸다가도... 움직이면 "깐딱 졸았다옹~" 이런 눈빛으로 다시 초롱초롱해진다. 결국은 녀석을 무릎 위로 올려 함께 시간을 보낸다.